근래 언론보도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을 접하며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이 극에 달하지 않았나 염려가 큽니다. 특히 핵발전소와 같이 위험하고 민감한 분야에서 고장 및 사고, 비리 문제가 연속해서 발생하고 사고은폐 의혹까지 일고 있는 것에 대해 참으로 커다란 당혹감과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자력발전(이하, 원전)이 아니라 명백하게 ‘핵발전’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좁은 국토의 국가에서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사태와 같은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다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을 것입니다.
각종 매체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원전 23기 중 현재 가동되고 있는 원전의 수는 16기이며, 나머지 7기는 고장, 내부 직원 비리, 정비 등으로 운전이 정지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품질검증서가 위조된 불량부품 5000여개가 2003년부터 현재까지 국내 원전 5곳에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고, 그 중 영광원전 5·6호기의 가동이 중단됐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미검증품은 영광 5·6호기에 대부분 사용됐고, 영광 3·4호기와 울진 3호기 등에도 쓰였다.”는 언론의 보도와 원전에 종사하는 분들이 습관성 약물에 중독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정부의 관리체계와 핵발전 종사자들에 대한 관리에 중대한 하자가 발생했다는 증거입니다.
지난 11년간 원전 정지사고 95건 중 부품 관련 정지가 75건이라고 합니다. 금년에 발생한 사고만 해도 15차례 가량입니다. 주변의 지역민들은 물론, 온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현 핵발전 정책에 근원적인 변화가 요구됩니다.
‘원자력안전 관련 국제협약 및 행동지침원자력안전 관련 국제협약’, ‘원자력 안전에 관한 협약’, ‘핵사고의 조기통보에 관한 협약’, ‘핵사고 또는 방사능 긴급사태 시 지원에 관한 협약’, ‘사용 후 핵연료 및 방사성폐기물 안전관리 공동협약’, ‘방사성물질 안전과 안보에 관한 행동지침’ 등, 핵 안전과 관련된 그 많은 규제‧규정이나 조약들이 후쿠시마에 실제 사고가 발생하자 모두 무용지물로 전락하는 것을 우리는 목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실제 대형사고가 발생한다면 이 많은 규정이나 조약들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에서처럼 대형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할 경우, 그 사고의 규모와 피해는 국가의 기능과 사회적 통제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됩니다. 재앙의 끝을 가늠할 수 없고, 온 생명의 그물망에 근원적인 문제가 발생하며 수 세대에 걸쳐 죽음의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단지 생존하기만을 원하는 게 아니라,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존중 받으며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사회적 존재들입니다.
가공할 핵의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 모든 인류의 소망이며 과제입니다. 우리 국민을 비롯한 세계인들의 이러한 염원을 헤아려서 핵발전에 직간접적으로 종사하는 모든 분들은 사명의식을 가지고 그 안전 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우리 불교생명윤리협회는 다음과 같이 건의합니다.
1. 자연 순환하는 재생에너지 개발에 훨씬 많이 투자하고 적극적으로 정책의 변화를 기해야 합니다.
2. 현 가동 중인 핵발전 시설 일체에 대한 정밀감사와 검증을 진행해야 합니다.
3. 신고리 원전 2 호기(건설 중)/ 신월성 원전 1,2호기(건설 중 )/ 신고리원전 3,4호기(건설 중)/ 신울진 원전 1,2 호기/ 신고리원전 5,6호기(건설 준비 중)/ 신울진 원전 3, 4호기(건설 준비 중)에 대해 전면적인 철회를 검토해야 합니다.
4.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를 연장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폐기되어야 합니다.
5. 현재 가동 중인 고리, 신고리, 월성, 영광, 울진원전에 대해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대피계획을 수립하고 실제 훈련을 실시해야 합니다. 아울러 이에 상응하는 관련법 개정을 서둘러야 합니다.
6. 정부는 최악의 상태를 상정한 대피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제도화 하는 법을 제 ‧ 개정해야 합니다.
7. 강력한 점검시스템을 즉시 구축하고 실제 훈련을 해야 합니다.
가. 핵발전 사고 발생 시 통제체제를 갖추기 전에 즉각 소개하는 강도 높은 매뉴얼로 개정돼야 하며, 실제 상황과 같은 상황에서 주민훈련을 실시해야 합니다.
나. 후쿠시마 사태를 교훈삼아, 사태발발 시 대피소를 8~10㎞ 이격지가 아닌, 핵발전소에서 최대한 원거리로 소개하는 것으로 정하고, 이후 집단 대피 장소는 최대한 안전한 지역에 지정 ‧ 설치해야 합니다.
다. 연 1회 이상 도상 및 자체 행동 훈련을 실시해야 합니다.
라. 태풍이나 폭우 등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서 대응 매뉴얼을 작성해야 합니다.
마. 핵발전소에서 최단거리에 있는 경찰서와 관청에서는 대 테러 훈련 및 대응팀을 구성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바. 핵발전소 주변의 정확한 유동지질 정보(단층대 활동 등)를 파악하여 공개해야 합니다.
사. 관련 종사자에 대한 정기 건강검진 및 수시로 피폭현황을 체크하고 핵발전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며, 정기‧부정기적 심리 상담과 정보 수집, 윤리교육 강화를 통해 사고와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국토와 국민의 안전’이란 차원에서 정책적‧전략적으로 접근하기를 바랍니다.
자.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함께 동북아의 핵 안전에 대한 실질적인 외교정책을 수립하고 우리나라는 물론, 한반도 주변 모든 나라의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관련 조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차. 이러한 일들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 정부 조직의 역할과 책임을 국민에게 명시하고, 시민사회와 종교계 등 모든 민간의 힘과 협력하는 장치도 만들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장기적으로 탈핵을 목표로 하는 에너지 정책으로 전환하고, 기존의 핵시설에 대한 문제점을 면밀히 분석하여 신개념의 안전대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이를 게을리 한다면, 단 한 번의 사고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게 되며 그 피해는 대기와 조류를 타고 이웃나라로 확대될 것입니다.
국민들은 핵발전을 하지 않아도 사회체계가 충분히 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고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에너지소비가 심한 기관과 기업체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핵 사고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여 기존 시설에 대한 안전성 확보에도 관심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정부는 원전가동 중단으로 금년 겨울의 에너지난을 적극적으로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이 협력한다면 에너지 대란은 충분히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정책과 공직자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오늘 대한민국 사회가 안고 있는 불안은 정부와 공직사회에 대한 불신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생명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사회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됩니다. 온갖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가 처한 환경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 앞에서 무서움을 느끼고 두려워할 줄 아는 지혜입니다. 바로 겸허입니다!
정치인이나 공직자는 국가를 책임진 분들입니다. 부디 핵에너지의 위험성을 깊이 인식하셔서 미진만큼이라도 소홀히 하지 마시고, 국민과 국토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이 안전하게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불기2556(2012)년 11월 19일
불교생명윤리협회 공동대표 법응 ∙ 박광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