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망월사 1
수원사람 김성채
광교산은 수원시의 진산(鎭山)으로 인근에서는 아름다운 산으로 이름이 났습니다. 그런 광교산 바로 아래 살고 있으면서도 오르지 않더니, 아침 일찍 도봉산을 올랐습니다. 도봉산에 멋진 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때문입니다.
산을 오르면서 이렇게 험한 계곡에 절을 지었다는 사실이 놀랐습니다. 수도권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산이기에 등산객을 위해 길을 다듬었을 텐데, 평탄한 곳이 드물었습니다. 예전에 절을 지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험난했을 것입니다.
도봉산을 오르는 계곡에 거미가 정성 들여 쳐놓은 그물입니다. 아름다운 그물이지만,
햇살이 퍼지면 맺힌 이슬은 사라지고 무시무시한 생존경쟁이 펼쳐질 것입니다.
죽림정사로 가는 길은 나무가 많고, 물길도 많아서 건너기 어려운 곳이었나 봅니다. 망월사로 향한 산길을 오르면서, 죽림정사가 위치한 곳의 지세가 ‘어떠했구나’라는 상상을 해 봤습니다. 도봉산을 타고 내린 물줄기는 큰 돌들이 굴러내리며 만들어진 계곡입니다. 건너가기 어려운 곳에 다리를 놓았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어떤 숲에서 법문을 펴셨을 때, 마가다국 빈두사라왕이 수도하시기 좋은 곳으로 죽림정사 보시를 받아주시길 청합니다. 세존께서는 ‘나에게가 아니라, 승가에 보시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게송을 읊으십니다.
“온갖 나무가 섞인 동산 숲이며 모든 다리가 다 갖추어졌고, 못ㆍ도랑ㆍ우물ㆍ샘도 가득하여 배가 오가며 사람을 건네주네.”
첫 번째로 만난 다리는 중생교입니다.
중생교(衆生橋)
물에 젖지 않게 건너도록 다리를 놓고, 어떤 분께서 이름을 붙여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중생”이라는 단어가 붙어서 ‘망월사에서 붙여주셨나 보다’라고 추측했습니다.
중생교
사바세계를 살아가는 ‘중생들이 건너다니는 다리’라는 의미일까요? 그렇다면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는 중생들이, 수없이 건너다녀야 할 다리입니다.
아니면 ‘중생들이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저쪽 언덕으로 간다’라는 의미의 다리일까요?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실천해서 다시는 건널 필요가 없는 다리입니다.
염라 시왕이 망자에게 ‘생전에 다리를 놓아 깊은 물을 건너게 한 월천공덕(越川功德)을 쌓았는지’를 묻는다고 하는데, 이 다리를 놓은 사람은 두 번을 건너지는 않았을 겁니다.
‘한 생각 깨달으면 부처요, 한 생각 어리석으면 중생’이라는 가르침이 있으니, 이 다리를 건너면서 단박에 깨우쳤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봅니다.
천중교(天中橋)
중생교를 건너서 걷다 보니, 두 번째 다리 천중교가 나왔습니다. 하늘을 오르는 길이 이곳에서 시작되는가 봅니다.
천중교
어리석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깨달음이 있는) 하늘은 수미산 정상에 있고, 수미산 중턱의 동서남북에는 지국천왕을 비롯한 4대 천왕이 머무는 사왕천이 있습니다. 사왕천은 가장 낮은 하늘이고, 그 위가 도리천입니다. 사천왕은 사왕천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을 보살펴주면서 어둠 속에서 길 잃고 헤매는 중생을 구제합니다.
천중교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도리천으로 설법하러 가실 때, 부처님께서 건네셨을지도 모르는 다리입니다. 다리를 건너며, 중생교를 지나 이곳까지 왔더니 ‘사천왕이 마중을 나왔네.’하는 고마운 마음으로 천중교를 건넜습니다. 길가 아래쪽에 다듬지 않은 비석의 앞면에는 “천중교”, 뒷면에는 “나무석가모니불”이 새겨졌습니다.
극락교
즐거움만 있는 곳이 극락이니, 그곳에 막 도착했음을 알려주는 다리입니다. 다리 이름으로 풀이하면,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며 설법하시는 정토의 땅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다리입니다. 땀을 흘리며 올라오기는 했지만, 이 정도의 수고로 정토의 땅을 밟을 수 있으니 큰 복을 받은 겁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좋은 업을 만드는 착한 일과 복덕의 인연, 아미타불을 믿는 굳은 마음을 지니고 극락왕생을 발원하여야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몇 발짝 숨차게 올라온 것이 부끄럽고 미안스러운 때문입니다.
극락교를 지나면서 산을 오르는 어려움이 한풀 꺾일 것으로 생각하며, 남은 길을 걸었습니다. 그렇지만 극락교를 지나 망월사에 도착할 때까지의 길은 이전에 걸었던 길과 마찬가지로 험했습니다.
극락정토의 중생은 새벽에는 많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밤낮으로 매일 부처님을 생각하고 가르침을 생각합니다. 크고 좋은 업을 쌓고, 복덕을 짓고, 정토에 태어날 것을 발원해서 극락정토에 태어났어도 수행하고 정진해야 부처님께서 이룬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극락교를 건넜지만, 더 진실된 마음을 담아서 걸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걸었습니다.
일주문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시무종(無始無終)이지만 길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어서, 망월사로 오르는 길은 콘크리트로 지은 2층집에 막혀 끝이 납니다. 이층집은 축대를 쌓아 만든 터에 지은 집이라,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보아야 합니다. 여기에 이르자 ‘망월사 신도증을 받은 불자들은 대단한 분이다’그리고 ‘어쩌면 망월사는 불자보다 등산객들이 더 많이 방문하는 절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천히 걷기도 했지만, 저 아래 망월사역에서 한 시간 삼십 분이나 숨 가쁘게 걸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망월사임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는 밖에 걸려 있는 ‘추석 합동 차례 의식’과 ‘나한 기도’를 봉행한다는 내용의 현수막뿐입니다.
망월사에 도착했음을 알려주는 2층집
일주문과 천왕문은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저 밑에서 지나쳤던 중생교와 천중교가 일주문과 천왕문 역할을 하였습니다. 굵은 기둥 두 개가 세워져야 일주문이 아니고, 그곳을 통과해야 속세를 벗어남이 아니고, 일주문은 이름이 “일주문”일 뿐이라는 것을 깨우쳐주는 방편이려니 했습니다.
계단 중간에 “아니 오신 듯, 다녀가시옵소서”라는 안내판이 놓였습니다. 도봉산 망월사를 찾아 수없이 왔다가 사라진 바람처럼, ‘조용히 머물다가 흔적도 없이 가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뜻입니다. 언젠가 사람들이 찾아들어서 말썽을 일으켰거나 소란스럽게 했는가 봅니다. 그런데 뭔가 집적거리길 좋아하는 저에게는 ‘인생이란 게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인데, 요란스럽게 집적거리지 마시옵소서’라는 뜻으로 보였습니다.
많은 절이 누각 중앙의 계단을 통해 경내로 진입하지만, 망월사는 이층집의 왼쪽으로 돌아 오르거나 오른쪽으로 돌아 오르는 두 갈래의 진입로가 있습니다. 외길을 걸을 때는 무심히 걸을 수 있지만, 그 길이 두 갈래로 나뉘면 갈등이 생깁니다. 더군다나 2층집은 두 눈을 가로 막아서 망월사 경내가 얼마나 넓은지, 법당들 생김새가 어떠한지를 조금도 짐작할 수 없게 합니다. 쓸데없이 망설이다, 오른쪽의 계단을 밟고 오르다 낮은 담장에 설치한 협문을 만났습니다.
조선시대에 궁전과 누각을 지으면서 집 한 채마다 마당을 마련하고, 담을 쌓아 마당을 나눈 다음에 협문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협문마다 의미를 부여한 이름을 지어 현판을 걸었습니다. 궁궐의 건춘문, 영추문, 일화문, 월화문 등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한옥은 땅을 파내 지반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흙을 돋은 후 고르고 다져서 짓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짓고 있습니다. 망월사는 짓고자 하는 위치가 도봉산의 가파른 곳이기에 축대를 쌓고, 집터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당에 법당을 짓고, 법당으로 들어가는 협문을 달고 현판을 걸었습니다. 망월사 법당이 들어선 마당은 모두 땅을 돋우어 이루어졌기에 계단으로 연결되고, 법당들은 모두 협문에 현판을 걸었습니다.
자비문(慈悲門)
자비문은 두 개의 기둥에 큰 기와지붕을 올려 가분수로 보이는 협문으로, 문 폭은 두 명이 드나들기는 약간 좁습니다. 지붕을 구성하는 위쪽은 녹색, 그 아래쪽은 팥죽색으로 단청하여 자연의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늘어진 단풍잎과 기둥을 타고 오른 녹색의 담쟁이 풀이 어우러져 협문을 더 아름답게 합니다. 기둥에 널판으로 문짝을 달았고, 하인방은 문턱을 낮추기 위해 부드러운 곡선으로 깎아냈습니다.
자비문
전통적인 단청으로 옷을 입은 것과는 다르게 낡은 나무에 쓴 글자 “자비문”은 색이 바래 흐릿해졌습니다. 자세히 보니 자비문의 “문(門)”자가 "
"자로 뒤집혀 쓰였습니다.
“門”자는 문짝이 달린 모습을 보고 만든 글자입니다. 사람은 물론 동물이 드나듦을 막으려고 세워 놓는 게 門인데, 문짝이 없으면 문이 아닙니다. 문이라고 세워 놓고 문짝을 달았지만, 가로막는 문이 아니라 열려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모든 중생에게 언제나 베풀어지는 것처럼. .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