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타폰의 달빛1
비엔나행
(삽화=정유경 작가)
2025년 7월 28일 오전.
귀밑머리가 허연 반백의 정 작가는 아내 박 여사와 함께 인천국제공항 제2 여객터미널 3층에 도착하자마자 택시에서 내렸다. 잠시 후에는 D카운터로 가서 짐을 부치고 난 뒤 아내 박 여사와 함께 출국수속을 마쳤다. 비로소 여유가 생겨 간단하게 아침 식사도 하고, 비엔나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렸다.
냉방시설이 잘된 국제선 탑승 대기실은 섭씨 35도의 폭염이 위협하는 바깥 날씨와 달리 시원했다. 승객들은 의자에 두세 명씩 앉아서 탑승 시간을 무표정하게 기다렸다. 탑승구 밖에는 이미 비엔나행 비행기가 다가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직선 고속도로처럼 곧게 뻗은 활주로에는 비행기들이 연달아 이착륙하고 있었다. 방음이 잘된 탑승 대기실에서는 비행기들의 이착륙하는 소음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 탓인지 유리창 안과 밖은 유리된 별개의 세상 같았다. 활주로 너머의 하늘도 지상의 복잡한 풍경과 동떨어져 짐짓 고요하게 보였다.
하늘에는 만년설 같은 뭉게구름이 설산 봉우리들처럼 떠 있었는데, 그것들도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지상과 하늘이 어쩐지 격리된 듯했고, 무시무종(無始無終)의 하늘이 외계에서 슬그머니 내려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소에는 여러 형태의 구름들이 사사로운 감정을 사뭇 자극하기도 했지만, 공항 유리창을 통해 드러난 뭉게구름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상관없는 그저 다른 하늘에서 무심코 잠시 내려온 듯했던 것이다.
이윽고 비엔나행 비행기 승객들에게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유리창 밖의 무심한 풍경과 달리 지극히 현실적인 소리였다. 곧 탑승을 시작할 터이니 13번 게이트로 오라는 안내방송이었다. 방송 전부터 탑승구 앞에는 벌써 승객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한국인보다는 서양인이 더 많았다. 서양인들 가운데는 배낭을 멘 중년 남녀도 있고, 여름방학 여행 중인 듯한 가벼운 옷차림의 대학생 내지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내와 함께 의자에 앉아 있던 정 작가도 배낭을 들었다. 그의 아내는 조금 긴장하는지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다녀왔다. 정 작가 역시 요의(尿意)를 느꼈지만 급하지 않았으므로 참았다.
정 작가에게 비엔나행은 이번이 세 번째였고, 그때마다 도예가인 그의 아내 박 여사가 동행한 까닭은 분명한 역할이 있기 때문이었다. 박 여사는 정 작가의 성실한 매니저이기도 했다. 예컨대 정 작가가 머무르는 현지마다 지리와 날씨를 수첩에 낱낱이 기록하거나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할 때는 녹음하여 나중에 글로 옮겨주는 등 도움을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감기약, 소화제, 지사제, 청심환 등 비상약을 항시 준비했고, 정 작가의 건강 상태를 간호사처럼 수시로 살펴서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게 했다. 물론 여행 마니아인 박 여사였으므로 그 정도의 수고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고, 오히려 다음에는 정 작가가 어디로 취재 여행을 가나하고 은근히 기다리곤 했다.
정 작가는 공항 여직원에게 티켓을 보여준 뒤 비엔나행 비행기에 연결된 복도에서 박 여사를 기다렸다. 공황과 비행기 사이의 복도는 일종의 가설물일 뿐인데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구름다리라고나 할까, 하늘길로 가는 통로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잠시 후면 인천공항과 시간적, 공간적으로 분리된다는 단절감을 미리 주었다. 비행기 출입구에는 두 여승무원이 또 티켓을 확인한 뒤 좌석으로 갈 수 있는 통로를 안내했다. 정 작가는 숫자 감각이 뛰어난 박 여사를 앞세웠다. 박 여사는 한 번 두리번거리더니 금세 앉을 좌석을 찾아냈다. 박 여사가 늘 선호하는 창 쪽이었다.
“비행기 날개가 보이는 창쪽이에요.”
박 여사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정 작가 옆좌석에 여자 승객이 앉는다면 정 작가가 창 쪽으로 가야 했다. 자석의 N극이 N극을 밀어내는 것처럼 정 작가가 여성 승객 옆에 앉는 것을 박 여사가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정 작가 역시도 12시간 동안 아내를 옆에 두고 낯선 여성 승객 옆에 앉아서 간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다. 다행히 정 작가 옆에 앉은 사람은 남자 승객이 이었으므로 자리를 바꿀 필요가 없었다.
정 작가는 안전벨트를 맨 뒤 심호흡을 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이동하면서 안내방송에 따라 여승무원이 안전벨트 착용과 산소호흡기 부착 시범을 보였다. 이윽고 활주로에 들어선 비행기는 곧 이륙하려는 듯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여보, 7년 만이네요.”
“그래요. 처음에 오스트리아 간 것이 2015년이고, 두 번째 간 것이 2018년이었으니까.”
박 여사가 비엔나에 갔던 연도를 기억하며 말하자,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더 실감 나게 다가왔다. 특히 그동안에 코로나19 위기상황을 3년 4개월이나 거쳤기 때문에 오스트리아를 여행했던 시기가 먼 과거의 일처럼 떠올랐다. 이번에 간다면 그때의 기억과 어떻게 연결될지 호기심이 잠깐 솟구쳤다. 그러나 비엔나공항에 내리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을 터였다. 세상에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은 그 무엇도 없기 때문이었다.
비행기가 고도를 높이 올리자 박 여사가 핸드백에서 청심환을 꺼냈다. 심장을 편안하게 해주는 환약(丸藥)이었다. 아내는 청심환 반쪽을 입 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외부 압력으로 귀가 먹먹해지고 긴장이 되면 복용하곤 했던 한방약이었다. 그러니까 박 여사에게는 일종의 상비약인 셈이었다. 잠시 후 박 여사가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는지 짧게 말했다.
“바다가 보여요.”
“아직 우리나라를 벗어나지 않은 것 같군.”
서해로 보이는 바다에 크고 작은 섬들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들도 얼마 후면 사라지고 말 터였다. 갑자기 박 여사가 2015년의 정 작가를 소환했다.
“그때 당신은 오스트리아행을 몹시 주저했어요. 가고 싶지 않은 눈치였어요.”
“연재소설 때문에 그랬지요. 여행을 갔다 오면 리듬이 끊어질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지요.”
정 작가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때 정 작가는 16세기 때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치르는 ‘7년 전쟁’에서 당시 해전 가운데 23전 23승을 한 조선 수군 총대장으로 활약했던 이순신을 주인공 삼아 전라남도 도청 홈페이지에 7권 분량의 대하소설을 몇 회 연재 중이었던 것이다. 10년 동안 연재를 준비하여 3년간 전라남도 도청과 연재계약을 맺고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연재 시작 전 10년 동안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승리한 바다를 찾아가 수심을 확인하고 왜 그곳에서 해전을 치렀는지, 또 철갑을 씌운 거북선을 왜 만들었는지, 조선 수군의 주력선인 판옥선은 어떻게 만들었기에 일본 수군의 전선보다 화포공격에 강했는지 등을 조사 연구했던바, 연재소설은 정 작가의 문학 인생을 결산하는 중요한 작품이었으므로 그만큼 긴장했던 것이다.
이제 비행기는 속도를 내려고 지상 9Km 상공을 향해 날고 있었다. 빙하 같은 흰 구름 위를 유유히 날고 있었는데, 대류권에서 성층권의 경계선상에 돌입하려 하는 듯했다. 흰 구름만 보이기 때문인지 목적지를 향해서 날아가고 있다기보다는 제 자리에서 유영하는 듯했다. 여승무원도 의자에 착석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여보, 자?”
“아니요, 권 회장님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도 잠깐 생각했는데.”
오스트리아 교포 권숙녀(Sonja Stenindl- Kwon) IMK 회장이 정 작가가 사는 이불재를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2015년 오스트리아행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권 회장이 한국을 오가며 인천공항 구내서점에서 정 작가의 소설들을 구입해 읽곤 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정 작가가 사는 이불재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권 회장은 원래 파독 간호사 1기로 오스트리아에 갔다가 6개월 만에 클래식 뮤직 공연기획사인 IMK를 1992년에 창업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이었던 권 회장이었으므로 더욱 그러했다. 또한 권 회장은 자신이 다니는 성당에 꽃꽂이를 전담할 정도로 신심이 돈독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런데 불교적인 색채의 글을 쓰는 정 작가의 작품에 매료되어 이불재까지 찾아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 작가는 권 회장이 보여주는 수첩을 보았는데, 거기에는 정 작가의 책 목록이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던바 권 회장의 진심을 바로 알아챘던 것이다.
어쩌면 정 작가 부부가 오스트리아로 가는 것은 권 회장의 권유 내지는 초청이 아니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여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