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소설가)
(삽화=정윤경 작가)
추측하지 말고 아는 것만 말하라
아난다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부처님처럼 위대한 스승은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 물었다.
“너는 과거의 모든 부처님을 아느냐?”
“모릅니다.”
“그러면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알 수 있느냐?”
“모릅니다.”
“너는 여래의 마음을 환히 알고 있느냐?”
“저는 부처님 마음을 환히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조금 전에
함부로 단정하여 말을 했느냐?
어리석게 추측하기보다는
네가 아는 것만을 말하거라.”
-중아함경
사족;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는 불안(佛眼)을 아직 얻지 못한 아난다가 부처님을 찬탄하는 마음으로 추측해서 말하자, 부처님께서 자애롭게 타이르시는 장면이다. 부처님을 찬탄하는 마음이 우러나서 하는 말이지만 부처님은 오히려 ‘아는 것만 말하라’고 당부하시고 있다.
공자도 제자인 자로가 아는 척하자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유(자로)야,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子曰, 由, 誨汝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아난다가 부처님께 알지 못한 것까지 말하다가 가르침을 받는 것과 닮은 꼴이다.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부처님과 공자님의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남도산중의 한미한 작가인데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아는 체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가슴이 압핀에 찔린 것처럼 뜨끔하고 부끄럽다.
* * *
친절을 계속 베풀어라
아난다가 어느 마을의 우물 앞에 섰다.
그때 천민 계급인 젊은 여인 빠까띠는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었다.
아난다가 그녀에게 물 한 모금을 청했다.
그러자 젊은 여인 빠까띠가 말했다.
“저는 천민인지라 스님께 물을 떠 드릴 수가 없습니다.
천한 신분으로 신성한 스님을 더럽힐 수 없으니
저에게 물을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아난다가 대답했다.
“나는 신분 따위에는 관심이 없소.
내가 원하는 것은 단지 물 한 모금이라오.”
빠까띠의 가슴은 설렘과 기쁨으로 출렁거렸다.
그녀는 곧 아난다에게 두레박으로 물을 떠 주었다.
그런 뒤 아난다가 자리를 뜨자 멀찍이서 뒤따라갔다.
마침내 빠까띠는 아난다가 부처님 제자임을 알고
간다꾸띠(香室)에 계시는 부처님께 찾아가서 말했다.
“부처님, 제발 저를 이곳에 받아들여 주시어
아난다 스님 옆에 살게 해주십시오.
저는 스님을 날마다 볼 수 있고,
스님이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구해주고 싶습니다.
아난다 스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녀 마음을 이해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빠까띠여, 너의 가슴은 사랑으로 충만해 있구나.
그런데 너는 네 감정을 살피지 못하고 있느니라.
네가 사랑하는 것은 아난다가 아니라
아난다가 너에게 베푼 친절 같구나.
아난다의 친절만큼 너도 남에게 친절을 베풀어라.
너는 비록 낮은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그리하면 높은 신분의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느니라.
친절을 계속 베풀어라. 때가 되면
너는 왕이나 여왕보다 더 빛나게 될 것이니라.”
-아함경
사족; 달라이라마 존자께서 유럽에 갔을 때 어느 신부가 “자비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때 달라이라마 존자는 잠시 생각했다. ‘사랑’이라고 대답할까? 그러나 달라이라마 존자는 21세기 언어로 서양인들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생각해냈다. “자비란 친절입니다.” 부처님께서 <아함경>에서 말씀하신 ‘친절’이란 단어를 생각해냈던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함경>에 말씀하시는 ‘친절’은 ‘자비’와 다름없다. 친절을 계속 베풀다 보면 왕이나 여왕보다도 더 빛나게 된다고 하니 사람의 행위가 신분을 결정한다는 말씀과 다름없다. 신분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행위에 따라 높고 낮아진다는 부처님의 평등사상을 새삼 환기하지 않을 수 없다.
* * *
제 몸도 자기 것이 아닌데
‘내 자식’ ‘내 재산’ 하면서
어리석은 사람은 괴로워한다
제 몸도 자기 것이 아닌데
어찌 자식과 재산이 제 것일까.
-법구경
내 것이라고 집착하는 사람은
걱정과 슬픔, 인색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안온함을 얻은 성인들은
소유를 버리고 살아간다.
-숫따니빠다
사족; 마하트마 간디는 ‘무소유란 오늘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간직해 두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깨어 있는 현인(賢人)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풍성하게 소유하지 말고 풍성하게 존재하라고. 풍성하게 존재한다는 말은 무엇일까? ‘내’가 아닌 ‘우리’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내’라는 소유격이 떨어지고 무아로 살 때, 개인이 아닌 전체로 사는 연기적 삶이 되기 때문이다. 동체대비심이란 것도 연기적 무아의 삶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큰마음일 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