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조 도의조사를 기리는 ‘구법기념비’가 11일 건립됐다. 조계종은 4월 11일 중국 남창 우민사에서 높이 5.16미터의 도의조사 행장과 수행일화를 새겨 넣은 구법기념비 제막식을 봉행하고 향후 수행종단으로서의 정체성 강화와 다양한 종조 선양사업의 전개를 다짐했다.

400여 한중 양국 불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막식에서 총무원장 지관스님은 선양사(宣揚辭)를 통해 “도의조사께서는 오대산 문수성지에서 보살의 가피를 입었고 육조의 영당에서 참배할 때 문이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신이(神異)를 통하여 혜능선사로부터 무언의 인가를 받았으며, 이곳 우민사에서 서당지장 선사를 친견하고 법을 전해 받은 후 귀국하였다”고 소개했다.
지관 스님은 이어 “매년 종조 다례재를 모셨고, 종조의 주석지인 설악산 진전사를 복원하였으며 이제 조사의 구법처인 홍주 개원사(현재의 강서성 남창 우민사)에 구법기념비를 건립하여 그 법은(法恩)에 보답코자 한다”며 구법기념비 제막의 취지를 설명했다.
제막식에는 중국불교 핵심 관계자들도 참석해 축하의 뜻을 전했습니다.
중국불교협회 회장 일성스님은 “도의조사의 구법도량인 우민사에서 기념비 제막식을 거행하게 되니 몇 세기가 한 순간에 담기고, 한 순간이 몇 세기를 담아낸 듯하다”며 “조계종과 우민사가 조사스님들의 가르침을 받들어 찬란한 종지를 다시 세우길 희망한다”고 말했다.일성스님은 또 “조계종이 바르고 직접적인 법맥의 원류를 찾은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육조스님 이래 조사의 가피가 우리들에게 내리시어 대대로 우리의 우의가 변함없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5.16m 비(碑)에 조사행장과 수행일화 새겨”
이날 제막식에서는 조계종 총무원장스님과 일성스님의 선양사외에도 종단 원로회의 의장 종산스님, 중앙종회의장 자승스님, 호계원장 법등스님 등의 축사가 이어졌으며 우민사 방장 순일스님도 환영인사를 건넸다.
또한 원로의원 정무스님, 밀운스님, 포교원장 혜총스님, 동화사 주지 허운스님, 관음사 주지 원종스님, 전국비구니회 회장 명성스님을 비롯한 종단 주요소임자와 통합민주당 윤원호, 신명 의원, 중국 국가종교국 곽위 외사사장, 강서성 민족종교사무국 시에쇼치 국장 등도 참석해 기념비 건립을 축하했다.
도의조사 구법기념비는 비신과 귀부, 이수를 포함해 높이 5.16m(총길이는 5.5m)가 넘는 규모로 제작되었으며 비석에는 도의조사의 행장과 수행일화 등이 4718자로 새겨졌다.조계종은 올 10월경 중국 광동성 남화선사에 도의조사 순례기념비를 건립하는 등 종조 선양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다음은 제막식에서 발표된 선양사와 도의조사 행장 전문>
*선 양 사 (宣揚辭)
부처님께서 拈花微笑로 가섭에게 법을 전하신 이후 제28대 달마대사가 528년 중국으로 건너와 以心傳心 見性成佛의 法을 慧可에게 전하였습니다.
신라의 道義祖師께서 이 法을 求하고자 中國으로 건너와 오대산 문수성지에서 보살의 가피를 입었고 육조의 영당에서 참배할 때 문이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신이(神異)를 통하여 慧能선사로부터 無言의 인가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어 開元寺에서 馬祖스님의 제자인 서당지장 선사를 親見하고 법을 전해 받은 후 귀국하였습니다. 이후 40여년간 신라 땅에 禪法을 전하려 하였으나 機緣이 맞지 않아 廉居에게 전법한 후 入寂하였고, 염거는 普照體澄에게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대한불교조계종은 종헌서문에 “우리 종조 도의국사께서 조계의 정통법인을 사승(嗣承)하사 가지영역(迦智靈域)에서 종당(宗幢)을 게양하므로부터” 라고 하여 그 법원(法源)을 분명히 밝혔던 것입니다.
百丈禪師의 말씀대로 강서의 마조선맥이 동국으로 가서 迦智山門으로 개화하여 오늘까지 찬연히 그 법맥이 이어지고 있으니 그 공덕은 참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당나라 때 荷澤神會대사는 혜능선사 현창에 신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1세기 대한불교조계종의 후학 역시 조계종조 도의조사의 선양사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매년 종조다례재를 모셨고 종조의 주석지인 설악산 진전사를 복원하였습니다. 이제 조사의 구법처인 홍주 개원사(현재의 강서성 남창 우민사)에 구법기념비를 건립하여 그 법은(法恩)에 보답코져 하였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비문은 한국불교 조계종과 중국 臨濟宗이 同根同祖임을 증명한 것이기도 합니다. 1년여의 세월 동안 두 종단의 교류를 통해 같은 법맥인 마조선사의 후손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비문은 韓中佛敎交流千七百年과 한중수교 15주년을 맞이하여 두 나라의 불교간의 신뢰를 더욱 돈독히 하는 徵表로 영원히 종문(宗門)의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이 비문의 건립을 위하여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중국불교협회 임원진과 佑民寺方丈 純一스님 그리고 대한불교조계종 관계자 여러 스님과 시공을 맡은 普光石材 金漢烈社長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이 除幕式의 자리에 함께 하신 한국과 중국의 사부대중들께 부처님의 가피가 항상 하시길 지심으로 기원드립니다.
불기2552(2008)년 4월11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도의조사 행장
생몰연대는 자세하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 스님으로 휘(諱)는 명적(明寂) 또는 원적(元寂)이고 호는 도의이며 속성은 왕씨입니다.
어느 날 부친께서 흰무지개(백홍白虹)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고 모친 도한 어떤 스님과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태몽을 꾼 후 임신하여 39개월만에 북한군(北漢郡;현재 서울)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건중 5년(784)에 사신인 한찬(韓粲) 김양공(金讓恭)을 따라 당나라로 들어가 구법하였습니다. 곧바로 산서성 오대산으로 나아가 중대(中臺)에서 문수보살의 상서가 나타남을 감득하고 광동성 광주 보단사(현재 대범사) 계단에서 비구계를 품수하였습니다.
소주 조계산 보림사로 나아가 육조 혜능대사의 영당에 참배하고 홍주 개원사(현재 이 자리인 남창 우민사)로 가서 서당지장 선사를 친견한고 그로부터 달마선법을 전해듣고는 활연대오 하였습니다.
지장대사께서 찬양하여 “나의 법통을 전수받을 자는 그대가 아니고 또 누가 있겠는가?”라고 하여 전법게와 함께 도의라는 법호를 전하였습니다.
그 후 제방으로 행각하다가 강서 백장산 회해선사를 친견하고 문답하니 백장선사가 “강서선맥이 송두리째 동국승에게로 귀속되었다”고 찬탄하였습니다.당나라에서 37년간 머물며 수행하다가 821년(신라 헌덕왕 13)에 귀국하여 조계선법을 펼치려 하였으나 시절인연이 도래하지 않았음을 탄식하여 진전사에서 40년간 주석하다가 제자인 억성염거에게 전법하고 입적하였습니다.
조사의 선법은 억성염거를 거쳐 보조체징에게 전해져 마침내 시흥하였습니다. 체징은 장흥군 가지산에 보림사를 창건하고 신라구산 선문중 최초로 가지산문 일파를 형성하여 도의선풍을 널리 진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