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부띠의 자부심
(삽화 정윤경)
수부띠(수보리)가 붓다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려 존경을 표하고는 오른쪽으로 세 번 돈 뜻을 아난다는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첫 번째는 숫도다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나 출가하여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의 건강을 축원하기 위해 돌았고, 두 번째는 더없이 행복한 붓다를 찬탄하기 위해 돌았고, 세 번째는 진리 자체가 되신 붓다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 돈 것이다. 다시 말하면 축원과 찬탄, 경의를 표하기 위해 세 번을 돌았다고 믿었다. 물론 다른 제자비구들도 그렇게 했지만 어떤 마음으로 세 번을 돌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난다는 그때 수부띠의 일거수일투족을 누구보다도 ‘눈 속의 눈[慧眼]’으로 살펴보고 있었기 때문에 세 번 돈 것을 축원과 찬탄, 경의라고 짐작했다.
이미 수부띠는 아라한으로서 붓다의 상수제자(上首弟子)가 되어 있었다. 붓다의 상수제자들인 장로는 마하깟사빠(마하가섭), 사리뿟다(사리불), 목갈라나(목건련) 아니룻따(아나율), 우빨리(우바리) 등등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수부띠는 아난다에게 가장 자애로운 벗이었다. 마하깟사빠는 아난다에게 ‘애송이’라고 말하고 다녀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적이 있는데, 수부띠는 항상 자애롭고 안온한 표정으로 아난다를 대해주곤 했던 것이다. 그러니 아난다는 붓다 앞에 있는 수부띠의 모습을 더욱 우정 어린 시선으로 집중해서 보곤 했다. 더구나 수부띠는 장로, 즉 아라한이었으므로 결심만 하면 보살이 되고, 붓다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성자였기 때문이었다. 아난다는 수부띠가 붓다를 만나 주고받은 대화를 정확하게 기억해 내어 5백 명의 장로들에게 들려주었다.
<바로 그때 수부띠 장로도 수행승들과 같이 그 곁에 와서 앉았다.
그런데 수부띠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상의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스승이 계신 방향을 향하여 합장하고 말했다.
“스승이여, 경이롭습니다. 지복의 저쪽에 잘 가 계신(善逝) 스승이시여.
여래이시고 응당 공양받을 만한 분이시고 올바로 깨달으신 분에 의해
위대한 보살 제자들이 ‘최상의 자비’로 감싸여 있다는 것은
스승이시여, 경이롭습니다.
바로 그만큼 응당 공양받을 만한 분이시고 올바로 깨달으신 분에 의해
보살인 스승의 제자들이 ‘최상의 위촉(委囑)’을 받는다는 것은
스승이시여, 경이롭습니다.
그런데 스승이시여, 이미 보살의 길로 들어선 훌륭한 남자, 훌륭한 여인은
마음을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내야 하며, 어떻게 지키면 좋겠습니까?”
이와 같이 물었을 때 스승은 수부띠 장로를 향하여 이렇게 대답하였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수부띠여, 그대가 말하는 그대로이다.
여래는 구도자인 보살들을 최상의 은혜로 감싸고 있다.
여래는 구도자인 보살들에게 최상의 위촉을 주고 있다.
그러니 확실하게 잘 들어라. 수부띠여, 잘 생각해서 잘 새겨라.
보살의 길로 향하는 자는 마음을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내야 하며,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내가 그대를 위해 말해주리라.
수부띠 장로는 스승을 향해 대답하였다.
“그렇게 해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스승이시여.”>
붓다는 수부띠의 질문에 흔쾌하게 답해주겠다고 허락했다. 수부띠의 질문은 ‘보살의 길로 향하는 자는 어떻게 마음을 머물게 하는 것이 좋으며, 어떻게 마음을 내서 수행하는 것이 좋으며, 어떻게 마음을 지켜야 하는 것이 좋은지를 묻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어떤 마음으로 수행해야 아라한에서 보살이 되느냐는 질문이었다.
수부띠는 장로였지만 아직은 보살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수부띠의 질문은 보살이 되는 길을 묻는 것이었다. 아난다 같은 이제 갓 성자의 흐름에 든 수다원 차원의 질문은 결코 아니었다. 아난다가 질문했다면 ‘저처럼 갈 길이 먼 수다원의 제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수행해야 아라한에 이르겠습니까?’ 하고 여쭈었을 터이다. 그러나 아난다는 감히 그러한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아라한이 된 선배비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은 붓다와 그들이 대화하는 것을 경청하고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수부띠는 한 발만 더 올라가면 구도자로서 최정상에 발을 딛는 그 경지의 장로였다. 한 발을 위로 더 딛게 되면 보살이 되어 최정상이고, 현재처럼 그 자리에 있기만 해도 아난다가 부러워하는 장로의 경지였다.
그러나 수부띠는 최정상에 올라 궁극에는 붓다가 되고자 발원했다. 그런 결심이 없고 현재의 경지에서 만족한다면 굳이 붓다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었다. 아난다의 경지와 같은 벗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다. 수부띠는 은근히 최정상에 오르고 싶어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날 그때 1,250명의 붓다의 제자들이 모처럼 기원정사에 다 모였을 때 수부띠가 가장 먼저 일어나 질문할 리가 없었다. 수부띠는 진작에 자신이 질문할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아난다는 수부띠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단박에 짐작했다. 수부띠의 얼굴은 평소처럼 온화하고 평온하기보다는 사뭇 긴장하고 있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 무엇을 붓다에게 고백할 듯한 표정이었는데, 그것이 긴장감으로 나타난 것 같았다. 아난다는 이미 수부띠가 붓다의 주위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 때부터 감지했다. 다른 제자들처럼 습관적으로 돌지 않았다. 수부띠는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며 한 번, 두 번, 세 번을 천천히 돌았던 것이다. 그 태도는 아난다의 눈에 잡힐 만큼 특별했다.
실제로 수부띠는 지나친 긴장으로 얼굴에 경련이 일 정도였다. 아난다는 붓다 곁에서 수부띠 얼굴에서 호수의 잔물결처럼 이는 미세한 떨림을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그러니 수부띠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걸음만 더 올라가면 최정상에 서는 아라한도 붓다 앞에서는 저토록 긴장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아난다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승을 공경하고 찬탄하는 마음이 클수록 더 긴장하는지도 모른다.’
다른 장로와 상수제자들의 표정은 담담했다. 마하깟사빠, 사리뿟다, 목갈라나 아니룻따, 우빨리, 라훌라, 마이트라야나 푸트라(부루나), 마하카까나(가전연) 등등의 얼굴에는 또다시 붓다의 설법을 듣는다는 기쁨으로 희열에 차 있었다. 그런데 수부띠의 얼굴에는 긴장의 표정만 서린 것은 아니었다. 나로 인하여 붓다의 설법이 시작됐다는 자부심도 어려 있었다. 아난다는 그 자부심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수부띠는 그러한 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스승이시여.”>
사실은 위와 같은 말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수부띠는 여러 상수제자들 앞에서 자신의 청에 의해서 붓다의 설법이 곧 시작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마치 ‘이제 1,250 명의 제자들은 나로 인하여 스승님의 설법을 듣게 될 것’이니 주의 깊게 잘 경청하라는 당부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실제로 붓다가 할 설법은 <금강경>, 즉 ‘금강역사의 금강저로 외도의 사견을 잘라버리고 반야의 지혜로 피안으로 건너감에 관한 경전’이 될 것이므로 수부띠의 자부심은 습관적인 가벼운 의식이 아니라 깨어 있는 깊은 의식에서 발현된 그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