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 켄뽀 아왕상뽀
(둑 다르마까라 승가대학 교수사, 캄따시링 센터장)
번역 및 정리 : 자홍스님(캄따시링 법회 통역)
아상가 논사의 탱화
1.『보성론』의 시설에 관한 전승담
티베트불교 까규파의 조사인 감뽀빠 대사는 '마하무드라(大手印, S. Mahāmudrā, T. phyag rgya chen po)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마하무드라는 미륵께서 『보성론』에서 설하신 바로 그 내용이라고 답하였다. 티베트불교 전승에 따르면, 미래불인 미륵은 소위 '미륵 5부론(Tib. byams chos sde lnga)'을 설했으며, 『보성론』은 이 중의 하나이다. 미륵불은 도솔천(兜率天)에서 아상가(Skt. Asaṅga, Tib. Thogs med, 無着. 4세기 경) 논사에게 5부론을 설했다고 한다.
미륵 5부가 설해진 경위에 대한 고사를 살펴보자. 서력 4세기 경, 인도 땅에 쁘라까쌰씰라(S. Prakāśaśīla, T. gsal ba'i tshul khrims)라는 비구니가 있었다. 이 비구니는 불법(佛法), 특히 대승 아비다르마가 쇠락함을 안타까워했으나, 시대적 한계로 여승의 몸으로서는 그것을 발전시킬 수 없다고 자조했다. 그래서 쁘라까쌰씨라 비구니는 환속하여 결혼했으며,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맏이가 아상가이고 동생이 바수반두다. 당대 인도에서는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가업을 계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잃은 두 아들은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하던 일이 무엇이었는가 질문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들아, 너희는 아버지의 일이 무엇인지 알 필요 없고, 물을 필요도 없느니라. 내가 너희를 낳은 것은 오직 이 세상에 쇠락한 대승 아비다르마장(藏)을 다시 일으켜 세워 더욱 발전시키기 위함이니라."라고 답하였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뜻에 따라 아상가와 바수반두 형제는 불교 승단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불법을 맹렬히 연구했다.
수년 뒤 아상가는 계족산(鷄足山, Skt. Kukkuṭapāda, Tib. ri bo bya rkang)에 입산하여 미륵을 친견하기를 발원하며 수행했다. 처음 3년을 닦았으나 성취하지 못했고, 좌절할 뻔하였으나 재차 발심하여 6년, 9년, 12년에 이르도록 노력하였다. 그러나 끝내 미륵을 친견하지 못했다. 아상가는 자신에게 인연이 없다고 절망하여 포기하고 하산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내려오던 도중이었다. 암캐 한 마리를 마주쳤다. 암캐는 배에 크게 상처가 났는데, 이 상처가 심각하게 곪아 구더기가 들끓었다. 암캐는 아상가를 보고 경계하며 위협적으로 짖었다. 아상가는 그 모습에 크게 연민심이 일었다. '아, 저렇게 큰 고통 속에 있음에도 여전히 다른 유정(有情)에게 적의를 갖고 해를 끼치려고 하다니! 안타깝구나! 모든 유정이 저와 같이 업과 번뇌에 사로잡혀 있다니!' 아상가는 암캐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섣불리 손을 대면 상처 위의 구더기가 짓눌려 죽을 것이다.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다. 아상가는 윤리적 난제에 당면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한쪽을 도우면 다른 한쪽에는 해가 되는 경우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두 생명이 모두 생명을 유지해나갈 권리가 있다. 그러나 구더기를 구하면 개가 죽고, 개를 살리면 구더기가 죽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상가는 놀랍게도 제3의 선택을 했다. 아상가는 자기를 희생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가장 부드러운 부분인 혀를 사용해서 구더기를 옮기기를 시도했다. 곪고 고름이 가득 찬 상처! 보기에도 역겹고 징그럽고 냄새도 끔찍하다. 그러나 아상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두 눈을 질끈 감고 암캐의 고름 가득한 상처에 혀를 가져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이게 무슨 감촉인가? 놀랍게도 혀는 미끌거리는 곪은 상처에 닿은 것이 아니라, 마르고 거친 맨땅에 닿았다. 아상가는 놀라 눈을 떴다. 눈앞에는 그토록 찾던 미륵보살이 나타나 있었다. 미륵을 보자마자 환희심과 헌신이 일어났지만, 아상가는 자신의 의문을 먼저 미륵에게 여쭈었다. "미륵이시여, 제가 그토록 오랜 세월을 당신을 친견코자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단 한 번도 제 앞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당신에게 자비심이 없는 탓이 아닙니까?" 그러자 미륵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제자 아상가여, 나는 늘 그대와 함께 머물렀노라. 그러나 그대의 마음이 업과 번뇌의 장애에 차단되어 보지 못했을 따름이다." 그리고 미륵은 게송으로 노래하였다. "천신들이 비를 내려도 / 종자부터 상해 있다면 / 결코 과실 맺지 못하리." 참으로 이치는 이 비유와 같다. 부처님들이 실로 현전해 계시더라도, 악업에 가득 찬 유정들은 부처님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12년 동안 수행한 그 공력, 매우 강력한 자비심. 이 두 가지가 갖추어졌기에 비로소 아상가 논사는 미륵을 친견할 수 있었다. 간혹 어떤 사람은 옛 조사와 성취자들의 이야기를 읽고 난 뒤에는, "깨달음도 수행의 성취도 돌연 일어나니 참 쉬운 일이구나!"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상가 논사를 보라. 아상가가 앞서 12년 동안 공을 들이지 않았다면, 갑자기 일에 맞닥뜨려서 돌연 강력한 연민심을 일으킬 수 있었겠는가? 아니다. 12년 동안의 기도 정진의 공덕이 있었기에, 그것이 조건이 되어 때마침 강한 연민심을 일으킬 수 있었고, 마침내 미륵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 가지 예비 수행의 중요성에 유념해야 한다. 매일의 수행을 함에 당장 눈앞에 가시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이것을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결코 없다. 결코 그 노력은 헛되지 않으니, 업장을 정화하고 공덕을 쌓는다면 반드시 그 위력이 마음속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아상가 논사가 미륵을 뵌 과정과 마찬가지로, 불제자들은 꾸준히 업장을 정화하고 공덕을 쌓는 등의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나가야 한다. 그런다면 마침내 어느 날 마음의 본성을 증득하는 등의 명확한 수행의 성취를 반드시 경험하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생전에 현세적인 이익을 얻지 못했다고 다르마가 무익하다고 한다면, 이것은 다르마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세속의 사고방식일 뿐이다.
아상가 논사는 미륵의 인도에 따라 신통의 힘으로 도솔천으로 이동했다. 미륵은 아상가에게 5부론을 설하였고, 아상가 논사는 이 가르침을 인간계로 가지고 와서 전하였다. 전기에 따르면 아상가는 도솔천에 고작 차 한 잔 마실 시간 머물렀으나, 인간계로 돌아왔더니 이미 50년이 지났다고 한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과거 절대적이라고 여겼던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밝혀냈는데, 고대 인도인들도 서로 다른 세계의 시간의 속도의 상대성을 생각했던 셈이다.
2. 미륵 5부론, 『보성론』의 학파적 분류
미륵 5부론(T. byams chos sde lnga)이란 아래의 다섯 가지 논을 말한다.
①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S. mahāyāna-sūtrālaṁkāra, T. mdo sde rgyan)
②현관장엄론(現觀莊嚴論, S. abhisamayālaṁkāra, T. mngon rtogs rgyan)
③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辯中邊論頌, S. madhyāntavibhaṅga, T. dbus mtha' rnam 'byed)
④변법법성론(辨法法性論, S. dharma dharmatāvibhaṅga, T. chos dbyings rnam 'byed)
⑤구경일승보성론(究竟一乘寶性論, S. uttaratantra, T. rgyud bla ma)
이 중에서 『현관장엄론』은 티베트 승원의 강당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연찬하는 논서이다. 이 논서는 반야부 경전에 나타나는 공성을 수행하는 도(道)와 지(地)의 차제(次第)를 설명하며, 그 기술 방식이 현대적인 학술 논문의 구성과 매우 유사하다. 저술의 목적, 내용 요약, 상세한 설명, 결론 등의 단락을 논서 속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다.
『현관장엄론』, 『중변분별론』, 『대승장엄경론』의 3가지 논서는 티베트 불교의 구역(舊譯, T. snga 'gyur) 시대에 티베트어로 모두 완역되었다. 구역 시대는 티베트 불교사에서 9세기 이전의 시기를 지칭하며, 이 시대 말미에 랑다르마(T. glang dar ma, 재위 841 to 846) 왕의 폐불(廢佛)이 자행되었고 이후 티베트 통일 제국이 무너진 후 10세기부터 인도에서 불교를 재수입하고 중흥하면서 신역(新譯, T. phyi 'gyur) 시대가 전개된다. 5부론 중의 나머지인 『변법법성론』과 『구경일승보성론』은 신역 시대에 역경승 응옥 로댄쎄랍(rNgog Blo ldan shes rab, 1059-1109)에 의해 번역되었다.
티베트 불교 전통에서는, 불교 전체를 크게 현교(顯敎, Tib. mdo)와 밀교(密敎, Tib. sngags)로 구분하며, 현교는 다시 ①와이바시까(Skt. Vaibhāṣika, 說一切有部) ②경량부(經量部, Skt. Sautrāntika), ③유식파(唯識派, Tib. sems tsam pa) ④중관파(中觀派, Tib. dbu ma pa)로 구분한다. 그렇다면 『보성론』은 어느 학파의 견해에 해당하는가? 유식파라는 경우도 있고, 중관파의 논서로 보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바는 유식파의 논서이며, 데게판 깐규르(Tib. sde dge bka' 'gyur)에는 유식부(唯識部)에 분류되어 있다. 보통 티베트 불교계의 관행에서는 중관파가 최고 상위의 학파이고 유식파는 하위 학파로 격하한다. 그러나 나의 생각으로는 유식교는 최고의 가르침으로 여겨지는 밀교와 오히려 상응하는 바가 더욱 많지 않은가 한다.
3. 논의 제목에 관하여
이제 논의 제목을 살펴보자.
인도어로는 Mahāyānottaratantraśāstra,
티베트어로는 '대승의 위 없는 흐름(屬)에 대한 논'
༄༅༅། །རྒྱ་གར་སྐད་དུ། མ་ཧཱ་ཡ་ན་ཨུཏྟ་ར་ཏནྟྲ་ཤཱསྟྲ། བོད་སྐད་དུ། ཐེག་པ་ཆེན་པོ་རྒྱུད་བླ་མའི་བསྟན་བཅོས།
먼저 '대승(大乘, Tib. theg pa chen po)'이라는 단어가 가장 앞에 나온다. 승(乘, Tib. theg pa)이란 말이나 배와 같은 탈것을 의미하며, 사물이나 사람을 저쪽으로 보내줄 수 있는 수단이다. 윤회의 영역으로부터 피안(彼岸)으로 보내주는 방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협소한 영역으로 보내주는 수단이 소승(小乘)이며, 광대한 영역으로 보내주는 방편이 바로 대승(大乘)이다. 여행에 비유하자면, 먼저 자기 거주지에서 공항이 있는 곳에 감이 소승이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너른 세계로 나아감이 대승이라 하겠다. 아띠샤(Atiśa, 약 982–1054) 존자는, 유정(有情)과 관련하는 길은 대승도(大乘道)이고, 유정과 무관하게 수행하여 혼자 해탈로 나아가는 것은 소승도(小乘道)라고 하였다.『대승장엄경론』에서는 소승과 차별되는 대승의 위대성을 7가지로 설명하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타적인 보리심을 수반하면 대승이고 그렇지 않으면 소승이다. 대승에는 지혜와 방편 두 가지가 있는데, 대승의 방편도에서는 자기 혼자 해탈하여 아라한과를 이루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므로 소승이 될 수 없다.
이 논의 제목인 '귀 라마(Tib. rgyud bla ma, 無上屬, Skt. uttaratantra)'의 의미를 두고 여러 해석이 있다. 우선 한 가지 해석은 이렇다. '귀(Tib. rgyud, 屬)'라는 단어는 우리의 마음의 흐름, 즉 심상속(心相續)을 의미한다. 그리고 '라마(Tib. bla ma, 無上)'는 으뜸·최상이라는 뜻이다. 시작 없는 윤회로부터 구경에 성불에 이르기까지, 흐름이 결코 단절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이 마음의 본성이다. 여기에 따르면 해석은 이렇다. 『보성론』은 마음의 본성(Tib. sems kyi gnas lugs), 즉 '심상속(心相續)에 내재하는 최상의 여래장(如來藏, Tib. de bzhin gshegs pa'i snying po, Skt. tathāgatagarbha)'을 주제로 하는 논이라는 의미가 된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귀(Tib. rgyud, 屬)'는 제자들에게 전해지는 부처님 가르침의 연속된 흐름을 의미하며, 흐름 중에서 으뜸(Tib. bla ma, 無上)이라 함은 가르침 중에서도 3시교(三時敎)의 마지막 법륜(法輪)인 제3차 법륜을 뜻한다.
보통 논의 제목을 지을 때는, 저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제목을 붙이는 경우, 논과 관련된 중요 장소에 의거해서 명명하는 경우 등이 있다. 『보성론』이라고 할 때는 주제로써 제목을 붙인 경우에 해당한다. 나의 생각으로는 "마음의 본성·성품·종성(種姓)·여래장, 곧 마음의 흐름 속에 있는 으뜸가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논"이라는 해석이 가장 적당하다. 『보성론』을 공부하면, 우리 마음속에 위없는 본질이 있으며 이것을 현증(顯證)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통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이해하게 된다.
이제 논(論, Tib. bstan bcos, Skt. śāstra)이라는 용어에 대해 알아보자. 바수반두 논사의 『석궤론』(釋軌論, Skt. Vyākhyāyukti, Tib. rnam par bshad pa'i rigs pa)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논이란] 번뇌의 적들을 남김없이 고치고
악도의 윤회로부터 구제하는 것이다.
ཉོན་མོངས་དགྲ་རྣམས་མ་ལུས་འཆོས་པ་དང་།་ངན་འགྲོ་སྲིད་ལས་སྐྱོབ་པ་གང་ཡིན་ཏེ།
(rnam par bshad pa'i rigs pa, D4061, 136-123a, 2-3.)
이와 같이 논(論, Tib. bstan bcos, Skt. śāstra)에는, 번뇌의 적들을 남김없이 고친다(Skt. śās)는 의미와 악도로부터 보호한다(tra)는 의미가 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