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일본은 서양의 천주교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많이 달랐다. 중국과 일본은 서학과 서교를 구분하여 서학을 받아들이는 방편으로 서교를 허용하였다. 서학은 서양학문과 서양문명이고 서교는 서양종교를 말한다.

천진암 큰방에서 권철신이 이끄는 서학강연에 함께한 모습이다.
천주교의 박해를 피해 조선의 선비들은 주어사와 천진암을 찾아왔고 스님들은 기꺼이 산문을 열어 강학을 도와주었다. 18세기 후반 성호학파 권 철신은 자신이 이끌던 녹암계의 신진학자들과 매년 사찰에 모여 강학을 가졌다. 이때 서학을 연구하고 토론한 학자들이 천주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승훈의 세례와 신앙공동체의 설립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권철신이 이끄는 강학에 함께한 이들은 이벽, 정약전, 김원성, 권상학, 이총억, 이승훈 등이다. 이때 이벽은 불교가사 회심곡풍으로 천주공경가를 짓고 정약전은 십계명가를 지어 불렀다. 성리학을 받드는 조선의 선비들이 불교의 사찰에 모여 스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천주학을 연찬한 일은 종교 간의 우애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조선정부의 천주교 탄압으로 신유박해 때 천진암 스님들도 처형당하고 천진암도 불태워졌다. 천진암 터는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잊혀 있었다. 기록을 찾아 60년대에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를 성지화하는 과정에서 대웅전 터는 권철신, 이벽, 정약종, 권일신, 이승훈 등의 무덤으로 바뀌고 30만 평 부지에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성당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천진암 백년성당은 오는 2079년 한국 천주교회 창립 300주년에 맞추어 완공될 예정이다. 하지만 천진암터가 천주교 발상지 성지로 바뀌는 과정에서 사찰의 흔적은 사라지고 천진암 스님들의 도움으로 강학이 이루어졌던 아름다운 인연은 한 줄의 기록도 남기지 않고 있어 불교도들의 아쉬움을 갖게 한다. 천진암 성지화 과정에서 해운당 대사비는 절두산 천주교 성당으로 옮겨지고 부도탑은 여주시청으로 옮겨졌다.

대웅전 터를 닦아 권철신, 이벽, 정약전, 이승훈의 무덤을 모셨다.
다종교 사회인 한국에 종교 간 아름다운 인연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