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과 육지를 떠도는 외롭고, 억울하고, 배고픈 육도의 영혼들에게 음식을 내어주고 위로하며 이승의 넋을 천상으로 인도하려는 삼화사 수륙재 하단 의식이 한창이다. 꽹과리와 목탁 소리 사이로 모음이 입속에서 으깨지며 풀려나오는 저승의 노래가 이승의 넋들의 서러움을 달래고 있다. 눈을 감고 범패의 짓소리에 홀려 있는데, 책을 소개하는 문자가 들어온다. ‘포검비(抱劍悲)’.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망자들의 회한과 저승으로부터 이승으로 풀려나오는 노랫소리, 칼을 품는 슬픔과 칼을 품고 통곡하는 절규가 뒤섞여 두타산의 모습이 흔들린다.
임진왜란으로 죄 없는 백성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사명은 칼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피 끓는 슬픔을 『사명집』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포검비(抱劍悲), 칼을 품고 슬퍼하다.”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의 승려가 왜 칼을 들어야 했는지, 이 한마디가 그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 한마디는 나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10년 동안 내 귓가를 떠돌고 있었다. - 4쪽 ‘작가의 말’에서 -
역사소설은 독자에게 지난 과거를 현재로 생생하게 공감하게 하는 힘이 있다. 다음 장을 기대하게 되고, 잘 읽히는 이 소설의 작가는 과거를 소환하여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세월은 상처를 안고 흐르고,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이 책에서는 임진왜란을 다루고 있음에도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도, 피 튀기는 전투 장면도 보이지 않는다. 딱 한 장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사명과 함께 고국에 돌아온 천오백 조선인 포로들에게 사명의 부탁으로 포로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편과 음식을 준비하라는 왕의 명이 내렸지만, 동래부사는 기생들과 술을 마시며 마중조차 나오지 않았고, 귀환 포로들은 굶주리고, 일본에서 가져온 귀중품을 탈취하는 포졸들이 생겨나고, 귀환 포로들이 천민 취급을 받으며 죽을 위기가 생겼다. 이때 분노하며 뽑아 든 사명의 포검비와 두 동강난 동래부사의 붉은 피가 적신 사명의 승복 이 한 장면뿐이다. 포검비는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불살생의 율법을 파계할 수밖에 없었던 슬픈 분노의 칼이기도 하지만, 백성을 저버리고 향락과 착취에 눈이 먼 관리를 향해 치켜든 파사현정의 칼이기도 한 것이다.
역사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피가 끓는 웅장한 가슴을 불러내기도 하고, 분노와 울분을 토해내게도 한다.
나라의 위태로움을 경고하는 신하를 무시하는 무능한 조정과 신하들의 권력 싸움에 줄타기를 하며 왕권만을 수호하려는 왕, 의병들을 시기하여 의병장을 죽음으로 내모는 왕과 신하들의 비겁한 잔인함, 권력에 굶주린 이리들이 입으로는 조선을 위하고 백성을 위한다고 하지만, 모두 자신과 가문의 영달을 위해 다른 생명들을 파리 목숨처럼 쉽게 버리는 사람들᠁.
지금도 TV에서는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신병자 같은 독재자들에 의해 가족을 잃고 오열하는 모습, 피 흘리는 어린아이들의 모습들이 여과 없이 보이고 있고,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나뉘어 서로의 이질화 작업에 충실하다.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의 패배를 감추기 위해 전 국민을 동원해 옮겨 심은 교토의 다이고지 벚꽃. 한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다이고 벚꽃축제 속에서 작가는 ‘상처는 아물지만, 흉터는 남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 젊은이들이 이 역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세월이 모든 상처를 흔적도 없이 쓸어가 버린 것 같아 안타까워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광기에 사로잡힌 쇼군 치하의 민생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모한 왕도정치의 세상은 다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대라면 괜찮겠지만, 지도자와 관리가 무능하고 제 욕심이 사나운 시절에 국난이 닥치게 되면, 이것은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워지는 일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살아야 하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2023년의 우리 국민은 안전한가라는 물음에 자신 없기에 더욱 그렇다.
세 여인
전쟁은 백성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죽은 이와는 관계가 멈춰버렸으니 어쩔 수 없으나, 살아 있는 이들의 뒤얽힐 인연과 운명은 얼마나 커다란 한을 쌓을 것인가.
응규(사명의 속가 이름)에 대한 사랑이 신앙처럼 굳어진 여인, 미옥. 결국 그녀는 욕정에서 우러난 사랑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진정한 사랑을 목불로 깎아 사명에게 건네며 ‘이승에서 오라버니를 지키는 보살이 되겠다’는 서원을 세운다. 일본에 포로로 잡혀가서도 도자기에 그림과 글을 넣고, 조선의 학문을 가르치는 품위 있는 여성으로 10년의 세월을 살다 탐적사로 온 사명을 만나 조선으로 돌아와 사명을 모신다. 결국 그녀는 죽음을 앞둔 앙상한 사명의 옆에 누워, 내일 아침이면 깨어나지 않을 사명을 지키며 자신의 서원을 완성 시킨다.
왜적을 피해 낙동강에 몸을 던진 모녀, 미옥과 빈. 빈과 손현의 혼인 약속이 성혼을 코앞에 두고 전쟁이 일어났다. 비변사의 관원이 된 손현은 빈의 소식에 애간장이 녹아나고, 강에 몸을 던진 모녀를 건져낸 왜선은 일본에 도착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지아비의 헛재사를 지내던 빈은 결국 쇼군의 아들과 결혼하여 아들을 얻는다. 전쟁의 와중에 서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두 사람의 만남.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 일본의 서방님과 자식에 대한 모성. 오매불망 잊지 못하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조선의 서방님 사이에서 그녀는 갈등한다. 실제로 10년 동안 익숙해진 일본말과 일본살이, 현지에서 낳은 자식들 때문에 사명과 함께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여인들이 많았던 것이다.
허균의 누나 허초희. 자유분방하게 자랐으나 엄격한 유교 집안의 시어머니와 남편과의 불화. 그 속에서도 낳은 아들과 딸, 뱃속의 아이마저 잃고 시들어 가던 허난설헌. 총명하고 시와 그림이 뛰어나 훗날 명나라에서 <난설헌집>이 간행될 정도였던 그녀였지만, 조선의 유교라는 시대의 장벽에 막혀 개인의 불행을 극복하지 못하고 ‘연꽃 스물일곱 송이 / 꽃 같은 얼굴이 싸늘한 달빛 아래 지는구나’라며 질식해 가던 난설헌. 그녀가 ‘임을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 동안 부끄러워’하던, 남몰래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무(武), 호국을 뛰어넘어 인류애의 자비로
맑은 거문고 소리가 들리는 사명대사의 시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허균이 사명대사의 비문에 쓴 시호에 사명대사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자비의 마음과 선교를 통합한 정신으로 중생을 널리 구제한 존경하는 이. 자통홍재존자(慈通弘濟尊者)’. 사명대사의 정신은 중생 구제가 근본이다. 왜적을 향한 분노나 나라를 지키겠다는 호국(護國)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일본에 건너가서 그들을 위해 부처님 법문을 했으며, 선진 문명을 배우려는 일본인들의 간절함에 답하고, 지도자에게는 무(武)는 전쟁(戈)을 멈추는(止) 일이라는 정확한 가르침과 왕도정치의 길을 추천한다. 사명대사와 이에야스의 담판으로 조선과 일본은 260년 동안 평화를 이루었다.
일본은 조선인의 코를 베어가 귀무덤을 만들었지만, 이순신 장군에게 수몰당한 왜군의 시체를 일본이 보이는 진도의 야산에 묻고 장례를 치러 주었던 곳, 왜덕산(倭德山). 조선에서는 왜군의 시체를 원수의 육체가 아닌, 원통한 마음을 풀어주어야 하는 인간의 영혼으로 본 것이다. 전쟁은 문화의 충돌이기도 하고, 피의 충돌이기도 하다. 문화가 섞이고, 피가 섞이는 것이다. 그 속에서 역사의 역설과 모순이 생겨난다. 모두 인간 역사 속의 최소 단위인 인간이라는 공통분모가 만들어 내는 일이다. 어디에도 인간이 있다. 작가는 ‘포검비(抱劍悲)’와 ‘왜덕산(倭德山)’이라는 우리 백성의 깊은 눈동자 속에 포검비의 슬픔이 호국을 뛰어넘어 인류애로 펼쳐지는 위대한 자비의 정신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저승을 떠도는 영혼들의 서러운 이승살이의 이야기와 그 목숨과 영혼들을 고통에서 건지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애쓰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 전쟁의 싸움은 있으나 중생의 구제를 잊지 않았던 사명대사의 칼 포검비. 그의 진정한 가치는 슬픔을 품은 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