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을 했다. 법정스님의 덕화가 물 든 이의 삶은 어떤 것일까? 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이는 법정스님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변택주 거사(법명 智光)다. 평소 그의 내공과 이름을 드문드문 들었기에,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다만, 이 책이 흔히 큰스님으로 불리는 문도들이나 후학들이 그러하듯이 법정스님을 지나치게 치켜세우는 것만은 아니기를 바라면서.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큰스님들을 높이는 버릇이 생겼다. 이 버릇은 최근들어 거의 고질병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장례도 지나치게 화려하고 거창하게 치른다. 그렇게 하는 것이 큰스님들을 잘 모시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적어도 평생 무소유를 주창하셨던 법정스님의 후학들은 그런 짓을 해선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책장을 펼쳤다.

‘그런데 우리는 법정스님을 뵈었을까?’라는 제목의 짧은 글은 나의 우려가 기우임을 알게했다. 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을 지나치게 치켜세우는 내용이 아니라, 그 진면목을 그와 교유했던 많은 벗들의 오감을 통해 전해주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대각을 이룬 붓다를 처음 만났던 수행자 우파카가 ‘가르침은 스승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고정관념에 얽매여 ‘홀로 무상의 진리를 깨달은 붓다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독자들에게 묻는다. “그런데 우리는 정녕 법정스님을 뵈었을까?”라고.

저자는 이어 ‘법정스님과 함께 가서(同行) 법정스님과 함께 행복했던(同幸)’ 열아홉 사람을 찾아 나선다. 법정의 진면목을 읽어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읽어낸 것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저자 변택주가 찾은 이들은, 독보적인 자기 예술 세계를 구축한 조각가 최종태, 법정 찻잔으로 스님과 인연을 이어 간 도예가 김기철, 그림으로 시를 쓰는 화가 박항률, 농사꾼으로 변신한 방송인 이계진처럼 잘 알려진 분들도 거기 있고, 성철 스님 시봉일기로 유명한 원택 스님, 종교 벽을 허물고 우정을 나눈 장익 주교, 온 누리 어머니로 사는 원불교 박청수 교무와 같이 우리 시대에 큰 길을 가는 종교인도 있는가 하면, 20여 년간 스님 어머니를 모신 사촌동생 박성직, 괭이 한 자루 들고 등산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파 내려오던 백지현, 스님이 왜 길상사에서 딱 하루만 묵으셨는지 사연을 들려 준 홍기은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법정 스님은 어떤 분일까? 또 법정 스님에게 그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법정 스님의 숨겨진 인간적인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법정 스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경험을 나눠 준다. 그 속에서 법정 스님이 우리에게 진정 전하려던 메시지가 종이에 물 스미듯 물들어 올 것이다.

저자는 ‘법정, 나를 물들이다’라는 제목에 대해 반쪽자리 제목이라고 설명한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동기를 충분히 담지 못한다는 것이다. 책을 마무리하는 글에서 저자는 “스승은 홀로 스승이 아니다”(351쪽)라고 밝힌다. “법정과 내(인터뷰이)가 하나도 아니지만 둘도 아니라는 말이다. 불이(不二)고 연기(緣起)”라는 것이다.

저자는 김기철 편을 통해 법정스님과 그의 길벗들이 동행을 하며 행복을 만들고 나눈 사람들임을 강조한다. “스님한테 책이나 음악들을 소개받기도 하고, 저희 또한 좋은 책이나 영화를 보면 스님께 알려 드렸어요.”(105쪽)라는 김기철의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불일암을 찾는 바람에 법정 스님이 참기 힘들다고 하자 대뜸 “스님! 그게 싫으시면 글 쓰지 마세요. 글을 쓴다는 건 사람을 부르는 일입니다. 그 사람들도 많은 고민 끝에 어렵사리 찾아오는 건데 그렇게 예의 없는 사람 취급을 하시면 어떻게 해요?”(144쪽)라고 윽박지르는 진명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법정의 향훈이 일방향적으로 그들에게 스민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서로의 맑고 아름다운 것들을 스미게 했음을 강조한다.

이 책의 매력과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방적인 찬양과 찬사가 아닌, 저 법정이라는 동시대를 살았던 생불같던 큰스님도 뭇중생들과 함께 부대끼며 자신의 안목과 향훈을 닦고 만들어갔음을 알려준 것이다.

이쯤되면 이 책에 대해 더 소개할 것도 없겠다. 설날을 맞아 참 새해가 시작되는 이즈음, <법정, 나를 물들이다>(불광출판사)의 일독을 권한다. 법정과 그와 교유했던 도반들이 가꾸고 키운 맑고 향기로운 기운들이 온전히 온몸으로 스며들 것이니….

*지은이 지광 변택주는?
오랫동안 법정 스님 글을 읽고 문뜩문뜩 뵙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지만, 번거로움을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 찾아뵙지 못하다가 길상사가 문을 열고 난 이듬해 봄 곁님 손을 잡고 간 길상사 법석에서 처음 뵈었다. 그리고 열두 해 남짓 법정 스님 길상사 법회 진행을 맡아보게 되어 스님 턱 밑에서 법문을 듣는 영예를 안았다.
법정 스님께서 아둔하고 미욱한 탓에 슬기로워지라고 지광智光이란 법명을 지어 주셨건만, 워낙 어리석은지라 스승이 열반에 드신 뒤에도 뜻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그러다가 ‘부처님 모습을 새기면 불상이요, 부처님 말씀을 모아 담으니 불경이고, 부처님 목소리를 옮기면 종소리’라는 에밀레종에 쓰여 있다는 말씀을 떠올리고는, 스승 자취를 더듬어 보겠다며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 흉내를 내며 스승을 뵈었던 선지식을 찾아다닌다.
틈틈이 인지학人智學 강의도 하고 ‘疏通이면 笑統’이라며 기업커뮤니케이션코칭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