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국인을 살린 일체유심조 

                                                   정찬주(소설가)

삽화 정윤경 

페이스북 친구인 미국인 메티 베게하우프트(Matty Wegehaupt) 씨가 오전 11시에 이불재를 방문했다. 독일계 아버지 성은 베게하우프트이고 조부와 증조부는 성이 외우기 힘든 아일랜드계라고 한다. 현재 그는 위스콘신주 로렌스 사립대학에서 한국문화, 한류, 한국단편소설 등을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다. 

우리는 이불재에서 아내와 함께 1시간 30분 동안 차담(茶談)을 나눈 뒤, 쌍봉사에서 수제비 점심공양을 하고 쌍봉사 주지 스님이 내려준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정담을 나누었다. 베게하우프트 씨는 쌍봉사 차로 오후 2시 40분에 이양역으로 떠났다. 71년 생 돼지띠이니 52세일 것이다. 

그와 나눈 얘기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미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가 자퇴하고 위스콘신주 주립대학으로 재입학했다는 사연이었다. 그때 걸프전이 미국 부시대통령 주도하에 정의라는 명분으로 발발하여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이 조종사가 되어 누군가를 살상(殺傷)하는 것이 과연 정의일까, 라는 고민이었는데 그 해답을 자신이 신앙하던 천주교 교리 안에서 찾을 수 없었으므로 불교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며 <화엄경>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서 마음의 위안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또한 그는 법정스님을 길상사에서 한번 뵌 인연으로 스님의 산문집 두 권을 영역했는데, 법정스님에 대한 나의 <소설 무소유>와 산문집을 읽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26년 전, 그러니까 26세 때 광주에서 원어민 영어 강사를 하는 동안 쌍봉사까지 자전거를 이용해 왔다고도 말했다. 송광사에서 3일 간 템플스테이 하고 이불재와 쌍봉사에 왔다고 하면서 내일은 대흥사를 방문해 서산대사의 흔적을 만나보고 호국불교가 어떤 논리인지 궁금증을 풀어보겠다고 하는데, 탐구심이 넘치는 미국인인 것 같다. 그의 아내 도미니카 장(Dominica Chang)은 3살 때 미국으로 건너와 사는 재미교포인데 대학에서 불어를 강의하는 교수라고 한다. 그는 현재 위스콘신주의 한 사립대학에서 한국 관련 과목의 강사로 재직하면서 한국문화와 역사는 물론이고 한국단편소설 수업도 했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소설 <시간이 없다>와 <아소까대왕>을 선물했다. 아내는 부엉이 연적을 선물했고. 스승 없이 불교를 독학으로 접했다고 하지만 채식주의자인 그의 언행은 이미 불법의 향기가 사뭇 싱그러웠다. 쌍봉사에서 헤어질 때 그는 증현 주지 스님께 삼배를 했다. 주지채를 나와서는 내게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순간 그의 순수한 행동이 나를 당황하게 했는데 그 모습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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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족 주지 담마팔 스님이 나와 안사람을 맞이한다. 선한 눈빛이 수행자답게 자애롭다. 통통한 체격도 넉넉하고 너그러운 인상을 준다. 법당에 참배하고 있는 동안 석가족 마을인 자스라즈푸르 주민들 20여 명이 찾아와 코리아에서 온 이방인을 환영해 준다. 특히 20세의 아마추어 소녀 가수 비나가 부처님을 찬탄하는 찬불가 CD를 나에게 선물한다. 사례하려고 하자 수줍게 웃으며 받지 않는다. 

마을사람들은 석가족의 후예라는 자긍심이 대단하다. 모두가 왕족인 크샤트리아 계급이라고 말한다. 가난하지만 궁기를 풍기지 않는다. 자스라즈푸르에는 석가족 1천여 명이 살고 있고 인접에는 10만 명이 아직도 '샤카(Shakya)'라는 성을 가지고 있으며 매년 10월 25일과 26일에는 불교축제를 즐기며 격월로 불교잡지도 발간하고 있다고 한다. 상카시아 출신의 석가족 중에는 주지사, 국회의원, 장관도 있다고 하니 다음에 또 와 기회가 생긴다면 그들과 만나 얘기하고 싶다. 2천 5백여 년 전에 실존했던 부처님의 후예들이 멸족하지 않고 힌두교에 동화되지 않은 채 불제자들로서 고 상카시아에 살고 있다니 경이롭다. 2천 5백년이란 시공을 초월한 만남이었다. 이 글은 2012년 9월 27일의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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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 6시 30분에 이불재를 나서 복천암 월성스님을 뵙고 난 뒤 복천암 경내에서 취재를 마저 하고 돌아와 시계를 보니 오후 7시다. 13시간 동안 강행군하며 외출한 셈이다. 복천암의 채마밭에서 매운 냄새를 풍기며 몸을 불려가는 무들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무는 날이 차가워질수록 잎은 파랗게, 몸집은 튼실해진다. 사람도 마땅히 시련을 무처럼 극복해가야 하리라. 신미대사 부도 둘레에 선 소나무의 솔향도 진했다. 지금도 코끝을 스치는 듯하다. 월성스님으로부터 귀한 자료를 건네받았다. 펴보니 신미대사와 관련된 조선왕조실록 발췌록이다. 다음 소설의 첫 현장취재였다. 연말까지는 초고라도 집필을 완료해야 내년이 편할 것 같다. 주말에는 부탄을 가야 하는데, 내일은 서울 sbs에서 1박 2일로 촬영을 오겠다고 한다. 다음 주 월요일 오후 6시에 방송된다고 하니 그때쯤 나는 부탄에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모습과 이불재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하니 감사해야 할 일이다. 내 가풍이 있다면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것이니 누가 오건 간에 신경 쓸 일은 아닌 듯하다. 이 글은 2013년 9월 23일의 사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