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 선생의 신작 에세이 『서른부터 다가온 반야심경의 행복』. 붉은 일몰의 초록빛 산맥을 바라보는 산사의 처마 밑에 풍경이 고요히 매달려 있는 삽화 위로, 모나지 않은 글씨체가 동그랗게 제목을 그리고 있다. ‘다가오는 것’은 여명이 터오듯 시나브로 다가오기도 하고, 벼락을 맞은 것처럼 문득 다가오기도 한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매우 주관적이면서, 숙명적으로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다. 개인의 ‘행복’한 감정이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얼마나 무기력한지에 대해 절망하곤 한다. 그런 개인과 관계 속에서 작가에게 ‘행복’은 <반야심경>이라는 뗏목을 타고 ‘다가온다’.

작가에게 <반야심경>은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 육십대의 인생을 거쳐 오는 동안 차츰 깊이가 다르게 다가왔고, 초행길의 인도 영취산을 안내해주던 콧수염의 인도 경찰에게 들은 붓다의 어원이 ‘눈을 뜬 이’라는 말. 그 말은 시공을 초월해서 인과관계로 얽힌 현상을 통찰하는 관자재보살의 ‘눈 속의 눈慧眼’을 발견하는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그에게 ‘행복의 열쇠’는 ‘어쩔 수 없는 생존’에서 새순처럼 올라오는 ’거듭 나는 삶‘으로 시나브로 혹은 문득문득 실현에 가는 일이다. 관계 속에서 변화하기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공空과 허상을 의미하는 무無를 통해 ’놓아버리기‘. 그 ’놓아버리기‘로 공空과 무無를 실천하는 일이 작가에게 집착과 번뇌에서 벗어나 ’행복‘으로 다가온다.

행복은 진실을 이해하고, 발견해가는 길 속에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반야심경>의 가르침을 ’고통으로부터 행복 찾기‘라고 얘기한다. 관자재보살이 비추어 본, 모든 존재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속성인 공성空性을 아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주저함 없이 말한다. 눈앞에 보이는 대상(色)이나 대상을 보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受), 생각(想), 행위(行), 인식(識). 이 다섯 가지로 ‘쌓이는 무더기五蘊’는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실체가 없는 헛것이며 그림자이다. 여기서 작가는 공空을 인도에서 생긴 0이라는 숫자를 떠올린다. 그리고 모든 수에 0을 곱하면 0이라는 쉽고 자명한 등식에 오온을 대입하여 작가만의 독특한 방편으로 0은 공空이라는 이해를 찾아낸다. 작가는 대학시절에 문득 김춘수의 시 <꽃>을 떠올리다가 이 시야말로 불교시라고 무릎을 치며, 시인이 번민과 고독으로 절제한 보이지 않는 자리, 그 긴장과 사유의 여백 속에서 오온이 공하다는 사색을 잡아 올린다. 

쌍봉사 협곡에 자리한 조그만 소리도 크게 공명하여 들리는 작가의 처소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그들 중에는 아무리 공부를 해봐도 <반야심경>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농부. “불교를 공부하고 싶은데 무슨 경전을 읽어보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어보는 불교로 개종한 손님. 5년마다 대나무를 베어와 사립문을 고쳐주는 산중농부 마을 노인도 있다. <암자로 가는 길>을 배낭 속에 넣고 다니는 노신사는 작가의 집인지도 모르고 툇마루에 낯선 길손으로 앉아 있다. 요즘처럼 ‘행복’이라는 단어가 흔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우리의 삶이 고단하다는 말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행복을 이야기하지만 너무 어렵거나 전문적이어서 소화불량인 경우가 많다. 진리를 향한 깊은 사색이 쉽고 친절한 언어로 다가오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들에게 <반야심경>의 행복으로 가는 길목이라도 알려 주기 위해 작가는 생활언어로 바꾸어 나누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며 개인의 내밀한 행복을 관계 속의 행복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지금도 자비로운 고민을 하고 있다. 

『서른부터 다가온 반야심경의 행복』 속에는 작가의 처소인 이불재耳佛齋의 사계절이 아름답게 흘러간다. 봄의 매화향은 집 주위를 밤새 감싸고 새벽 작가의 집필을 같이 하고, 옥비녀처럼 생긴 옥잠화는 밤안개가 충만한 꼭두새벽마다 비밀스러운 향기를 귀로 듣게 한다. 사립문 옆의 대숲에서 들리는 딱새 한 마리의 노랫소리는 맑은 즐거움을 선사하고, 이른 새벽 산새가 쪼아 먹고 있는 선홍빛깔 홍시 언저리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첫눈이 얹혀 있다. 책 한편에는 낙엽이 쌓인 것 같은 이미지가 산과 하늘과 바다와 바람으로 흘러가는 사이로 연꽃이, 산사가, 초승달과 일상들이 삽화로 조용히 가라앉아 글에 긴 여운을 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