蓮이를 위하여10
(©장명확)
잠에서 깨어나자 머리가 몹시 아팠다. 콩을 볶는 듯한 총소리. 간간 멀리서 들리기는 하였지만 이렇게 가깝게 들리는 것은 처음이다. 그렇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밤이면 밤마다 난 내 마지막을 준비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어머니가 계신 곳, 항상 그 결론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이……, 어머니 제삿날이다. 열흘 전에 경묵이가 날짜를 알려 주었다. 그가 내게 날짜를 알려준 것은 처음이다. 그는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불행하게도 그 웃음의 의미를 알고 있다.
어머니. 내가 비록 여섯 살 때였지만 이 세상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얼굴을 잘 기억하고 있다. 내가 마지막 본 옥색 치마저고리, 하얗게 눈 덮인 고갯길에 나를 싸안고 꽁꽁 얼어있던 모습, 아무리 억겁의 세월이 지나도 어머니의 모습은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난 어머니 산소에 가지 못한다. 갈 수가 없다. 마을 사람들이 어머니를 마을 앞 동구 밖에 묻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상하게 임순이가 따라붙는다. 임순이는 어머니를 잃고 난 이후 얻은 또 다른 나의 어머니였는지도 모른다.
경묵이의 누이, 임순이와 혼인한 첫날밤.
임순이는 정말 꽃과 같았다.
“오빠?”
“…….”
“뭘 하실 작정이세요?”
“나무를 심을까?”
“무슨 나무요?”
“미루나무?”
“할머니는 그 나무를 웃음 나무라고 했어요.”
“오호!”
“그렇지만 집 근처에 웃음 나무를 심으면 미친 사람 나온 대요.”
“어째서 미루나무가 웃음 나무가 됐을까?”
“옛날에 할머니하고 손자, 손녀딸하고 셋이서 살았대요. 그런데 할머니가 죽을 때가 되었어요. 저승사자가 찾아왔지요. 어린 것들을 두고 갈 수 없다는 할머니에게 저승사자가 소원을 물었어요. “죽어서 무엇이 되겠냐?”고. 할머니는 동구 밖의 웃음 나무가 되겠다고 했어요. 언제 어디서든 손자나 손녀딸이 찾아오면 가장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동구 밖의 웃음나무…….”
우리는 밤이 새도록 오직 미루나무 얘기만 했다. 그때 내 외투 호주머니 속엔 평양으로 가져갈 전단의 원본이 들어 있었다. 그때까지 임순이는 내가 서울에서 큰 공부를 하고 있는 줄 알았다. 나로 하여 가버린 어머니도, 임순이도 내게는 모두 미루나무다. 웃음 나무다.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은 아프지만 마음은 따뜻하다.
가랑가랑.
반짝반짝.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동구 밖 미루나무가 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들의 뒤편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경묵이가 술을 가져왔다. 난리가 나기 전까지 어머니 제사는 마을 제사였기 때문이다.
“웬걸?”
“자네 때문이 아니야.”
“그럼?”
“…….”
“어떻게 알고?”
“오늘은 항상 새알 미역국을 먹었지. 자네가 새로 태어났다는 뜻으로.”
“그것 좀 해오지 그랬나?”
“미역을 구할 수가 없었어.”
“합칠 수 없지?”
또 습관처럼 그렇게 물었다. 전혀 없는 줄 알면서.
“틀렸어.”
“왕래도?”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인데.”
“왕래라도 되면…….”
“자네, 이북 가려고?”
번연히 알면서 놀린다.
“난 죽어도 거긴 안 가네.”
늘 하던 대답.
“자넨 여기서 못 살아. 이렇게 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북쪽으로 가게.”
경묵이의 말은 간절하다.
“미안 하이. 그렇지만 난 이곳에 살 걸세. 죽을 때까지.”
대화는 거기서 끊겨버렸다. 그도 나도 캄캄한 마을을 노려보았다. 하늘의 별, 그래도 행복한 밤. 잠시 후 그는 마을로 내려갈 채비를 하고 있다.
“더 있다가 가지?”
“꼼짝 말고 있어야 돼. 움직이면 죽어. 아직도 남아 있는 산사람들 때문에 난리가 아니야. 경찰이나 군인보다 더 무서운 게 마을 사람들이야. 법이 없어.”
“언제는 우리가 법대로 살았나?”
“절대로 불을 피워서도 안 되고, 당분간 신호도 보내지 말게. 경찰들보다 마을 사람들이 더 혈안이야. 그렇지 않아도 자치 대원들이 청리산을 뒤지자고 그러는 통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데.”
“그럼, 조만간 오겠구먼.”
“아직은 괜찮아. 말만 그렇지. 큰 산이면 몰라도 마을 뒷산에 누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아. 그리고 마을 청년들 다 합쳐야 열 명도 안 돼.”
“그건 무슨 소리?”
“흐, 일부는 국방군으로 나가서 죽고, 일부는 자네도 잘 알잖아?”
그렇지. 경묵이가 끝맺지 못한 말대로 일부는 나로 하여 죽거나 북쪽으로 갔다. 그나마 이어지던 대화는 거기서 완전히 끊겨버렸다. 경묵이의 “자네도 잘 알잖아?” 그 물음은 그나마 남아 있던 기력을 몽땅 앗아갔다. 무슨 대답을 할 수 있는가. 멍청하게 앉아 있는 나를 놓아두고 경묵이는 내려갔다. 동굴 밖으로 나왔다. 벌써 밤은 겨울이다. 그러나 조금도 춥지 않다.
**
미칠 듯한 고통. 그러나 그것은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다. 조그만 마음의 상처에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는 사람은 순수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고통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내 고통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공포가 나를 깨어 있게 한다. 반짝이는 별들로 뒤덮인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이 내 슬픔의 동굴을 가득 굽어보고 있다.
달빛이 굽이진 동굴의 입구를 새어 들어오고 있다. 오늘 밤 따라 유난히 달빛이 눈부셔서 아래로 보이는 나의 마을은 물론이고, 샛말 들녘에서 청리산까지의 모든 생명들이 완전히 탈진해 버린 것 같다. 바람 한 점이 없다. 모든 것이 정지해버린 세계다. 너무 고요하다. 소란과 들뜬 목소리가 그립다.
당장 내일 물러설 수 없는 결투로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림자도 찾을 수 없다. 도무지 싸울 수가 없다. 천지사방 곳곳에서 차례차례 주위의 동료들이 쓰러져가도 사람들은 그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해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니, 내 바깥이나 안에서 야금야금 나를 갉아먹고, 종내에는 무참하게 이곳에서 살았다는 흔적마저 매장해버리는 무서운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하다. 분명 어딘가에 숨어 있을 그 적을, 보지는 못해도 최소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확실한 인식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이런 피할 수 없는 상황 아래에서, 나는 한때 마치 혁명이라는 것이 삶의 전부인 양 목청을 높였다.
바로 눈앞에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천 길 만 길 낭떠러지 외길을 두고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난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도 처음 시작한 의무감 때문에 죽을 때까지 이 짓을 계속한다면, 난 아무도 없는 마당에서 홀로 웃음을 팔아, 모래 위에 울음 집을 쌓는 어리석은 광대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침상에 누웠다.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옆에서는 새들이 지저귀고 있다. 이제 놈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산에 사는 짐승들의 슬픈 마음을. 자신의 둥지를 빼앗긴 놈들이 오늘도 왔다 갔다. 그러나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가엾은 놈들. 엄밀히 말하면 나는 놈들에게 처참하게 죽어야 한다. 내가 놈들의 삶 전체를 빼앗았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마땅한 둥지를 구하지 못해 저리 서성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한겨울이 다가오는데. 난 따뜻한 불을 피우고, 환한 등불을 걸어서 놈들의 삶을 난도질했다. 놈들에게는 어린 새끼들이 여럿 딸려 있다. 낑낑거리는 앙증스런 모습. 번쩍번쩍 빛나는 눈, 북실한 꼬리, 뾰족한 주둥이, 대충 보아도 열 마리 이상은 되는 것 같다. 나는 돌을 던져 놈들을 내쫓았지만, 내심으로는 놈들과 함께 이곳에 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를 생각했다.
우우웅!
우우웅!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