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책이 한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적이 있었다. 하버드대 출신 혜민 스님이 쓴 책인데, 불자들보다 일반인들에게 더 큰 호응을 받았다고 한다. 책 제목에는 매우 심오한 가르침이 깃들어 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멈추면 평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찾아볼 수가 있다. 책 제목이 일반인들의 큰 공감을 얻으면서 판매량이 늘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케이티엑스를 타고 갈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것이 무궁화 열차를 타고 가면 잘 보인다. 자동차를 타고 갈 때보다 자전거를 타고 갈 때 더 많은 것이 보이고, 걸어갈 때보다 잠시 멈춰 섰을 때 보다 많은 것을 만날 수가 있다. 무심코 스쳐 갔던 논둑이나 밭둑, 길 가장자리에도 많은 종류의 볼거리가 있다. 잠시라도 시간을 내 쪼그리고 앉아서 자세히 살펴보면 평소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수많은 유·무정 중생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 https://ko.wikipedia.org/wiki/제비꽃과)
멈춰 서지 않는다면 잘 보이지 않는 꽃 가운데 하나가 제비꽃이다. 엷은 색이기 때문에 힐끗 보아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꽃이다. 사실 자전거나 차를 타고 이동할 때면 꽃인지 아닌지 분간하기도 힘들 만큼 작은 꽃이기도 하다. 제비꽃은 제비풀이라고도 부르는데, 제비라는 명칭을 갖고 있는 식물의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은 식물체 크기가 작다는 점이다. 제비꽃 식물체의 높이는 고작 12cm 정도이다. 잎은 뿌리에서 뭉쳐나고 피침(鈹針) 모양이다. 4~5월에 자주색의 꽃이 잎 사이에서 나온 꽃줄기 끝에 한 개씩 옆을 향하여 피고, 열매는 삭과(蒴果)이다. 삭과란 열매 속이 여러 칸으로 나누어져서, 각 칸 속에 많은 종자가 들어있는 구조를 말한다.
제비꽃, 즉 제비풀과 관련된 붓다의 가르침이 <마하박가> 다발부 제8장 ‘옷의 다발’에 등장한다. 한때 어떤 수행승이 제비풀줄기(Akkanāḷa, 악까날라)로 짠 옷[가사]을 입고 세존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 이 수행승은 가까이 붓다에게 다가가서 예의를 차린 후 제비풀줄기로 짠 옷을 수행자들이 입을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수행승은 이런 요청의 이유로 제비풀줄기로 짠 옷은 욕망을 여의고, 만족을 알고, 버리고 없애는 삶을 살고, 두타행을 하고, 청정한 믿음이 있고, 쌓아 모으지 않고, 용맹정진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제비풀줄기 가사를 입은 수행승의 요청을 들은 붓다가 준엄한 목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어리석은 자여, 그것은 적절하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고, 알맞지 않고, 수행자의 삶이 아니고, 부당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어리석은 자여, 그대는 어찌 제비풀줄기로 짠 옷을 입는 이교도의 징표를 본받으려 하는가? 어리석은 자여, 그것은 아직 청정한 믿음이 없는 자를 청정한 믿음으로 이끌고, 이미 청정한 믿음이 있는 자를 더욱더 청정한 믿음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어리석은 자여, 그것은 오히려, 아직 청정한 믿음이 없는 자를 불신으로 이끌고, 이미 청정한 믿음이 있는 자 가운데 어떤 자들을 타락시키는 일이다.”
붓다는 이어 이 수행승의 키우기 어렵고, 부양하기 어렵고, 욕심이 많고, 만족을 모르고, 교제를 좋아하고, 나태한 태도를 책망했다. 붓다는 이어 붓다 상가의 여러 수행승들에게 제비풀줄기로 짠 옷을 걸치는 것을 금하는 규칙을 설했다.
“수행승들이여, 제비풀줄기로 짠 옷을 입는 이교도의 징표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 본받는다면 악작죄(惡作罪)가 된다.”
붓다는 제비풀줄기(Akanāla)로 만든 가사와 함께, 붓다 상가의 수행승들이 올바른 가사를 착용하는 것에 대한 상세한 원칙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하여 결코 입어서는 안 될 ‘금지된 가사’의 기준을 제시했다.
먼저 자이나교도와 같은 나체주의를 추종하거나 다른 부파의 교의를 받아지니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금지된 가사 가운데 나체, 즉 옷을 입지 않는 것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붓다는 외도(外道)의 상징인 꾸샤 풀 옷, 나무껍질 옷, 나무껍질 조각 옷, 머리털로 짠 옷, 말꼬리 털로 짠 옷, 올빼미 날개털로 짠 옷, 검은 영양 가죽 옷 등 (외도의 옷을) 입는 것은 무거운 범계(Thullaccaya, 툴랏짜야)를 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비구가 재가자 옷이나 다른 교단의 옷을 입는 것도 무거운 범계로 간주했다. 범꼬리난초(Makaci) 섬유로 만든 가사도 엄금했고, 나아가 파란색, ‚노란색, 붉은색, 진홍색, 검은색, 붉은 남색(오렌지 색)의 원색 가사를 입지 말 것을 분명히 했다. 또한 옷깃(가사 가장자리)을 조각으로 만들지 않은 가사, 옷깃을 길게 늘어뜨린 가사, 옷깃에 꽃을 단 가사, 옷깃에 뱀 머리 모양의 두건을 단 가사, 외투(Kañcuka, 재킷), 띠리따(Tirīta)나무로 만든 가사, 터번(머리에 감는 수건)을 입어서는 안 된다. 그런 자는 ‘둑까따(Dukkaṭa)’, 악작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늘날 한국 불교계에는 수많은 종단이 난립 중에 있다. 조계종이라는 종명을 쓰는 종단 수가 100개도 넘는 것이 사실이다. 종단이 많다 보니 가사의 형태, 규격 등도 각양각색이다. 원칙도 없고 멋대로 만들어 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무질서는 가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혹한기나 혹서기에 쓰는 모자의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그러다 보니 수행자의 위의(威儀)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한국불교 전반에서 율장 정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시급한 이유이다. <청정도론>에 “계를 지닌 이[수행자]를 위해서 한 행위는 비록 적을지라도 큰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계를 지닌 이는 공양과 공경의 그릇이 된다.”는 가르침이 있다. 수행자는 ‘공양과 공경의 그릇’이라는, 태산보다도 크고 무거운 가르침이 한국불교에서도 존중되고 성성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