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무로 만나는 붓다’- 도토리나무(참나무, Quercus) ㉒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뒤 4년째 되던 여름, 까삘라왓투에는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고 있었다. 로히니(Rohīnī) 강을 사이에 둔 사끼야(석가) 족과 꼴리야 족들 사이에서 강물을 끌어대기 위한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다. 바둑판처럼 갈라져가는 논바닥을 바라보는 농부들의 가슴은 타들어갔고, 서로 먼저 물을 대겠다며 다툼이 벌어졌다. 얼마 되지 않는 강물을 양쪽에서 사용하면 두 쪽 다 농사를 망치게 될 것이니, 먼저 파종을 끝낸 쪽이라도 물을 대는 게 합리적이라는 주장, 늦게 파종했다고 물을 양보하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주장은 삿대질로, 삿대질은 주먹다짐으로, 주먹다짐은 패싸움으로 번졌다. 싸움은 점점 격렬해지면서 두 종족 사이에는 일촉즉발 전쟁의 위기까지 닥쳐왔다. 서로에게 본때를 보여주자고 결의한 양 종족은 코끼리부대와 기마부대, 칼과 창으로 무장한 병사들까지 동원되어 충돌 직전의 상태까지 치달았다. 이 광경을 천안으로 살펴보던 붓다가 생각했다. 

‘내가 가지 않으면 나의 친가와 외가 두 부족은 공멸하고 말 것이다. 그들을 화해시키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다.’

혼자서 조용히 처소를 나선 붓다는 공중으로 몸을 날려 한 순간에 로히니 강 중앙의 공중에 결가부좌를 한 채로 모습을 나타냈다. 붓다의 돌연한 출현에 양 부족은 크게 놀라 순간 모든 종작을 중지했다. 갈등이 일어난 연유를 물은 뒤 붓다가 물었다. 

“이 강물과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소중한가?”

“물보다 사람이 더 소중합니다.”

“그런데도 물을 위해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버리겠단 말인가?”

두 종족들은 머리를 숙였다. 붓다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사람들을 가까이 불러모았다. 칼과 창을 내려놓은 그들에게 붓다가 말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겠습니다. 어느 종려나무 숲에 한 그루 도토리나무(Quercus)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 아래 살던 토끼 한 마리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면 어쩌지.’ 바로 그때 도토리 하나가 종려나무 잎사귀에 털썩 소리를 내며 떨어졌답니다. 겁 많은 토끼는 깜짝 놀라 ‘큰일 났다. 하늘이 무너진다!’라고 소리치며 달렸답니다. 옆에 있던 토끼가 이 말을 듣고 함께 달리기 시작했고, 두 마리 토끼는 곧 여러 마리의 토끼로 늘어나더니 이내 수천 마리의 토끼들이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토끼들의 소란에 온 숲은 벌집을 건드린 듯 들썩였습니다. 노루도, 멧돼지도, 물소와 코끼리까지 모두 두려움에 떨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언덕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자가 생각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졌다고? 그럴 리가 없지.’

온갖 동물들이 달리는 길목에 벼랑이 자리하고 있었답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다 죽을 것이 뻔했습니다. 숲의 동물들을 가엾게 생각한 사자는 쏜살같이 행렬 앞으로 달려가 큰 소리로 포효했습니다. 사자의 기세에 놀란 동물들이 멈춰 서자 사자가 ‘왜 도망가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동물들은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사자는 ‘누가 그것을 보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추궁하던 사자는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이 겁쟁이 토끼에서 시작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자가 토끼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직접 보았다’는 토끼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사자는 숲속 동물들을 이끌고 토끼가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는 장소로 갔습니다. 그 자리에는 굵은 도토리 한 알만 덩그러니 뒹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사자는 도토리를 주워 토끼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게 네가 보았다는 하늘인가?’”

붓다의 이야기를 듣던 사끼야 족과 꼴리야 족 군사들은 머쓱한 표정을 지은 채 깔깔 웃었습니다. 그러자 붓다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습니다. 

“친족들은 서로 화해해야 합니다. 친족이 화목하면 어떤 적들의 침략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저 히말라야의 숲을 보십시오. 거센 태풍이 불어도 저 숲은 온전합니다.”

붓다는 두 부족에게 거듭 화목과 평화를 당부했다.          

우리말에 ‘참’이라는 접두사가 있다. ‘참’은 참뜻이나 참말 등에서와 같이 명사 앞에 붙어 진짜 또는 진실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그래서 참이라는 접두사가 붙는 대상은 그것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그 분야에서 최고의 질[quality]를 자랑하는 존재임을 상징한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담고 있는 꽃으로 알려진 진달래의 다른 이름은 참꽃이다. 새고기 중에서 참새고기가 가장 맛이 좋아 이름도 참새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장작불을 지펴본 사람이면 다 아는 것이지만 장작 중의 으뜸은 참나무 장작이다. 여러 나물 가운데 향기로 으뜸은 참나물이다. 

참나무는 진짜나무라는 뜻이다. 다른 나무가 가짜라는 것이 아니라 나무 중에 으뜸이라는 의미다. 아마도 선조들이 목재로의 가치뿐만 아니라 특히 도토리로 대표되는 구황식량을 제공하는 등 쓰임새가 많아 참나무라는 이름을 붙인 듯싶다. 참나무의 학명에서 속명은 퀘르쿠스(Quercus)인데, 이는 켈트어의 고품질(quer)과 목재(cuez)의 합성어에서 유래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참나무의 열매는 도토리이다. 그래서 참나무는 도토리나무라고도 부른다. 참나무의 다른 이름이 도토리나무인 것이다. 도토리는 한반도 농경시대의 구황식량으로 가장 중요했다. 1434년(세종 16), “흉년을 대비한 구황작물로는 도토리가 제일”이라는 경상도 기민 담당 관리의 상소문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라산 중턱의 아름드리 물참나무가 갑인 흉년 때 도토리를 많이 맺어 백성의 굶주림을 해결해 줬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여신 디오네가 제우스를 참나무 가지 위에 요람을 만들어 양육했다는 이유에서 제우스에게 제물로 참나무를 바쳤다고 한다. 또한 영국인들은 참나무 잎을 종교적인 뜻으로 숭상했고, 일본인들은 가을이 되면 잎을 지키는 신이 참나무에 머문다고 해 참나무를 신성시했다. 인디언들은 도토리를 생산해 내는 참나무를 근간으로 해서 영토의 경계를 삼았다. 

참나무에는 여러 종이 있다. 참나무란 참나무과 참나무속에 속하는 여러 수종(樹種)을 가리키는 통칭인 셈이다. 참나무속(屬)에 속하는 나무는 모두 ‘도토리’라는 견과(堅果)를 생산하므로 '도토리나무'이기도 하다.

이 도토리나무와 도토리 이야기를 통해 붓다는 자신의 친가와 외가 두 부족의 갈등과 싸움, 전쟁을 막고 화해와 화목, 행복의 길을 열어주었다. 또한 이때 붓다의 위신력에 감복한 두 부족의 청년 500명이 출가해 비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