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무로 만나는 붓다’- 말리까(Malikā)와 밧씨키(Vassikī) ㉑ 

말리까(Malikā)와 밧씨키(Vassikī)는 모두 ‘꽃이 만발한 재스민(the great-flowered jasmine)’을 말한다. 꽃이 만발한 재스민에서 풍겨 나는 그윽한 향기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말리까[밧씨키], 즉 재스민은 향기 좋은 꽃의 대표격으로 독특한 달콤새콤한 향기는 향수나 향료로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데, 우리에게 재스민은 중국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꽃차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독자들 가운데 중국 요리집에서 향기로운 재스민 차를 음미해본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재스민은 ‘향기로운 꽃’이라는 뜻의 페르시아어 야스민(yasmin)에서 왔다. 따라서 야스민이든 재스민이든 모두 소녀의 이름으로 자주 쓰인다. 재스민의 꽃잎들은 매우 자극적인 향을 뿜는데, 한밤중에 더욱 강해지는 경향이 있어 최고의 최음제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 향기가 불안을 진정시키고 우울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고 있고, 아로마 테라피에도 재스민 오일을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재스민은 히말라야 산맥의 작은 언덕과 갠지스 강의 평야 지대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이 꽃은 다른 나라로 수출되자마자 왕과 황제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고 한다. 15세기부터 아프가니스탄, 네팔, 페르시아의 왕실 정원에 재스민을 심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중국 송대의 한 황제는 신하들에게 수백 개의 재스민 화분을 들고 궁전 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도록 하면서 움직이는 향기를 음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대 아시아에서는 재스민 향기가 영혼의 가장 깊은 부분까지 스며들어 감정을 자극한다고 믿었다. 인도에서는 신성한 희망을 상징하는 종교적 번제의 제물로 많이 사용됐다. 재스민 꽃으로 엮은 화환은 인도의 결혼식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꽃은 조그마한 별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꽃들을 머리에 꽂는 행위는 동양의 전통이었다. 태국에서는 재스민을 모성애에 대한 감사, 중국에서는 여성의 상냥함을 강조하기에 이상적인 장식으로 간주했다. 재스민은 품위를 뜻하기도 하고, 섬세, 관능, 유쾌한 기분 등의 꽃말을 얻게 되었다. 

재스민을 선물할 때 전달하는 메시지는 색깔에 따라 다른 데, 흰색은 상냥함, 노랑색은 우와함과 품위를 뜻한다. 그런가 하면 스페인에서는 육욕, 인도에서는 애착을 의미하는 등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꽃말을 가지고 있다. 

재스민은 봄을 알리는 꽃이라는 의미의 영춘화(迎春花)로 한역되었다. 가장 향기가 좋은 흰 재스민 꽃은 히말라야 아래 캐시미어 지방이 원산지이다. 오늘날에는 남인도의 마이소르 지방에서 널리 재배한다고 한다.

붓다가 태어나고 살아간 나라 인도의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향을 좋아했다. 그들은 몸에서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것을 값진 예절로 생각했다. 선(善)을 추구하는 것도 향기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붓다에게 값진 향을 올리는 일이야말로 부처님을 공경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법구경(法句經)> 꽃의 품[화향품(花香品)]에 재스민, 즉 말리까과 밧씨키가 등장하는 시(詩)가 있다. 

꽃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지 못한다. 

전단향도 따가라향도 말리까향도,

그러나 참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니

참사람의 향기는 모든 방향으로 퍼져간다. 

전단향, 따가라향, 웁빠라향

또는 밧시키향이 있지만,

이러한 향기의 종류 가운데

계행의 향기야말로 최상이다. 

-전재성 옮김 <법구경 담마파다>

아무리 향기로운 전단향과 타가라꽃의 향, 나아가 재스민꽃의 향기라고 해도 계행을 지키는 덕 있는 사람의 향기를 따르지는 못한다는 가르침이다. 이 시는 붓다가 사왓티에 계실 때, 장로 아난다의 질문에서 비롯됐다. 어느 날 아난다는 좌선을 하다가 ‘세존께서는 나무심의 향기, 뿌리의 향기, 꽃의 향기의 세 가지 최상의 향기에 관하여 말씀하셨지만, 그것들을 바람을 따라 퍼지는 향기이지, 바람을 거슬러 가는 향기가 아니다. 그런데 바람을 거슬러 가는 향기가 있을까? 또는 바람을 따르기도 하고 바람을 거슬리기도 하는 향기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결론을 내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붓다에게 여쭈러 갔다. 이때 붓다는 아난다에게 ‘향기에는 바람을 따르는 향기도 있고, 바름을 거슬러 가는 향기도 있다.’라고 말했다. 장로 아난다가 그 의미를 묻자 붓다는 ‘아난다여, 이 세상의 어떤 마을이나 시장에서든지 어떤 사람이라도 남자든 여자든 깨달은 님에게 귀의하고, 가르침에 귀의하고, 참모임(상가)에 귀의하고,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삼가고,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가 있는 것을 마시는 것을 삼가고, 계행을 지키고, 인색의 때를 벗어버리고 올바른 가장의 삶을 살고, 관대하고 베풀고, 아낌이 없고, 배푸는 것을 기뻐하고, 청원에 응하고, 공양을 베푸는 것을 기뻐하면 모든 수행자와 성직자의 세계에서 그를 칭찬한다. 그와 같은 참사람의 덕행을 두고 향기가 바람을 따르기도 하고 바람을 거슬리기도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붓다는 최고의 향기로운 꽃으로 말리까[밧씨키]을 꼽았다. 

한역 경전에서는 재스민꽃을 마리가(摩利迦), 막화(莫花)라 옮겼고, 어떤 책에서는 말리화(茉莉花)라고도 쓰고 있다. 말리화란 말리까의 음을 따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다.

재스민은 상록성 덩굴식물 또는 관목이지만, 특히 여름철 우기에 긴 가지나 덩굴이 뻗어 나가 우기생(雨期生) 또는 하생(夏生)이라고도 부른다. 바로 이 ‘우기에 자란다.’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 표현은 ‘바르시까(varsika)’인데, 이를 빠알리어로 적으면서 밧씨키(vasiki)가 된 것이다.

태국에서는 재스민꽃을 여러 송이씩 묶어 염주처럼 만든다. 이것을 화환처럼 길게 엮어서 불전에 바친다. 재스민꽃을 공양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다 보니, 사원에서 재스민꽃을 팔기도 한다.

(메인 사진=인터넷. gilmour.comjasmine-c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