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은 허공에 머물지 않는다
정찬주(소설가)
삽화 정윤경
마중물 생각
스피노자가 말했던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고. 나는 유실수보다 배롱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피노자가 현실주의자라면 나는 시적 상상 속에 사는 이상주의자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산방인 이불재 손님들은 배롱나무꽃을 보고 찬탄해 마지않는다. 사과 한 알을 받고 그렇게 감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린 배롱나무를 십수 년 전에 심은 나의 정성이 헛되지는 않은 것 같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손님들의 눈을 배롱나무 붉은 꽃으로 맑혔으니까. 좀 전에는 장끼 한 마리가 마당에 날아와 늠름하게 산책하는 것을 보았는데, 나중에는 녀석이 내 산방에서 무허가 둥지를 틀고 살지도 모르겠다.
TV 방송을 보지 않은 지 며칠이 아니라 몇 년이 됐다. 일부 TV나 특정 프로가 반목과 갈등만 부추기는 것 같아서였다. 이른바 시사평론가들 대부분은 세상을 자기중심에 놓고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곤 했다. 그 구업을 어찌 감당할지 걱정이다. 한 마디로 편견과 선입견의 논쟁 내지는 진영 논리였다. 인간이 왜 좁은 그런 편협한 것에 갇혀 살아야 하는가? 그건 인간모독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한 중도(中道)의 입장은 없다. 중도란 다른 말로 정도(正道)이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그들은 무엇을 심겠다고 말할지 궁금하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악한 사람이 선한 일 하는 사람을 일부러 찾아와
귀찮게 굴더라도 스스로 참고 견디면서
그에게 성내거나 꾸짖지 마라.
남을 미워하는 자는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이다.
내가 도를 지켜 큰 자비를 베푼다는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이 찾아와 나를 꾸짖고 욕했다.
그러나 내가 잠자코 대꾸하지 않았더니 그는 꾸짖기를 그쳤다.
내가 그에게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선물을 주려 했을 때
그가 받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선물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는 ‘그냥 가지고 돌아가지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금 전에 당신이 나를 욕했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소.
그러니 당신은 그 욕을 당신 자신에게 한 것이오.
마치 메아리가 소리에 응하고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는 것과 같이,
당신은 당신이 범한 죄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오.
그러니 부디 악한 일을 하지 마시오.’
악한 사람이 어진 사람을 해치는 것은
허공을 향해 침을 뱉는 일과 같다.
침은 허공에 머물지 않고 자기 얼굴에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바람을 거슬러 티끌을 뿌리는 일과 같다.
티끌은 저쪽으로 가지 않고 도리어 자기 몸에 와 묻을 것이다.
어진 사람을 해칠 수는 없는 것이며
화는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오고 만다.”
―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갈무리 생각
두 달 전, 보성 식물원에서 아기 부레옥잠 한 송이에 천 원씩 주고 사와 돌확에 넣었는데, 다행히 안녕하시다. 녀석들은 비가 오면 간지러운 듯 몸을 조금씩 튼다. 보랏빛 꽃을 8월부터 그림자가 길어지는 초가을까지 피고 질 것이다.
꽃을 보면서도 생노병사를 살피게 된다.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생노병사를 벗어나 영원할 수 없다! 불생불멸과 영생을 이야기하는 것은 초월적인 경지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겨울에 녀석을 수반에 담아 거실로 들여 키워보기도 했지만 왠지 순리가 아닌 것 같아 포기했다. 무엇이든 제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만의 빛을 잃는 법. 그래서 나는 한 송이에 천 원씩 식물원 신세를 지기로 한 것이다. 녀석의 모습이 똘망똘망해진 것을 보니 사람으로 치자면 풋풋한 청년이 된 듯하다. 생노병사 하는 짧은 생의 존재끼리 서로 무상(無常)을 느끼는 바가 결코 작지 않다. 생이 무상한데, 미물을 사랑하기에도 부족하기만 한 생인데, 어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허공에 침을 뱉으려 하는가! 나부터 참회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