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정찬주(소설가)

 마중물 생각

 산방 뒤뜰과 편백나무를 심은 텃밭에 대나무 죽순이 여기저기 눈에 띄어 잘라주었다. 삼사 년만 방치하면 대나무밭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죽순이 대나무로 바뀌면 낫이 아니라 톱을 들고 다니면서 단속해야 한다. 

 산중 농부의 말인데 대나무 뿌리는 컴컴한 땅속에서 수백 미터까지 뻗어간다고 한다. 한 뼘 한 뼘 자라서 수백 미터에 이른다고 하니 놀랍다. 말 그대로 대나무 뿌리의 끈질긴 지구전이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이 있듯 봄날의 죽순은 속도전을 펴는데, 대나무 뿌리는 계절과 상관없이 사시사철 한 뼘씩 움직이나 보다. 바위가 있으면 돌아가고, 도랑이 나타나면 땅속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고, 상황이 녹록치 않으면 잔뿌리를 내어 시기를 살피는 등 수십 년이면 수백 미터를 간다고 하니 경이롭기까지 하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인간의 속담이 무색할 정도다. 비록 낫을 들고 죽순을 단속하고 있는 내 처지이지만 녀석의 인내력은 배워야 할 것 같다. 부처님도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끊임없는 노력’을 거듭거듭 강조하신 바 있다. 인도 죽림정사에서 보았던 대나무들이 문득 떠오른다. 대나무들이 죽림정사를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부지런히 정진하면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은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 이를테면,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과 같다. 수행자의 마음이 게을러 정진을 쉬게 되면, 그것은 마치 나무를 비벼 불씨를 얻으려 할 때 나무가 뜨거워지기도 전에 그만두는 것과 같다. 그는 아무리 불씨를 얻고자 해도 얻지 못할 것이다. 불씨를 얻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가리켜 정진(精進)이라 한다.

선지식을 찾으려면 항상 잊지 않고 생각하는 일밖에 없다. 잊지 않고 생각하면 모든 번뇌의 도둑이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은 항상 생각을 모아 마음에 두라. 만약 바른 생각을 잃게 되면 모든 공덕을 잃어버릴 것이며, 생각하는 힘이 굳세면 비록 오욕의 도둑 속에 들어가더라도 도둑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완전하게 무장하고 싸움터에 나가면 두려울 것이 없다. 굳센 마음을 지키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가리켜 잊지 않고 생각함이라 한다.

마음을 한곳에 모으면 선정(禪定)에 들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선정에 들면 세상이 생멸(生滅)하는 모습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은 선정을 부지런히 닦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라. 물을 아끼는 집에서 둑이나 못을 잘 관리하는 것처럼, 수행자도 지혜의 물을 위해 선정을 잘 닦고 그 물이 새지 않도록 한다.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끊임없는 노력을 가리켜 정(定)이라 한다.

                                                  ― 『유교경遺敎經』

  갈무리 생각

  1959년 티베트에서 팔십이 넘은 노스님이 중국의 침략을 피해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온 일이 있다고 한다. 그때 기자들이 아무런 장비도 없이 어떻게 히말라야를 넘어왔을까, 하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그 노스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 연세에 저 험준한 히말라야를 아무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넘어올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노스님이 대답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서 왔습니다.”

 티베트 노스님의 한 걸음과 흡사한 한 번에 15cm씩 움직여 자신의 꿈을 이룬 등반가의 일화도 있다. 29세 마크 웰먼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975m의 암벽 오르기를 성공했는데, 그의 등반이 특별한 까닭은 그가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1982년에 등산하다가 암벽에서 떨어져 하반신이 불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팔의 힘을 길렀다. 하반신이 불구가 됐으니 팔의 힘으로만 암벽을 타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그는 그의 동료가 걸어준 로프를 타고 오직 팔의 힘으로만 15cm씩 암벽을 탔다. 4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 속에서 9일 동안 로프를 7천 번이나 당겼다. 마침내 그는 975m 암벽 등반에 성공했다. 기자들이 몰려와 물었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당신이 어떻게 암벽 등반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까?”

 “네, 한 번에 15cm씩만 오른 게 성공의 비결이었습니다.”

 무엇을 정진(精進)이라고 하는지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끊임없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 함부로 정진이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하리! 우리 인생에 요행수라는 것이 없음은 너무나 자명하고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