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 칼럼10
한 어부가 꽃게들을 잡아 양동이에 던져 놓는다. 양동이에 던져진 꽃게들은 양동이 벽에 붙어서 기어오른다. 어떻게든 양동이 안에서 탈출해 살아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실제 꽃게들은 양동이 벽을 오르는 게 어느 정도 가능해서 탈출도 가능하다. 만약 양동에 한 마리의 꽃게만 담아두었다면 그 꽃게는 충분히 양동이에서 탈출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여러 마리의 꽃게들이 들어있다면 단 한 마리도 탈출에 성공할 수 없다. 양동이를 탈출하기 위해 양동이 벽의 가장 높은 위치에 붙어 있는 꽃게는 그 아래쪽에 있는 다른 꽃게에 의해서 바닥으로 다시 끌어내려진다. 그렇게 하기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결국 한 마리의 꽃게도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다.
크랩 멘탈리티(crab mentality) 혹은 크랩 이론(crab theory)은 이런 게들의 어리석은 행동양식에서 비롯됐다. ‘게 같은 정신’, ‘게 마인드’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이 이론은 내가 가질 수 없거나 할 수 없으면 아무도 가질 수 없거나 할 수 없게 만드는 행동에 대한 묘사이다. 다시 말해 게들의 이런 행동양식은 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그대로 있다는 것을 빗대어 창안된 이론이다. 인간의 행동양식에서도 한 구성원이 더 우월하면 다른 구성원들이 질투, 분노, 열등감, 경멸 등의 감정을 느끼면서 그 구성원의 자신감을 깎아내려 끝내 성공을 방해하는 행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
크랩 멘탈리티 또는 크랩 이론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 속담과 일면 통하기도 하고, ‘남 잘 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는 사악한 사람들의 심보와도 일면 통한다. 이것은 잘난 누군가가 있을 때 그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끌어내려 자신과 평등해지기를 바라는 비뚤어진 평등 심리의 발현이기도 하다. 그 사람을 본받아 노력해서 그 사람과 동등한 지위로 올라가려는 상향평준화의 마음이 아닌, 외려 하향평준화의 마음을 지니려 한다. 말하자면 ‘네가 잘되는 것보단 나도 너도 모두 안 되는 게 낫다’라고 생각하는 심리이다. 크랩 멘탈리티는 질투와 열등감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능력과 용기를 가진 게가 열심히 헤엄치고 집게를 이용해서 탈출에 성공했다면, 다른 게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란 용기를 내어 올라가야 하고, 그것이 생존을 위한 길인데도, 질투심과 열등감에 눈이 멀어 다른 게의 다리를 붙잡는다는 것이다.
마음에는 선한 마음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악한 마음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상대적으로 선한 마음은 왜소한 것이 중생들이 본능처럼 갖고 있는 마음의 구조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독일 단어가 있다.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의미한다. 샤덴프로이데는 상반되는 뜻을 가진 두 독일어 단어가 합쳐진 단어이다. 손실 또는 고통이라는 뜻을 가진 ‘Schaden’과 환희 또는 기쁨이라는 뜻을 가진 ‘Freude’의 합성어이다. 독일에서 유래된 용어이지만 이 단어는 다른 언어권으로도 차용되었다.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폴란드어 등에서 이 단어를 독일어 원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샤덴프로이데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불교의 무디따(Muditā)가 있다. 무디따는 타인의 행복을 보고 느끼는 기쁨이다. 무디따는 희(喜)로 번역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사무량심(四無量心) 자비희사[Mettā Karuṇā Mudita Upekkha] 가운데 희무량심에 해당한다. 무디따는 상대방이 행복할 때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줄 수 있는 마음능력이다. 상대방이 행복하고 기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노력이다. 이런 점에서 무디따는 카루나[悲]보다 힘들 수 있다. 상대방이 불행을 당했을 때 함께 그 불행을 슬퍼하기는 쉬워도, 상대방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함께 기뻐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지난 4월 15일 대한불교청년회 등 불교계 주요 재가단체에서 불교계에 배정된 군승 파송인원 수를 채우지 못하는 불교계의 현안 문제와 관련하며 ‘군승확보에 한국불교 명운이 달렸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군승 파송 정원 18명의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7명만을 선발한 딱한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이들 단체들은 남은 TO[table of organization] 11명이 다른 종교로 배정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인데도 천태종립 금강대와 진각종립 위덕대가 군종사관후보생 양성학교로 지정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조계종의 편협한 자세를 비판했다. 이들의 비판은 설사 군승 TO가 타종교로 넘어갈지언정 군승독점을 고수하겠다는 조계종의 고집불통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조계종이 보이고 있는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가 군승양성학교로 지정되는 길이 막혀 애태우는 천태·진각종이 겪고 있는 고통을 즐기는 샤덴프로이데인지, 공멸할지언정 조계종 외에 다른 불교종단 잘 되는 꼴은 못 보겠다는 크랩 멘탈리티[크랩 마인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부디 공멸로 가는 악행을 그치고, 시급하게 무디따를 회복하기 바란다. <법구경>의 한 게송을 소개한다.
악행이 여물기 전까지는
어리석은 자는 꿀과 같다고 여긴다.
그러나 악행이 여물면,
어리석은 자는 고통을 경험한다.
어리석은 자는 달마다
꾸싸 풀의 끝으로 음식을 먹어도
진리를 이해하는 님에 비하면
그 십육분지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새로 짠 우유가 굳지 않듯,
악한 행위는 드러나지 않는다.
재속에 숨어 있는 불처럼,
작열하며 어리석은 자를 쫓는다.
어리석은 자에게 지식이 생겨난다.
오직 그의 불익을 위해서,
그것이 그 어리석은 자의 행운을 부수고
그의 머리를 떨어뜨린다.
그는 헛된 특권을 바란다.
수행승 가운데 존경을,
처소에서는 권위를,
다른 사람의 가정에서는 공양을 바란다.
재가자나 출가자 모두
‘오로지 내가 행한 것이다.’라고 여기고
어떤 일이든, 해야 할 일이나 하면 안 될 일도
‘오로지 나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어리석은 자는 이렇게 생각하니
그에게 욕망과 자만이 늘어만 간다.
하나는 이득을 위한 수단이고
다른 하나는 열반의 길이다.
이와 같이 곧바로 알아
수행승은 깨달은 님의 제자로서
명성을 즐기지 말고
멀리 여읨을 닦아야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