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마다 걸림이 없으려면
삽화 정윤경
마중물 생각
<장자> ‘제물론’편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스승 남백자기에게 안성자유라는 제자가 있었다. 안성자유가 어느 날 자기 스승을 보니 앉은뱅이책상에 기대고 앉아 있는 모습이 예전과 사뭇 달라 보였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선생님 모습이 예전과는 좀 다릅니다.”
그래서 어떻게 다르냐고 스승이 물으니, 제자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모습이 꼭 실연당한 사람 같습니다.”
우리가 실연을 당하면 어깨가 축 처지고 불 꺼진 재나 마른 나무처럼 풀기가 없이 무너져 내린다. 다 타고난 재는 불이 꺼진 후 겨우 형태만 남아 있다가 손만 대면 으스러지기 마련이다. 안성자유가 봤을 때 예전의 스승은 책상에 앉아 있을 때 온전한 자기 모습을 갖추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까 실연당한 사람처럼 자신이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 있었던 것이다. 이 말에 스승 남백자기가 제자를 칭찬하면서 말한다.
“안성자유야, 너 참 똑똑해졌구나.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그러고는 분명한 어조로 결론을 내듯이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를 장례 지냈다.(吾喪我)”
그렇다면 ‘나는 나를 살렸다’라는 오생아(吾生我)라는 말은 없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부처님은 나를 살리는 가르침으로 계정혜를 제시하신 것이 아닌가 싶다. 계정혜를 닦아야만 내가 어제의 허물을 벗고 거듭날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청정한 계율을 지니는 사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따르지 아니하고,
선정을 닦는 사람은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되며,
지혜를 구하는 이는 애욕에 매이지 않으므로 하는 일에 걸림이 없다.
계·정·혜가 있으면 덕이 크고 명예가 널리 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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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마땅히 계를 지니고 선정을 닦아 지혜를 깨달아라.
이 세 가지를 잘 지키는 사람은
덕망이 높고 명예가 드날리게 되리라.
음란한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잡된 생각이 없어질 것이니,
이것을 일러 해탈(解脫)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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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행(戒行)이 있으면 저절로 선정(禪定)이 이루어지고,
선정이 이루어지면 지혜가 밝아지리니,
흰 천에 물감을 들여야 그 빛이 더욱 선명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 세 가지 마음이 있으면 도를 어렵지 않게 얻을 것이고,
지극한 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으면
생을 마친 후에는 깨끗한 곳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같이 실천하면 스스로 이 몸을 버리고 다시 나지 않은 줄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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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혜의 이치를 머리로 알기만 하고
몸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윤회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갖추면 마음이 저절로 열리어,
문득 천상·인간·지옥·아귀·축생들의 세상을 보게 되고,
온갖 중생들의 생각도 알게 되리라.
마치 시냇물이 맑으면 그 밑에
모래와 자갈의 모양을 환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과 같다.
깨달은 사람은 마음이 밝으므로 보고자 하는 것이 다 나타난다.
도를 얻으려면 먼저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하느니,
마치 물이 흐리면 속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거듭거듭 나고 죽는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리.
― 『장아함長阿含 반니원경般泥洹經』
갈무리 생각
장자는 거듭나기 전의 나를 아(我)로 보고, 새롭게 난 나를 오(吾)로 본 것 같다. 진정한 자유인이 되려면 아(我)에서 (吾)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장례 지냈다(吾喪我’라는 장자식 표현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장자는 오상아를 거친 다음에야 참된 자신이 되고, 이를 진인(眞人)이라고 했다.
타성과 편견에 사로잡혀 살던 ‘어제의 나’가 ‘진정한 나’로 바뀌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계정혜가 자기 삶 속으로 녹아들어가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부처님 말씀이다. 한마디로 계정혜를 닦으라는 것이다.
중국의 운문선사가 남긴 선어(禪語)가 있다. 어느 날 운문선사가 법문하던 중에 대중에게 물었다.
“보름 이전은 너희에게 묻지 않는다. 보름 이후의 것을 한마디로 말해 보아라.”
대중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수행 정진한 보름 동안 아무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운문선사가 말했다.
“날마다 좋은 날이다(日日是好日)”
계정혜를 닦아 깨닫고 나니 나로서는 ‘날마다 좋은 날’ 됐다는 뜻이다. 일마다 걸림이 없어진 대자유인으로서 천연스러운 오생아(吾生我)의 경지를 보여준 것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