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알면 집착하지 않는다

                                                        정찬주(소설가)

 마중물 생각

 간밤 폭설 속에서, 풍찬 노숙한 돌부처님과 지장보살님들이 의연하다. 불보살님의 위의(威儀)가 생각난다. 앞뜰의 돌부처님은 ‘눈벙거지’와 ‘눈목도리’를 두른 듯하다. 뒤뜰의 지장보살님은 쌓인 눈 속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돌부처님은 천주교 신자인 남동생이 어느 조각가로부터 선물 받았다가 내 산방으로 보냈고, 지장보살님은 절골 정씨 할머니가 외지에 사는 아들이 울타리 밑에 두고 갔는데, 한밤중 할머니 꿈속에서 호랑이가 눈에 화등잔만한 불을 켜고 나타나더니 여기 지장보살님들은 저 위 산중에 사는 소설가의 집에 있어야 한다고 알려주더라는  것.

 그래서 할머니가 젊은 장정에게 부탁하여 내 산방 이불재로 가져온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곡진한 사연이 있다. 그러나 이 세상 그 무엇도, 티끌만한 존재라도 관계의 인연이 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으리라. 인연의 화살은 캄캄한 밤에도 과녁을 맞힌다는 금언이 있잖은가. 인연을 지중하게 알고 언행을, 발걸음 하나에도 삼가 살피고 조심해야 하리. 부처님은 몸도 마음도 꿰뚫어 살핀다면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말씀을 남겼다. 이게 바로 명상가들이 말하는 알아차림(awareness)일 것이다.

부처님 말씀과 침묵

이 몸이 무엇으로 이뤄졌는지 사실대로 꿰뚫어 알아야 한다. 

이 몸은 흙(地), 물(水), 불(火), 바람(風) 네 가지 요소가 

한데 어울려 만들어진 것임을 환히 보아야 한다. 

솜씨 있는 백정이 소를 잡아 사지를 떼어 펼쳐 놓듯이 

비구도 이 몸을 네 요소로 갈라 눈앞에 드러내 놓아야 한다. 

숲속에 버려진 시체가 하루 이틀 지나면 붓기 시작해 

마침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이 몸도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꿰뚫어 알아야 한다. 

그 형상이 눈앞에 역력하면 허망한 경계에 집착하지 않게 되리. 

또 숲속에 버려진 시체의 백골, 한두 해 지나 무더기로 쌓인 백골, 

다 삭아 가루가 된 해골을 보는 것과 같이 너희들도 그 몸을 주시하되, 

이 몸도 저 꼴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을 꿰뚫어 알면 

세상의 모든 집착을 버리게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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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관찰하는 법은 어떤 것인가? 

마음에 탐심이 일어나면 ‘이것이 탐심이구나.’라고 꿰뚫어 알고, 

탐심을 버리면 버린 줄 꿰뚫어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뒤바뀐 마음, 넓은 마음, 

좁은 마음, 고요한 마음, 산란한 마음, 해탈한 마음,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스스로 낱낱이 안팎으로 살피고, 

그 마음이 일어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꿰뚫어 알아서 

눈앞에 대하듯 하면 세상의 어떤 집착도 놓아 버리게 된다. 

이것이 마음을 관찰하는 법이다.                   

                       ― 『중아함中阿含 염처경念處經』     

갈무리 생각 

 눈이 와서 그런가? 내가 사는 이불재가 세한도 속에 나오는 단출한 산방 같은 느낌이다. 대나무비로 쓸어서 그런가? 스산한 산방 이불재가 개결하다. 올 손님이 없지만 아침에 마당을 세 번을 쓸었다. 부처님 무상법문에 따라 지수화풍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다시 나를 찾아온다면 '깨어 있군!' 하고 미소 지으실지 모르겠다. 문득 환하게 미소 짓는 아버지의 생전 모습이 떠오른다. 한 생각(一念)으로 죽은 혼령을 만날 수 있다는 입적하신 일타스님의 말씀이 뇌리를 스친다. 까마귀가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까악까악 소리치며 날아간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 느닷없이 전화가 온다. 부산에서 귀한 손님 몇 분이 오시겠단다. 안국선원 수불 선원장 스님과 무량심 회장보살님을 포함해서 세 분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 분들이 산방을 들이닥친다. 허술한 내 살림살이가 숨김없이 드러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화목난로가 온기를 내뿜으며 손님들을 맞이한다. 수불스님께서 내 서재까지 들어와 책상 위의 컴퓨터 자판기를 보더니 “얼마나 오래됐는지 자판 글자들이 안 보이네요. 컴퓨터 바꿀 때가 지났어요.” 하시면서 웃는다. 그런 뒤 나에게 봉투 하나를 슬그머니 내미신다. 

 스님이 가신 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작은 물줄기 같은 흐름이 하나 읽혀진다. 마당을 쓴 일이나, 까마귀가 소리친 일이나, 불쑥 손님이 찾아온 일이나, 스님께서 내 낡은 컴퓨터를 본 일이나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인연 맺은 관계 속에서 오늘에야 나타난 ‘필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를 순간순간 온전하게 티 없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자각이 사무친다. 온전한 삶이란 마음이 일어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꿰뚫어 알아서 눈앞에 대하듯 대처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