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한 역경 극복한 ‘강가띠리야의 어머니’ 

꼬살라 국 사왓티 시에 살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사왓티 시를 중심으로 이웃나라까지 오가며 장사를 하는 상인을 남편으로 둔 여인이었다. 

남편이 사업을 위해 멀리 떠나고, 그녀 홀로 시어머니와 함께 집에 머물고 있던 어느 날 새벽에 그녀에게 태기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녀는 태기가 나타날 때까지 자신의 뱃속에 새 생명이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임신을 확인한 그녀의 표정은 난감해 보였다. 아기를 가졌다는 기쁨보다 남편이 부재한 상태에서 임신이 확인된 데 대한 걱정이 밀려왔던 것이다. 사실 남편은 수레에 상품을 가득 싣고 마가다 국의 수도 라자가하 시로 떠난 지 오래였다. 그러니 아이의 잉태가 공연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러던 사이에 그녀의 뱃속에 잉태된 태아는 점점 자라났고, 몇 달이 지나자 조금씩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이를 본 시어머니는 의심의 눈초리로 며느리를 살피고 있었다. ‘내 아들이 집 떠난 지 오래인데 며느리의 배가 불러오다니!’ 그녀의 배가 불러오는 것과 비례해 시어머니의 표정은 점점 더 분노로 채워졌다. 분노를 이기지 못한 시어머니가 험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나의 아들은 오랫동안 출타해 있는데, 네가 임신을 하다니! 필시 너는 외간 남자와 사음(邪淫)을 한 것이 분명하다. 너는 용서받지 못할 부정한 짓을 저지른 것이야.” 

그러자 그녀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말했다.  

“어머님, 그것은 오해이십니다. 저는 당신의 아들밖에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저는 결단코 부정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눈물 어린 호소를 듣고도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꾸짖고 괴롭혀 집에서 쫓아내 버렸다. 억울하게 내쫓긴 그녀는 누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남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남편의 행방을 차례로 수소문하면서 라자가하 시에 도착했다. 

그러나 남편을 만나지도 못한 채 갑자기 산통이 시작되어 길가의 한 공회당으로 들어가서 홀로 출산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황금빛 빔바 열매처럼 탐스럽게 생긴 아들을 출산했다. 열매를 먹으면 입술이 빨갛게 변하기 때문에 빔바 열매는 종종 아름다운 입술에 비유되기도 했다. 또한 빔바와 같은 붉은 입술은 부처님의 팔십종호(八十種好) 중 하나로 부처님의 입술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매우 귀한 열매다. 막 아기를 낳은 그녀는 그녀와 아기를 돌봐줄 보호자가 없는 탓에 공회당 안에 아기만 남겨놓고 아기를 씻길 물을 길어오기 위해 가까스로 밖으로 나왔다. 

마침 그때 슬하에 아이가 없던 한 카라반[상인집단, 隊商]의 우두머리 상인이 공회당 앞길을 지나다가 빈 공회당 안에 홀로 누워있는 아기를 발견했다. 누군가 사정이 있어 버린 아이라고 생각한 카라반은 ‘이 아이는 장차 내 아들이 될 것이다.’라며 아기를 들어 유모의 손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기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얼마 후 여인이 자신의 몸을 씻은 후 아기의 세정을 위해 물을 떠 가지고 공회당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여인은 미친 듯이 공회당 안을 샅샅이 살피며 아기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아기는 보이지 않았다. 여인은 아이를 잃어버린 슬픔에 잠겨 비탄해하면서 라자가하 시로 들어가지 않고 방향도 모른 채 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비탄에 빠져 반 실성 상태에 있는 그녀를 한 도둑 집단의 우두머리가 우연히 발견하고는 마음이 사로잡혀 자신의 아내로 삼았다. 넋을 놓은 채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던 그녀에게 기구하게도 도둑 두목의 아이가 잉태되었고, 머지않아 딸을 낳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남편과 말다툼을 하다가, 감정이 극에 달해 마침 옆에 서 있던 딸을 침대로 던져버렸다. 별안간 침대로 내던져진 딸의 머리가 침대 모서리에 부딪치면서 검붉은 피가 솟구쳤다. 그 순간 성격이 불같은 남편에게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그녀는 그 길로 집에서 도망 나와 라자가하 시로 다시 돌아가서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먹고살기 위해 그녀는 몸을 파는 여인이 되어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녀가 공회당에서 낳은 아들은 어느덧 청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와 이별을 하게 된 그는 오랜 전생인 빠두뭇따라 부처님 당시에 한 훌륭한 가문에 태어나 성년이 되자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기쁨을 발견하고 수행승의 참모임(상가)에 음료를 보시한 공덕을 지었다. 그는 이 공덕으로 천상계에 태어나 계속해서 공덕을 짓고 천상계와 인간계를 윤회하다가 고따마 부처님께서 탄생할 무렵, 사왓티 시의 한 장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친아버지가 아닌 양아버지 아래에서 ‘닷따’라는 이름을 얻었다. 아무튼 비극은 더 큰 비극을 낳는 법. 이 청년 닷따의 눈에 정처 없이 떠돌며 몸을 파는 한 여인이 띄었다. 닷따는 그 여인이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라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그럼에도 기구한 인연의 끈을 끔찍하게 질기고 질겼다. 닷따는 이상하게도 이 여인에게 마음이 끌려 아내로 삼았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업차 집을 나간 닷따는 생모의 남편이었던 우두머리 도둑의 딸에게 반해 비싼 대가를 치르고 그녀와 결혼했다. 이 또한 그녀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라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기에 빚어진 비극이었다. 한 배에서 태어난 누이동생인 줄 모르고 결혼을 한 닷따는 두 번째 아내가 된 여동생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렇게 닷따는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아내로 두고 사는 비극적인 인생을 살게 되었다. 또 한 남자를 남편으로 둔 두 여인은 서로가 모녀 관계인지도 모른 채 첫째 부인, 둘째 부인이 되어 함께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 부인은 둘째 부인의 머리 타래를 풀고 이를 잡아주다가 머리에 난 상처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상처의 부위나 크기가 자신이 밀쳐 머리를 다친 딸의 그것과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이도 자신이 낳은 딸과 같지 않은가. ‘아, 이 아이는 나의 딸이 틀림없다!’ 손아래 동서가 자신의 딸이라는 확신이 드는 그 순간 그녀에게는 깊은 외경(畏敬)이 생겨났다. 그날부터 그녀에게 세속적 삶은 점점 의미를 잃어갔다. 그녀의 눈은 초점을 잃었고, 먹는 둥 마는 둥 몸도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죽지 못해 살아가던 어느 날 그녀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길을 망연자실 걷고 있었다. 그때 한 쪽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가가 들어보니 사람들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고따마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러 간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에게 ‘나도 부처님의 설법을 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나는 지옥보다 절망적인 삶을 살게 된 것인지?,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부처님께 여쭈어보고 싶었다. 

그녀는 설법을 들으러 부처님에게로 가는 사람들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걸어 부처님이 머물고 있는 승원에 도착했다. 승원에는 이미 많은 군중이 모여 설법을 듣고 있었다. 그들은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도 일행의 뒤를 따라 앞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여기까지 온 이상 반드시 자신의 기구한 삶의 원인을 물어봐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저 멀리 부처님이 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처님의 설법 중에 그녀를 위한 가르침이 있었다. 

“욕정에서 근심이 생기고 욕정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욕정에서 벗어난 이는 근심이 없는데 어찌 두려움이 있겠는가? 태어나서 늙고 병드는 것은 고통이다. 사는 것은 괴로움이다. 이 진리를 잊지 말라.”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과 같은 부처님의 법문을 들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세상 모든 고통이 나 자신의 어깨에만 포개진 것 같구나! 너무 고통스럽다. 절망할수록 세상은 멀어져 간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불행과는 상관없이 늘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고 말씀하신다. 도대체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 이윽고 용기를 낸 그녀는 부처님 앞까지 나아가 세 번 절하고 고개를 들어 부처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며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기구한 세월을 이야기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큰 죄를 짓지 않고 살아왔는데도 엄청나게 큰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왜 저에게 이런 불행들이 그치지 않고 찾아오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그녀를 보고 연민이 일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인이여. 고통은 집착에서 옵니다. 태어나서 늙고 병드는 것만이 고통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착하는 마음이 곧 괴로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고통입니다. 이것은 욕망에서 비롯됐으니 갈애라고 부릅니다. 갈애를 없애지 않는다면 그대는 앞으로도 고통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애를 없앤다면 그대는 행복할 것입니다.”

그녀는 부처님의 말을 듣고 꽉 막혔던 가슴이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을 경험했다. 두 남편과 시어머니, 그리고 아들과 딸이 지니고 있는 애욕과 집착뿐 아니라 자신의 집착도 이토록 커다란 괴로움을 만든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으나 더 이상의 괴로움은 없었다. 괴로움이 자리했던 자리에 기쁨이 샘솟았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부처님에게 자신의 출가를 허락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따뜻한 미소로 그녀의 출가를 허락했다. 

비구니가 된 그녀는 라자가하 시에 있는 한 수행녀의 처소에 가서 다른 비구니와 함께 정진에 정진을 거듭했다. 부처님께서 자세하게 알려준 촛불을 집중해서 바라보는 수행을 열심히 해나갔다. 이제 그녀에게 남아있는 것이란 오로지 수행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그녀의 집중력은 무섭게 강해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아서 그녀는 불꽃에 관한 마음 집중을 통해 불꽃이 끊임없이 변하는 이유, 새로운 불꽃에 의해서 먼저 불꽃이 사라져 버리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깊은 삼매를 얻었다. 그리고는 완전한 삼매를 바탕 삼아 몸과 마음과 그 변화를 집중 관찰하는 통찰 수행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무상과 고, 무아를 깨달아 통찰 지혜를 완성함으로써 완전한 경지를 성취할 수 있었다. 그녀가 먼저 해야 할 의무를 다하고 멀리 여읨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예전에 행한 일을 성찰하자 기쁨과 희열이 생겨났다. 이렇게 궁극의 경지, 아라한과를 성취한 것이다.    

이 여인이 바로 장로니 ‘강가띠리야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아들을 자신의 딸과 함께 남편으로 섬기게 된 기구한 운명을 박차고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고 마침내 할 일을 다 해 마친 최고의 성자가 되었다. 아라한이 된 강가띠리야의 어머니는 이 순간,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게송을 읊었다. 

우리 두 사람, 어머니와 딸이

한 남자를 남편으로 삼았으니,

그러한 나에게 미증유의 

털이 곤두서는 외경이 일어났다. 

우리 두 사람, 어머니와 딸이

한 남자를 남편으로 삼았으니,

끔찍하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부정한 것, 악취 나는 것, 형극이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의 재난을 보고

여읨에서 오는 견고한 안온으로 보았으니, 

라자가하 시에 살던 그러한 나는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한편 강가띠리야의 아들이자 동시에 세 번째 남편이기도 한 닷따도 오래지 않아 자신과 두 아내 사이에서 벌어졌던, 도무지 믿기지 않는 비극을 알게 되었다. 비록 모르는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긴 했지만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 그리고 같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 여형제와 부부의 연을 맺어 근친상간이라는 범해서는 안 될 죄악을 저지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자 그에게도 큰 두려움(외경)이 생겨났다. 

청년은 비구니가 된 어머니처럼 수행자의 길을 걸기로 결심하고 출가를 결행했다. 그는 출가 후 고행을 하면서 분소의와 해골바가지 모양의 흙발우만 소유한 채, 강가(갠지스강) 근처에 세 종려나무 잎으로 초암을 짓고 살았다. 이 때문에 그의 이름이 강가띠리야(Gangatiriya)가 되었고, 그의 어머니는 ‘강가띠리아의 어머니’로 불리게 되었다. 

강가띠리야는 이곳에서 거룩한 경지를 얻지 못한다면 아무와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첫 번째 해를 침묵하며 지냈다. 두 번째 해에 탁발을 하던 중 한 여자가 ‘혹시 벙어리 아닐까?’라며 발우에 우유를 부었는데, 손을 저으며 그만 부우라고 해도 계속해서 우유를 따르자 ‘자매여 그만하십시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것이 그가 두 해 동안 한 유일한 한마디였다. 그는 세 번째 해에 안거를 하며 용맹정진을 거듭해 마침내 거룩한 경지, 아라한과를 성취했다. 아라한의 경지를 이룬 후 그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세 종려나무 잎으로

나의 집은 강가(갠지스) 강에 만들어졌다. 

발우는 장의용 단지이고

나의 의복은 분소의이다. 

두 해 동안에 걸쳐

나는 한 마디 말만 했다. 

세 번째 해의 우기에

어둠의 다발이 부수어졌다.   

         - 전재성 옮김 <테라가타>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