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에 대한 자만 버리고 적멸 성취한 ‘쑨다리 난다’
쑨다리 난다(Sundarīnandā)는 오랜 전생인 빠두뭇따라(Padumuttara) 부처님 당시에 항싸와띠(Haṃsavati) 시의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성년이 되자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들으며 살았다. 어느 날 스승께서 한 수행녀를 ‘선정에 드는 님 가운데 제일’의 자리에 세우는 것을 보고, 그녀도 덕성을 닦고 그 자리, 즉 선정에 드는 님 가운데 제일이 되기를 서원했다. 그녀는 착하고 건전한 것을 쌓아서 십만 겁 동안 천상계와 인간계를 윤회하다가 고따마 부처님이 출현한 시기에 사끼야(석가) 족 숫도다나 왕과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사이에서 태어나 ‘난다’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를 갖추고 있어 사람들로부터 ‘쑨다리 난다’라고 불렸다. 그녀는 몸에서 광채를 일으켜 주위를 환히 밝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12척 정도의 큰 방을,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등불이 필요 없을 정도로 환하게 밝힐 정도였다.
그런데 그녀가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것은 사끼야 족 여인들의 잇단 출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출가를 위해 까삘라왓투를 떠난 후 6년째 되던 해, 아버지 숫도다나 왕의 초대로 고향인 까삘라왓투 시를 방문했던 일이 있었다. 성도 후 첫 고향방문에서 부처님은 이복동생 난다와 아들 라훌라를 차례로 출가시키는 일종의 사건을 일으켰다. 그리고 몇 년 후 부처님은 아버지 숫도다나 왕의 수명이 다해 세상을 뜨려고 할 때 다시 까삘라왓투로 가서 부왕의 임종을 지킨 후 장례를 치렀다. 장례를 치른 후 부처님은 여인의 출가를 허락해달라는 양모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의 간청을 받았다. 부처님은 여러 차례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끈질기게 출가 허락을 애원하는 양모의 요구와 시자 아난다의 요청을 끝까지 거절하지 못했다. 천신만고 끝에 출가해 최초의 비구니가 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부처님의 각별한 지도로 정진을 거듭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궁극의 경지 아라한과를 성취했다. 장로니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그 뒤 까삘라왓투로 돌아와 성(城) 외곽에 수행처를 마련해 정진하던 중 출가를 위해 찾아온 야소다라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이런 일련의 사끼야 족과 사끼야 족 여인들의 집단 출가를 지켜본 쑨다리 난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며칠을 골똘히 지새운 그녀의 눈빛이, 마치 무엇인가 결심을 굳힌 듯 반짝였다.
‘내 큰 오빠(고따마 싯다르타)는 전륜성왕의 권세를 버리고 출가하여 세상의 최상자인 부처님이 되었다. 그의 아들인 라훌라도 아버지를 따라 출가했다. 나의 오빠인 왕자 난다도 형님의 권유에 따라 출가했다. 어머니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도 출가했고, 나의 자매인 야소다라도 출가해 수행녀가 되었다. 내가 이제 집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도 출가해야겠다.’
마침내 출가 결심을 굳힌 쑨다리 난다는 곧 비구니들의 처소로 찾아가서 출가를 요청하고, 허락을 받아 비구니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출가는 담마(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확신 때문이기보다는 친족에 대한 그리움과 정이 더 큰 이유였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출가를 하고서도 자신의 미모에 대한 자신감에서 분출되는 교만함을 아주 버리지는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스승은 여러 가지 법문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꾸짖고 아름다움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을 보여주었지만 쑨다리 난다의 교만심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고 부처님을 찾아뵙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비구니 상가의 최고 스승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와 야소다라 등 자신의 친족들이 부처님의 지도에 따라 할 일을 다 마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심 정진의 고삐를 죄어 조금씩 성숙한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비록 쑨다리 난다에 대한 수행녀들 사이에서의 평판이 좋지는 않았지만, 정작 부처님은 그녀의 궁극적인 앎이 성숙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비구니 상가를 이끌고 있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를 불러 “모든 비구니들은 차례대로 훈계를 받으러 오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쑨다리 난다는 자신의 차례가 오자 다른 사람을 대신 보냈다. 그러자 부처님은 “차례가 오면 당사자가 와야지 다른 사람을 보내는 것은 안 된다. 본인이 직접 오라.”고 재차 촉구했다. 그때서야 부처님의 단호한 명령를 거역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비구니들과 함께 부처님에게 다가갔다.
변하지 않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하물며 100년도 유지 못할 사람의 몸뚱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푸름을 벗어버린 갈대 숲이 주는 교훈은 무상이 아닐까! (사진=이학종)
쑨다리 난다 일행이 가까이 다가오자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한 아름다운 여인을 만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이 여인이 점차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쑨다리 난다는 그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미모에 대한 집착을 말끔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무상하고, 괴롭고, 실체가 없다는 가르침을 여실히 보여준 부처님의 연민심에 감동한 그녀는 엎드려 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무상, 고, 무아의 가르침을 명상주제로 마음을 돌렸다. 쑨다리 난다에게 아리야[성자]가 될 조건이 충족되었음을 확인한 부처님은 그녀에게 알맞은 방식의 지도와 가르침을 담은 세 편의 게송을 읊었다.
병들고 부정하고 부패하는
난다여, 집적의 몸을 보라.
마음을 통일하여 정립하고,
부정(不淨)에 대해 마음을 닦으라.
이것처럼 저것이 그러하고
저것처럼 이것이 그러하다.
썩어가는 악취를 풍기나
어리석은 자가 그것을 즐긴다.
밤낮으로 그대가 게으름 없이
이와 같이 이것을 관찰하면
마침내 자신의 지혜로
분석하여 사실을 보게 되리라.
부처님께서 오직 자신을 위한 연민심으로 읊은 게송을 경청한 쑨다리 난다의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몸에는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실체가 없으며, 살과 피로 덮인 것이며, 늙음 등의 처소는 단지 뼈의 덩어리일 뿐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 욕망이 있으므로 더러운 몸이 아름답게 보이니 의식이 없는 시체가 욕망이고 아름다운 것은 그것을 관찰하는 의식이 있는 몸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섭수한 쑨다리 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앎을 적용하여 단박에 흐름에 든 경지, 수다원과를 얻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녀가 예류과보다 더 상위의 길을 성취하도록 하게 하기 위해 명상주제를 설명했다. 부처님은 그녀를 위해 다시 한 번 게송을 읊었다.
보라,
이 세상 전체가 지금 불타고 있나니
여기 웃을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대는 지금 어둠 속에 갇혀 있나니
왜 등불을 찾지 않는가.
보라, 이 육체를 보라.
온갖 오물로 가득 찬
이 가죽 주머니를 보라.
이 병의 온상을,
온갖 번뇌 망상의 이 쓰레기 더미를,
그리고 이제 머지않아
썩어 버릴 이 살덩어리를 보라.
이 육체는 마침내 부서지고야 만다.
병의 보금자리여, 타락의 뭉치여,
아아, 이 삶은 결국
죽음으로 이렇게 끝나고 마는가.
희끄무레한 이 뼈다귀를 보라.
저 가을 들판에 버려진 표주박 같나니
보라, 여기 무슨 기쁨이 있단 말인가.
이 육체는 뼈의 집,
뼈들은 살과 피로 덮여 있나니
이 집의 식구들은 누구인가?
자만과 위선, 그리고 늙음과 죽음이다.
저 금빛 찬란한 왕의 마차도
마침내 낡아 부서지고야 만다.
활기 넘치는 그대의 그 젊은 육체도
마침내 늙어 부서지고야 만다.
그러나 닙바나,
저 불멸을 향한 그 수행의 힘은
결코 늙거나 부서지지 않나니
그러므로 세대에서 세대로
니르바나,
이 불멸을 길이 전해 가야 한다.
배우기를 힘쓰지 않은 채
세월 가는 대로
그저 나이만 먹어 간다면
그는 늙은 소와 같다.
그의 몸은 늙어 주름살이 깊지만
그러나 그의 지혜는
전혀 빛을 발하지 않는다.
그 젊은 날에
보람 있는 삶을 살지 않았고
인생의 진정한 재물(진리)도
얻지 못한 이는
부서진 활처럼 누워서
지난 일만을 내내 비탄해 하고 있다.
-<법구경>
부처님의 가르침이 끝나자 쑨다리 난다는 곧 무상 등을 통해서 통찰을 확립하고, 통찰의 지혜로써 탐구하여 마침내 거룩한 경지를 얻었다. 그녀는 거룩한 경지, 즉 아라한과를 확립하고 난 후 자신의 실천을 성찰하면서 개체가 있다는 견해[有身見], 회의적 의심[疑], 규범과 금기에 대한 집착[戒禁取],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욕[欲貪], 분노[瞋恚], 미세한 물질계에 대한 탐욕[色貪, 비물질계에 대한 탐욕[無色貪], 자만[慢], 흥분[掉擧], 무명(無明) 등 일체의 결박에서 벗어났다. 쑨다리 난다는 마침내 할 일을 다 해 마친 기쁨에 감흥 어린 시구를 읊었다.
방일하지 않게
이치에 맞게 내가 탐구하니
안팎으로 이 몸이
있는 그대로 보였다.
그러자 몸을 싫어하여 떠나,
나는 내적으로 사라져서
방일을 여의고, 결박을 풀었으니,
적정에 들어 적멸을 성취했다.
-전재성 옮김 <테리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