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암스님의 정진2
삽화 정윤경
혜암은 봄이 다 지나갈 무렵에 해인사로 돌아가려고 했다. 무작정 상원사에서 머물 수는 없었다. 신도가 없는 상원사는 절 살림이 아주 궁했다. 상원사 조실인 한암이 뭐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신참 수좌들이 눈치를 보며 하나 둘 떠났다. 결국 구참 수좌들만 상원사 선방과 산내암자에 남았다.
혜암도 걸망을 챙겼다. 골짜기로 나가 맑은 개울물에 가사 장삼도 빨고 몸도 씻었다. 차가운 개울물이었지만 한낮에는 손을 담글 만했다. 초여름 햇살이 목덜미에 느껴졌다. 신참 수좌가 혜암 옆으로 와 말했다.
“혜암 수좌, 하안거는 어디로 갈 생각이오.”
“서대나 북대에 살고 싶지만 이미 구참 수좌 몫이니 할 수 없지요. 효봉 조실스님 회상을 생각하고 있소.”
서대는 상원사에서 왼편 산등성이 너머에 있는 염불암을 말했고, 북대는 오른편 산길 끝에 있는 미륵암을 말했다. 모두 상원사 산내암자였다. 그곳에는 이미 구참 수좌들이 방부를 들인 상태였다. 언젠가 꼭 한 번 살고 싶은 암자들이었다. 하루 종일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적적한 곳이므로 공부하기에 너무 좋은 수행처였다. 혜암은 한 달 전 북대 미륵암에서 하룻밤 잔 적이 있는데, 그곳의 구참 수좌가 잊히지 않았다.
“나는 겁이 많고 두려움이 많아서 북대 같은 암자에서 살지 못할 것 같소.”
“두려울 것이 뭐가 있소. 두려운 마음을 내지 않으면 두려움도 없는 것이오.”
“혜암 수좌는 암자에서 혼자 정진하는 체질인 것 같소.”
“북대 스님을 보니 나도 저렇게 수행해야지 하고 신심이 납디다.”
당시 북대는 말이 암자이지 비바람을 겨우 면하는 움막이나 다름없었다. 방바닥은 장판이 닳아 거의 흙바닥이었다. 방안 살림살이는 죽비 한 개와 목탁 한 개가 전부였다. 이부자리는 없었고 좌복이 하나 덜렁 있을 뿐이었다. 참선을 하다가 졸리면 좌복으로 배만 덮고 잤다. 북대를 찾아간 손님은 하루 이틀을 견디지 못하고 상원사로 내려왔다. 더구나 스님이 생식을 하니 손님은 생쌀을 먹는 시늉만 하다가 도망치듯 했다.
그러나 혜암은 북대 스님을 만나고서는 신심을 냈다. 비록 그 스님과 함께 살지는 못했지만 자신도 어느 날 암자에서 수행하게 된다면 그 스님처럼 제대로 정진하고 싶었다. 의식주를 잊어버린 채 오직 참선만 하고 사는 그 스님이야말로 오대산의 수행자인 것 같았다.
“서대에 사는 스님도 신심 나게 합디다. 언젠가 나도 서대에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소.”
서대는 남한강의 발원지가 되는 우통수라는 샘 옆에 있었다. 우통수 물맛이야말로 찻물로서 으뜸으로 치는 감로수였다. 습한 곳이어서 암자 주변에 뱀들이 많은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뱀들이 부엌이나 방 안으로 들어와 몸을 말리느라고 똬리를 틀곤 했다. 그러나 그곳의 스님은 뱀을 ‘긴 것’이라 부르며 물리치지 않고 오직 화두만 들고 동거하듯 살았는데, 혜암은 그 모습도 잊을 수 없었다.
“혜암 수좌, 난 이번에 서울로 갈 계획이오.”
“스님, 어디를 가든 바보같이 공부만 하면 되는 거지 산중이든 저잣거리든 상관없다고 생각하오.”
“강원도 마치고 선방도 여러 철 경험했으니 이제는 서울로 나가 대중포교를 하려고 그래요. 아무래도 나는 저잣거리에서 대중을 포교하는 것이 근기에 맞는 것 같소.”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것도 스님들의 몫이겠지요. 하지만 부처님 마음이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어떻게 부처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소.”
“완전한 실력을 갖춘 의사가 된 후에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겠지요. 하지만 중병을 치료하기 전에 응급치료라는 것도 있지 않소. 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소.”
“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소만 난 그럴 자신이 없소. 내 실력 없이 어떻게 환자를 치료하겠다고 나서겠소. 난 생사해탈을 이루고 난 후에 저잣거리로 나가겠소. 돌팔이 의사가 환자의 병을 더 키울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돌팔이 의사란 말이오.”
“환자 병을 더 키우면 돌팔이 의사지요. 하하하.”
혜암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빨래를 하려는 스님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열반경>에 나온 한 대목을 예로 들며 말했다.
“자비심이 여래라는 구절을 <열반경>에서 보았소. 나는 부처님의 그 말씀에 무릎을 쳤소. 진리를 구하는 정진도 부처가 되는 길이요, 중생을 제도하는 정진도 부처가 되는 길이라는 것을 이해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같은 말이라는 거요.”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란 상구보리를 한 이후에 하화중생을 하라는 뜻이 아닌가요. 나는 그렇게 알고 있소.”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알았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상구보리나 하화중생이 같은 뜻인 거요. 어느 길로 가든 성불하는 길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소만 나는 아직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소. 그럴 자신도 없소.”
혜암은 서둘러 얘기를 끝마치려 했지만 스님은 혜암을 놓아주지 않았다.
“서울에 가면 우리 절이 있어요. 사실은 아버지가 태고종 스님이거든요. 아버지 스님이 연세가 많아요. 눈도 어둡고 귀도 어두워서 누군가가 돌봐드리지 않으면 힘드신 것 같아요. 대중포교도 포교지만 자식 된 도리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그런 이유라면 아름다운 일이겠소. 아버지 눈이 되고 귀가 되고 손이 된다면 그게 바로 천 개의 손을 가진 천수관세음보살이 되는 것이니까.”
“혜암 수좌가 좋게 봐주니 기분 좋소.”
“어디를 가든 청정한 마음만 잃지 않는다면 그곳이 바로 정진하는 도량이고 법당이 아니겠소.”
“그런데 왜 혜암 수좌는 굳이 상원사 선방을 떠나려고 하는 거요. 조실스님이 스님을 좋아하지 않소.”
“스님까지 어떻게 알았소.”
“다 알고 있어요. 한암 조실스님이 붙잡으려 해도 다들 혜암 수좌가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스님 말대로 상원사 대중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절 살림이 궁핍하니 최소한의 인원만 남아 하안거를 나려고 하는데 결국 구참 수좌들만 남게 되리라는 것을 서로가 양해하고 있었다.
일부 대중들은 혜암이 한암의 칭찬을 받은 일도 있고 하여 상원사에서 하안거 방부를 들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혜암은 해인사로 돌아가겠다고 이미 결심하고 있었다. 다른 특별한 사유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 하나라도 덜겠다는 생각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
혜암이 떠나려고 결심한 것은 며칠 전 한밤중이었다. 혜암은 장좌불와를 하는 중에 졸리면 한밤중이라도 바로 밖으로 나가 포행을 했다. 상원사에서 가장 가까운 중대 사자암을 오르거나 그 위에 있는 적멸보궁까지 오르내렸다. 며칠 전에도 혜암은 포행을 하러 밖으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공양간 장독대에서 누군가가 서성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혜암은 너무 뜻밖의 일이었으므로 종각 뒤로 숨어 상대를 살폈다. 초승달이 떠 있었기 때문에 상대가 하는 동작이 어렴풋이 보였다. 도둑은 아니었다. 도둑이 궁한 절까지 올 리는 없었다. 장독대에 서 있는 사람은 스님이었다.
스님은 독에 무언가를 넣고 있었다. 그러나 달빛이 밝지 않았으므로 무엇을 넣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혜암은 스님이 무엇을 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가까이 다가갔다. 몇 걸음 걸은 뒤 상대가 놀라지 않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그 스님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좀 더 다가서 보니 그 스님은 한암이었다. 한암은 바가지에서 무언가를 한 줌씩 꺼내 독 속에 뿌리고 있었다.
“조실스님, 혜암입니다.”
“대중들이 김치를 헤프게 먹어 탈이야.”
한암은 김칫독에 무언가를 흩뿌리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중들이 김치를 너무 많이 먹는다니까.”
한암은 대중 모르게 김칫독에 소금을 뿌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상원사 김치는 짜기로 소문이 나 김치 한 가닥이면 수수밥 한 사발을 비울 수 있는데, 한암은 그 짠 김치에 다시 소금을 더 붓고 있었다.
“이래야 이 김칫독의 김치가 하안거를 넘길 수 있을 것이야.”
“소금에 절이고 계시는군요.”
“짜다 못해서 아예 쓸 거야. 수행자는 맛을 몰라야 돼. 거친 음식으로 험식(險食)을 하면서 맛을 잊어버려야 돼. 수행자는 김치가 짜건 쓰건 상관하지 말아야 돼.”
한암은 궁한 살림을 염려한 나머지 벌써 하안거 대중들의 반찬거리를 걱정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혜암은 상원사 대중들이 짠 김치 한 가닥의 힘으로 동안거와 봄 안거를 무사히 보낸 것을 행복하게 여겼다. 절이 어렵고 가난하기에 더욱 오롯이 정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혜암 수좌, 화두는 잘 들리는가.”
“저는 화두 드는 것보다 장좌불와가 쉽습니다.”
“화두가 머리에서만 노는구먼. 그 화두가 가슴으로 내려가고, 온몸으로 내려가 자기와 일체가 될 때가 있을 것이네. 반드시 그때가 올 것이니 의심하지 말고 정진하게.”
“그것을 독로(獨路)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말은 중요하지 않지. 목숨을 바쳐도 되겠구나 하고 확신이 들 때가 있어. 그게 득력(得力)이네.”
다음날 혜암은 점심공양 중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마주 앉아서 수수밥에 김치를 먹고 있던 구참 수좌가 고개를 저었다.
“이 김치는 짜다 못해 소태 같구먼.”
“그래도 저는 상원사 김치가 부럽습니다.”
“부럽다고 했는가.”
“상원사 김치처럼 제 몸을 화두로 절이고 싶습니다.”
구참 수좌가 숟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내가 혜암 수좌에게 졌네.”
“스님,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중국의 동산스님이 ‘나는 항상 불도에 전력투구한다.’고 말씀하셨네.”
구참 수좌가 조용하게 말했다. 선가에 전해지는 ‘참외는 꼭지까지 사무치게 달고 쓴 박은 뿌리까지 쓰다.’라는 법어를 가지고 얘기했다. 참외가 단맛을 내고, 박이 쓴맛을 내기 위해 악착같이 덩굴을 뻗고 사는 것처럼 사무치게 정진하라는 당부했다. 구참 수좌는 혜암 수좌가 상원사 김치처럼 정진하겠다는 말도 그런 뜻으로 이해했다.
“내가 혜암 수좌의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했으니 졌다는 말이네.”
혜암은 무심코 말했으나 구참 수좌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한암이 한밤중에 소금을 한 바가지씩 뿌린, 짜다 못해 쓰디쓴 김치 때문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