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희가 떠나는 날
재희가 가리왕산 불암사로 떠나는 날.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침 일찍 조그만 승용차 하나가 정수사 앞마당에 들어섰다. 할머니와 민우는 낯선 운전수 아저씨가 부지런히 차에다가 보따리를 싣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짐이라야 있을 것이 없었다. 몇 꾸러미의 재희 옷과 책이 전부였다. 스님은 단 하나의 짐도 없었다. 여름과 겨울을 가리지 않고 입는 한 가지 옷이 전부였다.
이별이 준비되어 있었다.
느닷없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민우와 재희는 물끄러미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재희는 여전히 모자가 달린 빨간 잠바를 입었고, 스님은 낡은 가사를 입고 있었다.
민우는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악수를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울 수도 없었다. 그저 멀뚱멀뚱 재희를 쳐다만 볼 뿐이었다.
“잘 있어.”
재희의 말을 듣고 민우가 발로 땅바닥을 긁었다. 고개 숙인 민우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민우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우에게 재희는 첫 동무였다.
재희가 다가왔다.
“방학 때마다 꼭 올게.”
그러나 재희의 말은 민우에게 들리지 않았다. 민우의 눈과 코와 귀는 먹먹한 안개가 끼어 있었다. 재희가 손을 잡았다. 민우는 재희에게 오른손을 맡긴 채 울고 있었다. 재희가 민우의 손을 꼭 쥐었다. 한껏 봄을 준비한 나무 가지들 사이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정말이야.”
민우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목이 막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꾸만 눈이 부셨다.
“사내 녀석이 울긴.....”
그러나 할머니 역시 훌쩍거리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할머니!”
“재희야!”
재희가 할머니 품속을 파고들었다. 그제야 재희는 울음을 터뜨렸다. 재희와 할머니는 부둥켜안고 서로의 볼을 맞대고 있었다.
민우는 바다 쪽으로 돌아섰다. 안개 같은 아지랑이가 나뭇가지 사이로 바다를 가리고 있었다.
“민우를......”
“다리도 성치 않으신데 그 험한 곳에서......”
스님이 민우에게 다가왔다. 스님의 야윈 볼에 눈물이 흘렀다. 스님이 민우를 덥석 안았다. 민우는 눈을 감고 있었다. 스님이 민우의 등을 두드렸다.
“민우야!”
“......”
스님은 민우를 품에 안고 울었다. 민우는 가만히 있었다. 스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을 감고 있었다.
“가셔야지요?”
선글라스를 낀 운전사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스님을 재촉했다. 스님이 천천히 돌아섰다.
“민우야! 갈게!”
재희의 울음 섞인 말을 들으면서도 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앞마당 나무처럼 죽은 듯 서 있었다. 스님과 할머니가 마주 서서 합장을 했다. 스님과 재희가 승용차에 올랐다.
그림 한지선
“재희야!”
할머니는 차창에 대고 재희의 이름을 불렀다.
부르릉! 부르릉! 차가 떠나고 있었다. 재희가 차 안에서 무어라고 말을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스님은 앞만 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차를 따라갔다. 꼬불꼬불 돌계단 옆의 계곡을 따라 재희를 태운 승용차가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민우는 움직이지 못했다.
민우는 하루 종일 정수사 돌계단 양지에 앉아 있었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다. 재희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무슨 말인가를 해주었어야 했는데......
민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혼자서 학교 다니는 자신의 모습이, 컨테이너 집 속에서 혼자 있는 자신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사방이 어두워졌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전에는 혼자 있어도 조금도 무서운 것을 몰랐는데, 도무지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2월의 끝임에도 해가 지자, 날씨는 한겨울이나 매한가지였다. 쌀쌀한 바람이 민우의 얼굴을 쓸고 갔다.
민우는 추위도 잊고 불빛들이 늘어만 가는 송신소 마을을 쳐다보고 있었다.
재희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할까?
아버지는 어디 있을까?
금방이라도 그 아저씨들이 들이닥칠 것 같았다. 인천 학익동에 사는 이모집에 전화를 해볼까, 아니면 대전에 사는 삼촌에게 전화를 해볼까? 그러나 민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전화는 있지만 전화비를 내지 못해서 끊긴 지 오래였다. 엄마가 그렇게 집을 나가고 난 다음부터 친척들 누구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전화도 하지 않았다.
민우는 배고픔도 잊고 온 사방이 어두워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재희와 함께 나란하게 서서 바라보던 그 별빛들이 민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민우는 엄마보다도 아버지보다도 재희가 보고 싶었다. 무슨 얘기든 다 들어주던 재희, 어떤 땐 누나 같기도 하고, 어떤 땐 엄마 같기도 했던 재희. 민우는 재희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림 한지선
민우는 천천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방이며 부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민우는 재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혹시라도 아버지가 온다면.......
민우는 가스레인지지에 불을 붙였다. 오늘도 별 수 없이 라면을 먹어야 했다. 그것이 가장 간편했다. 재희가 있을 때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괜스레 서러웠다. 참치 통조림 하나를 사면 거의 일주일을 끓여 먹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민우가 불평을 한 적은 없었다.
혹시라도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해도 형편이 어렵다는 얘기는 절대로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것은 엄마가 집을 나가고 난 이후 아버지와 손가락을 걸고 한 약속이기도 하였다. 민우는 조금이라도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다.
민우는 매일 술을 마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언제나 민우를 끌어안고 울먹였다. 술 냄새 풍기는 아버지의 그런 행동이 싫었지만, 오늘은 그런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다. 아버지만 돌아온다면...... 민우는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시계가 열두 시가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민우는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텔레비전을 켜놓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누군가 올라오는 인기척이었다.
민우는 부리나케 일어났다. 그리고 쏜살같이 계단 끝에 섰다. 그러나 민우 앞에는 아버지 대신 그 아저씨들이 서 있었다.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소리를 지르려고 마음먹었지만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안 왔니?”
민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저씨들은 거칠게 방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왔어, 안 왔어?”
아저씨들의 태도는 전보다도 더 험상궂었다. 또 어디서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 술 냄새가 방 안에 가득했다.
“너, 똑바로 말해!”
혀가 완전하게 꼬부라진 소리였다.
“혼자 있었어요.”
민우는 크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바보같이 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우는 두 아저씨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요거 보통이 아니겠는데.”
“지 애비 닮았으면 얼마든지 우리를 따돌리고도 남지.”
“정말, 아버지 안 왔다 갔어?”
“저도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어요.”
민우는 목소리를 떨지 않기 위해 일부러 크게 말했다.
“오호, 그러면 네 아버지 올 때까지 우리가 여기서 좀 기다려야겠다. 괜찮겠지?”
‘안돼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민우를 쳐다보는 아저씨들의 눈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키가 작은 아저씨의 뺨에는 날카로운 흉터까지 있었다.
아저씨들은 방안에 벌렁 누워버렸다. 민우는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민우는 아저씨들이 방안에 드러눕자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그때 키가 작은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리 들어와!”
민우는 할 수 없이 방안에 들어가 문간에 쪼그려 앉았다.
“엄마는 언제 나갔니?”
“엄마는 여기 안 살아요.”
“야, 언제 집을 나갔냐 이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두 아저씨는 낄낄거리고 있었다.
“오래됐어요.”
“그럼, 그때부터 아버지와 둘이 살았니?”
민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식, 불쌍하구먼.”
“아버지, 밤에는 안 들어오지?”
민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린 아버지 친구야.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말해도 괜찮아.”
그러나 민우는 아저씨들이 아버지의 친구가 아닌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낮에 집에서 자고, 밤에 일 나가지? 흐흐흐!”
“그래, 그래. 아버지는 낮에 자고 밤에 일하는 사람이지. 헤헤헤!”
아저씨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또 낄낄거렸다.
민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그 자식 또 우리 빼놓고 일 꾸미는 거야. 나쁜 놈.”
민우는 아저씨들이 아버지를 욕하는 걸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민우는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기를 빌었다. 만약 아버지가 온다면...... 민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너 학교 다니지?”
“예.”
“몇 학년이냐?”
“5학년.”
“애걔, 6학년 올라가는 놈이 이렇게 작아?”
키 큰 아저씨 말대로 민우는 다른 아이들보다 작았다. 아버지도 키가 작고, 엄마도 키가 작으니까 그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3학년이나 4학년 중에도 민우보다 큰 아이들이 많았다. 그럴 때면 민우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그렇지만 민우의 별명은 작은 고추였다. 누구보다도 축구를 잘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뜀박질과 축구만은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민우는 육상부에도 축구부에도 들 수가 없었다. 특별활동을 할 돈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공이나 체육복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민우는 4학년 때처럼 준비물이 전혀 필요가 없는 독서부에 들었다. 독서부는 학교 도서실에 가서 책만 읽으면 되었으니까. 독서부에는 거의 여자아이들밖에 없었다.
“어린애 붙들고 실갱이 쳐봐야 좋은 거 하나도 없어. 야, 너도 그쪽에서 자.”
키 큰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을 때 비로소 키 작은 아저씨가 민우를 놓아주었다. 가만있으면 또 무슨 말을 물어볼까 봐 민우는 얼른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렇지만 잠이 올 리 없었다.
그림 한지선
아버지는 어디 있을까?
재희는?
민우는 입은 옷 그대로 재희가 있을 가리왕산 불암사를 상상하며 까무룩 잠이 들었을까, 어느새 창으로 햇살이 비쳤다. 날이 밝았던 것이다. 그때까지도 아저씨들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민우는 혹시 아저씨들이 깰까 봐 아침을 먹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단 몇 분이라도 빨리 이 아저씨들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오는 민우를 키가 작은 아저씨가 불렀다.
“너 우리가 여기 있다고 누구에게든 얘기를 하면, 그땐 어떻게 되는지 알지?”
무서운 눈빛이었다. 민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린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너도 그거 알지?”
민우는 또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른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러자 키 작은 아저씨가 주섬주섬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민우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먹고.”
그러나 민우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받고 싶지가 않았다.
“아저씨가 줄 때 받아!”
언제 깨었는지 누운 채로 키가 큰 아저씨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민우는 두 손으로 키 작은 아저씨의 돈을 받았다.
“자아식, 지 애비하고는 다르게 예의 바르구먼. 흐흐흐!”
민우는 얼른 뒤돌아섰다.
그때 다시 키 작은 아저씨가 큰소리로 말했다.
“약속 지켜라!”
민우는 빠르게 계단을 내려왔다. 그러고는 정수사를 향해 달려갔다. 역시 정수사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 일찍 나왔는지 아직 학교에 가는 아이들도 없었다. 그렇지만 민우는 육상 선수보다 빠르게 달렸다.
민우는 초등학교 4학년 치고는 작은 체구에다가 약해 보이는 민우지만 걸음은 무척 빨랐다. 운 좋은 날엔 마을 아저씨가 모는 경운기를 얻어 탈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날은 한 달이면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했다.
시내버스가 드문드문 다니는 마을에서는 학교에서 집까지 태워다 주는 학원 버스를 타야 했다. 그러나 민우는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민우에게는 자전거가 통학 수단으로 최고였다. 하지만 10만 원이 넘는 자전거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괜한 욕심에 친구들 자전거로 타는 법은 미리 배웠지만......
언젠가 자전거를 한창 배울 때, 아버지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신나게 달리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사 달라고 해 본 적은 없었다. 길옆 냇가에 흔들리는 늦겨울 버들강아지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도 학교에 도착하는 시간은 여덟 시가 넘었다.
비록 엄마 아버지도 없는 집에서 지내지만, 친구들이 재잘거리는 학교에 오면 민우도 금방 그 속에 묻혀버렸었다. 오후 두 시 삼십 분. 학교 수업이 끝날 때까지.
그러나 재희가 떠나고 난 다음부터 민우는 달라졌다.
말이 없는 아이가 되었다.
봄 방학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민우는 항상 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