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수행이 끝날 때까지 고행자처럼 살리라”
한 여인이 창문 밖으로 까삘라왓투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인의 시선은 거리에서 탁발을 하고 있는 한 수행자를 향하고 있었다. 이 수행자는 7년 전, 제대로 된 이별 인사도 없이 자신과 자식을 남겨두고 수행자가 되기 위해 숲으로 떠나버렸던 남편이었다. 지금은 부처님이 되어 만인의 존경과 귀의를 받고 있는 남편의 등장에 그녀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이 여인은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 부부의 인연을 맺었던 ‘야소다라(Yasodhara)’였다.
야소다라는 ‘밧다깟짜나(Bhaddakaccānaā)’, 혹은 ‘라후라’의 어머니라는 의미에서 ‘라후라마따’, 혹은 ‘빔바데위’, ‘빔바순다리’라고도 불렸다. 세존과 같은 날 태어났고, 황금빛 피부를 갖고 있어 출가 후에는 밧다깟짜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싯다르타 태자의 부인, 즉 태자비로서 공식적인 명칭은 라훌라마따(라훌라의 어머니)이다. 라훌라마따는 율장과 법구경 주석(법구경 13~14번 주석)에서, 밧다깟짜나는 <앙굿따라니까야>(A.1.5-11)에서 등장한다. 야소다라는 <아빠다나(Apadāna, 비유경)>에서 등장하는 이름이다. 후기 대승경전에서는 주로 야소다라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빔바데위와 빔바순다리는 <자따까(전생담)>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데위(devi)는 여신이라는 뜻이다. 싯다르타의 친모인 마야부인을 마야데위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왕후나 태자비는 신급의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빔바데위는 빔바 태자비라는 의미가 된다. 빔바순다리에서 순다리(sundari)는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출가 전 부처님이 사랑했던 여인은 오직 야소다라 한 사람뿐이었다. 출가 전 싯다르타는 철저한 일부일처주의자였다. 싯다르타는 전제군주, 왕세자나 재벌 2세들처럼 문란한 삶을 살지 않았으며, 타고난 성정 자체가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부처님께서 출가 전에 향락을 즐겼다는 기록들이 발견되는 것은, 싯다르타의 출가를 막기 위해 그가 살던 궁중에 악단이 연주하는 음악과 무희들의 춤사위가 자주 열렸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부처님께 꽃공양을 올리는 미얀마 여성출가수행자(사왈리)들.(사진 이학종)
야소다라가 싯다르타와 결혼한 나이는 16세 때였다. 라훌라를 낳았을 때는 29세였다. 그러나 그녀는 라훌라가 태어난 후 생과부 신세가 되었다. 싯다르타 왕자가 출가를 결행했기 때문이었다. 싯다르타는 아들을 안고 잠들어있는 아내를 마지막으로 지켜본 후 말없이 궁을 떠났다. 싯다르타는 정각을 이룬 후 1년쯤 지나 고향 까삘라왓투를 방문했다. 부처님은 까삘라왓투에 도착한 후 궁으로 들어가지 않고, 인근 숲에 자리를 잡은 후 다음 날 거리로 탁발을 나갔다. 거리에서 탁발하는 거룩하고 장엄한 자태의 부처님을 바라보면서 야소다라는, 처음으로 친부를 보게 된 라훌라에게 시로써 아버지를 소개했다.
1.
Cakkavaraṅkitarattasupādo, 짝까와란끼따랏따수빠도
lakkhaṇamaṇḍita-āyatapaṇhī, 락카나만디따 아야따빤히
cāmarachattavibhūsitapādo, 짜마라찻따위부시따빠도
esa hi tuyha pitā narasīho. 에사 히 뚜이하 삐따 나라시호
거룩한 붉은 두 발은 탁월한 법륜으로
훤칠한 발꿈치는 고귀한 징표로 새겨지고
발등은 불자와 양산으로 장엄되었으니
바로 이분이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옵니다.
2.
Sakyakumāravaro sukhumālo, 사끼야꾸마라와로 수쿠말로
lakkhaṇacittikapuṇṇasarīro, 락카나찟띠까뿐나사리로
lokahitāya gato naravīro, 로까히따야 가또 나라위로
esa hi tuyha pitā narasīho. 에사 히 뚜이하 삐따 나라시호
우아하고 고귀한 사끼야 족의 왕자님
몸은 길상의 징표들로 가득 차 있고
세상의 이익을 위하는 사람 가운데 영웅이니
바로 이분이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옵니다.
3.
Puṇṇasasaṅkanibho mukhavaṇṇo, 뿐낫산깐니보 무카완노
devanarāna' piyo naranāgo, 데와나라나 삐요 나라나고
mattagajindavilāsitagāmī, 맛따가진다윌라시따가미
esa hi tuyha pitā narasīho. 에사 히 뚜이하 삐따 나라시호
얼굴빛은 보름달처럼 빛나고
하늘사람과 인간이 사랑하는 인간 가운데 코끼리
우아한 걸음걸이는 코끼리의 제왕과 같으니
바로 이분이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옵니다.
4.
Khattiyasambhava-aggakulīno, 캇띠야삼바와 악가꿀리노
devamanussanamassitapādo, 데와마눗사나맛시따빠도
sīlasamādhipatiṭṭhitacitto, 실라삼마디빠띳티따찟또
esa hi tuyha pitā narasīho. 에사 히 뚜이하 삐따 나라시호
왕족으로 태어난 귀족으로서
하늘사람과 인간의 존귀함을 받는 님
마음은 계율과 삼매로 잘 확립되었으니
바로 이분이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옵니다.
5.
Āyatatuṅgasusaṇṭhitanāso, 아이야따뚠가수산티따나소
gopakhumo abhinīlasunetto, 고빠쿠모 아비닐라수넷또
indadhanū-abhinīlabhamūko, 인다다누 아비닐라수넷또
esa hi tuyha pitā narasīho. 에사 히 뚜이하 삐따 나라시호
잘 생긴 코는 길고 우뚝 솟았으며
형형한 눈동자는 어린 송아지처럼 푸르고
짙푸른 눈썹은 무지개 같으시니
바로 이분이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옵니다.
6.
Vaṭṭasumaṭṭasusaṇṭhitagīvo, 왓따수맛따수산티따기워
sīhahanū migarājasarīro, 시하하누 미가라자사리로
kañcanasucchavi-uttamavaṇṇo, 깐짜나숫차위 웃따마완노
esa hi tuyha pitā narasīho. 에사 히 뚜이하 삐따 나라시호
잘 생긴 목은 둥글고 부드러우며
턱은 사자와 같고, 몸은 백수의 왕과 같고
빼어난 피부는 아름다운 황금빛이니
바로 이분이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옵니다.
7.
Siniddhasugambhiramañjusaghoso, 시닛다수감비라만주사고소
hiṅgulabandhusurattasujivho, 힌굴라반두수랏따수지보
vīsativīsatisetasudanto, 위삿띠위삿띠세따수단또
esa hi tuyha pitā narasīho. 에사 히 뚜이하 삐따 나라시호
목소리는 부드럽고 깊고 감미로우며
혀는 주홍처럼 선홍색이고
치아는 하얗고 스무 개씩 가지런하시니
바로 이분이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옵니다.
8.
Añjanavaṇṇasunīlasukeso, 안자나완나수닐라수께소
kañcanapaṭṭavisuddhanalāṭo, 깐짜나빳따위숫다날라또
osadhipaṇḍarasuddhasu-uṇṇo, 오사디빤다라숫다수 운노
esa hi tuyha pitā narasīho. 에사 히 뚜이하 삐따 나라시호
머리카락은 칠흑 같은 심청색이고
이마는 황금색의 평판처럼 청정하며
백호는 새벽의 샛별처럼 밝고 아름다우니
바로 이분이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옵니다.
9.
Gacchati nīlapathe viya cando, 갓차띠 닐라빠테 위이야 짠도
tāragaṇāpariveṭhitarūpo, 따라가나빠리웨티따루뽀
sāvakamajjhagato Samaṇindo, 사와까맛자가또 삼마닌도
esa hi tuyha pitā narasīho ti. 에사 히 뚜이하 삐따 나라시호
달이 많은 별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창공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성자들의 제왕은
고귀한 제자에 둘러싸여 있으니
바로 이분이 당신의 아버지, 인간의 사자이옵니다.
- 인간사자의 게송(Narasīhagāthā, 예경지송 일반예불품, 전재성 옮김)
다음 날 부왕 숫도다나의 초청으로 부처님과 비구들이 왕궁에서 공양을 끝마쳤을 때 궁의 모든 여인들이 부처님께 다가가 존경의 예를 표했다. 하지만 야소다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녀들이 부처님을 찾아가 만나볼 것을 권했지만 야소다라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나에게 덕이 있다면 태자님께서 스스로 나를 만나러 오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때 그분을 뵙도록 하겠다.”
방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야소다라의 말대로 과연 부처님은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등 2명의 상수 제자만을 동반하고 부왕의 안내를 받아 야소다라의 처소를 찾았다. 막상 남편이 자신의 처소까지 찾아오자 야소다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황급히 엎드려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갖다 대며 최상의 경의를 표했다. 오랜 세월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며 아들 라훌라와 함께 꿋꿋하게 살아온 며느리에 대한 측은함이었을까. 곁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숫도다나가 부처님에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야소다라는 당신이 가사를 입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도 허름한 옷을 입었고, 당신이 하루에 한 끼만을 먹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도 한 끼만을 먹었습니다. 또한 당신이 큰 침대에는 눕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신도 너덜너덜한 천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침대에 누웠고, 당신이 화환이나 향수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고는 자신도 그것들을 일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왕궁에 머물렀으나 나의 사랑스러운 며느리 야소다라는 정말 수행자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나의 며느리 야소다라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즐거움은 라훌라를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야소다라의 이런 행동은 일시적인 감정에 따른 것도 아니며 용기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아버지의 설명을 들은 부처님은 야소다라는 왕녀가 아니었던 전생에도 이미 몸을 잘 지켰던 여인이었으며, 전생부터 큰 공덕을 지어온 그녀가 현생에 건전한 생활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야소다라 자신을 보살피고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었던 것은 금생만이 아니라고 찬탄했다.
부처님은 이어 야소다라를 향해 차분한, 그러나 연민 어린 목청으로 말했다.
“야소다라, 당신은 내가 출가할 수 있도록 배려했던 큰 용기와 위대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출가하여 수행할 때에 당신의 순수한 마음, 우아한 몸가짐, 헌신적인 자세에 대한 기억은 커다란 격려와 힘이 되었습니다. 야소다라, 그런 용기와 정신력으로 이제 당신은 과거에 마음 아파하거나 오지 않는 미래의 환상에서 벗어나, 당신의 새로운 삶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짧은 당부의 말로 옛 아내와의 해후를 마무리한 후 왕궁을 떠났다. 까삘라왓투에 머물며 부처님이 이복동생 난다를 출가시키는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난다의 출가는 왕실 가족을 깜짝 놀라게 했다. 난다의 출가에 가장 혼란을 느낀 것은 이제 갓 일곱 살인 어린 라훌라였다. 그가 어머니 야소다라에게 물었다.
“어머니, 난다 삼촌이 아버지의 상가에 들어간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형님으로부터 물려받을 게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라훌라야. 아마 너도 언제가 난다 삼촌처럼 부처님을 계승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야 할 일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라훌라야. 아버지에게로 가서 네게 받아야 할 유산을 달라고 하렴. 틀림없이 너에게 물려줄 유산이 있을 것이다.”
싯다르타가 자신을 위해 획득한 평온과 행복이 결국에는 모든 왕실 가족에게 나누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야소다라가 아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 후 까삘라왓투 인근 니그로다 수행처에 머물고 있던 아버지를 찾아와 유산을 달라고 보채는 아들 라훌라를 부처님은 지체 없이 출가시켰다. 야소다라는 사랑하는 라훌라를 그렇게 존경하는 남편의 곁으로 떠나보냈다.
라훌라가 출가한 후 오래지 않아 시아버지 숫도다나 왕마저 저세상으로 가 버리고 시어머니 고따미를 비롯해 수많은 사끼야 족 여인들마저 출가를 허락받기 위해 까삘라왓투를 떠나자 야소다라는 자신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야겠다고 내심 다짐했다. 사실 싯다르타의 가족 가운데 아직까지 출가하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은 야소다라 한 사람밖에 없었다.
사실 싯다르타의 출가로 가장 심한 충격과 상처를 받은 사람은 야소다라였다. 천재지변도 아니요, 개인적인 잘못도 없이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남편과 생이별을 해야만 했으니, 그녀가 받았을 충격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단 하나의 혈육 라훌라까지 아버지를 따라가버렸고, 친딸처럼 며느리를 아끼고 보살펴주던 시아버지 숫도다나 왕도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 야소다라가 의지할 곳은 없었다. 그러나 야소다라는 여성의 출가를 허락을 받기 위해 고따미와 친정어머니 빠미따가 웨살리를 향해 나섰을 때, 함께 떠날 채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따미를 스승으로 비구니가 되다
여성 출가수행자 가운데 최초로 아라한의 경지를 성취한 고따미가 까삘라왓투로 돌아와 니그로다 동산에 비구니 수행 처소를 마련하자 야소다라는 망설이지 않고 니그로다 동산으로 향했다. 이렇게 야소다라는 까삘라왓투에서 고따미의 지도 아래 출가한 최초의 사끼야 족 여인이 되었다. 야소다라는 고따미의 자상한 지도를 받으며 정진에 정진을 거듭했다. 오랜 전생부터 큰 공덕을 지어왔기에 수행에 있어 그녀의 진전은 매우 빨랐다. 오래지 않아서 통찰의 지혜를 닦았고, 마침내 불사(不死)의 경지를 성취할 수 있었다.
부처님은 위대한 궁극의 목적지에 도달한 야소다라를 향해 “위대한 최상의 지혜(초월지/Mahābhinnappattāna)를 얻은 비구니들 가운데서 밧다깟짜나가 으뜸.”이라고 칭찬했다. 초월지를 성취한 야소다라는 1아승지 겁과 십만 대겁 동안의 과거생을 기억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아라한들 가운데에서도 이와 같은 초월지를 갖춘 출가수행자는 밧다깟짜나 외에 사리뿟따, 목갈라나, 바꿀라 정도밖에 없었다. ‘과거 전생에 부부로 맺은 인연이 오늘 이렇게 성취되었다. 아, 고귀하고 성스러운 인연이여!’ 야소다라는 할 일을 다 마친 감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야소다라는 기원정사가 있는 사왓티로 가서 부처님과 아들을 바라보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까삘라왓투를 떠났다. 비록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지만, 남편과 아들이 가까이 머물고 있는 사왓티의 비구니 수행처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가까이서 부처님과 아들 라훌라를 바라보며 살고 싶은 본능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부처님과 아들에게, 특히 상가 전체에 자신의 처신이 누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더욱 엄격하게 단속했다. 그런 그녀였지만 예기치 않았던 시기와 모함이 어김없이 닥쳐왔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들은 출가 전 세존의 아내였던 특별한 위치 때문에 겪어야 할 숙명 같은 것들이었다. 결국 그녀는 부처님과 라훌라, 그리고 상가를 위해 사왓티를 떠날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엄격하게 자신을 단속한다고 하더라도 출가하기 전에 부처님의 아내였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특혜가 될 수도 있고,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야소다라는 이후 가급적이면 부처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면서 가장 낮은 계급의 여인들만을 제자로 받아들여 지도하고 보살피는 희생적인 삶을 선택했다. 그녀의 이런 삶은 부처님으로부터 ‘인욕(忍辱, 욕됨을 잘 참아내고 역경을 이겨냄)제일 비구니’라는 칭송을 받았을 정도로 철저하게 실천되었다. 또한 야소다라는 스스로 참회하는 일에 솔선함으로써 ‘구참괴제일(具懺愧第一)’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상가 안에서 자신이 처한 피할 수 없는 위치와 반연을 항상 참회하며 부끄럽게 생각할 줄 알았기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렇게 야소다라는 비구니 상가 안의 낮은 곳을 보살피는 역할을 맡았고,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정진하는 것으로 부처님의 교화를 도왔다.
물론 야소다라가 아들 라훌라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수행자로 살면서 심신의 건강을 유지한 적도 있었다. 사왓티의 한 비구니 승원에서 머물던 야소다라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어느 날 야소다라에게 극심한 복통이 일어났다. 라훌라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처소로 찾아왔건만 극심한 고통으로 도저히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복통으로 고통스러워한다는 사정을 알게 된 라훌라가 야소다라에게 말했다.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있다면 돕겠습니다.”
그러자 고통을 삼키며 야소다라가 힘겹게 말했다.
“제가 집에 있을 때는 설탕을 뿌린 망고즙을 마시면 복통이 가라앉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걸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처지이니, 어디서 그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든 망고즙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그 길로 라훌라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첫 스승이자 따뜻하고 세심한 성품을 지닌 사리뿟따를 찾아갔다. 사리뿟따와 라훌라는 출세간의 부모 자식과 같은 관계였으니, 아마도 개인적인 일을 상담하기에는 사리뿟따가 적격이었다. 그러나 막상 사리뿟따 앞에 서니 망설여졌다. 입안에서 도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한 채 라훌라는 난감한 얼굴로 서 있었다.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을 본 사리뿟따가 물었다.
“라훌라야, 무엇 때문에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느냐?”
잠시 머뭇거리던 라훌라가 대답했다.
“밧다까짜나께서 지금 극심한 복통을 앓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복통은 설탕을 뿌린 망고즙을 마신다면 곧 나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탁발로 살아가는 수행자로서 망고즙을 얻을 방법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망고즙을 구할 수 있을까요?”
비록 출가했지만 라훌라의 애틋한 효심을 측은하게 여긴 사리뿟따가 위로했다.
“걱정하지 말거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사리뿟따는 라훌라를 데리고 사왓티로 들어가 라훌라를 기다리게 한 후 꼬살라 국 빠세나디 왕을 찾아갔다. 사리뿟따가 온 것을 안 빠세나디 왕은 서둘러 자리를 마련하고 앉기를 권했다. 그때 화원을 지키고 있던 한 병사가 맛깔스럽게 익은 망고를 바구니 가득 담아 왔다. 왕은 망고 껍질을 벗겨 설탕을 뿌린 후 스스로 으깨서 장로의 발우에 담아주었다. 그러자 사리뿟따가 자리에서 일어나 라훌라에게 망고즙을 건네며 말했다.
“라훌라. 어서 이것을 가지고 가서 어머니에게 드려라.”
라훌라가 건네준 망고즙을 먹자 야소다라의 복통이 씻은 듯 가라앉았다. 한편 빠세나디 왕은 사리뿟따가 자신이 준 망고즙을 먹지 않고, 어디론가 가지고 간 것을 이상히 여겨 부하에게 그가 누구에게 망고 즙을 건네주었는지를 알아오라고 시켰다. 사리뿟따의 뒤를 밟은 부하는 라훌라를 통해 망고즙이 밧다깟짜나 비구니에게 전해졌고, 밧다깟짜나는 곧 복통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상황을 왕에게 상세하게 보고했다. 그러자 왕은 생각했다.
‘만약 부처님이 출가하지 않고 가정생활을 하고 계셨다면, 부처님은 전륜성왕이 되셨을 것이다. 따라서 라훌라 사미는 태자, 야소다라 장로니는 왕비가 되었을 것이다. 세계의 모든 지배권은 그들 밑에 있었을 것이다. 우리들도 그들에게 봉사하면서 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여, 우리들 가까이에서 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그런 분들을 내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는가!’
이후 빠세나디 왕은 장로니 밧다깟짜나를 위해 망고즙을 계속해서 보내주었다고 한다.
부처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다
출가 후의 야소다라가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를 말해주는 전승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그녀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알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녀는 출가한 이후 오랜 시간이 경과되지 않아서 깨달음과 해탈을 이뤘을 뿐 아니라, 고도의 신통력을 갖춘 최상의 비구니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 성인 중의 성인[聖中聖]을 남편으로 둔 여인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것인지는,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야소다라의 생을 통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하지만 야소다라는 그릇이 매우 큰 여인이었다. 그 큰 그릇 안에 자신의 고된 삶을 모두 풀어놓은 채 밖으로는 그 고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남편을 스승으로 존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깨달음에 대한 열정으로 바꾸어 정진했던 최고의 여성 출가수행자였던 것이다.
부처님이 사랑했던 유일한 여인, 야소다라. 그녀는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지는 않았지만, 최초의 비구니이자 첫 번째 여성 아라한이었던 고따미의 제자가 되어 출가수행자의 길을 걸었다.
부처님께 꽃공양을 올리는 미얀마 여성출가수행자(사왈리)들.(사진 이학종)
그림자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수행정진을 해왔던 야소다라가 78세가 되던 해의 어느 날, 부처님의 처소를 찾아갔다. 사랑하는 남편이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의 아버지이며, 상가의 최고 지도자인 부처님을 찾아온 야소다라는 그날 밤 자신이 입적에 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야소다라는 다른 제자들처럼 자신이 열반에 들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는 요청을 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그녀의 성정은 독립적이었다. 또한 비록 세속의 모든 연을 접고 출가수행자의 삶을 살았지만 한때 아내였던 자신의 열반을 허락해야 하는 곤혹스러움을 부처님에게 주고 싶지 않기도 했다. 이처럼 야소다라에게는 비구니가 된 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어린 시절부터 드러났던 야소다라의 진취적인 성정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동시에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진중함도 함께 갖춰져 있던 것이다. 부처님과의 마지막 친견 자리에서 야소다라가 가라앉은 목청으로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당신께 직접 출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귀의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당신께서 일러주신 가르침에 귀의했습니다.”
부처님은 부쩍 기력이 쇠해진 야소다라를 바라보며 한없는 연민을 느꼈다. 출가 전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 세상에서 하나뿐인 혈육 라훌라를 낳아준 여인, 기꺼이 자신의 출가를 허락해 주었고, 수행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했으며, 사랑하는 아들도 출가의 길을 걷도록 인도해 주었고, 마침내 자신도 출가하여 불사(不死)의 경지를 이룬 위대한 여인 야소다라를 바라보는 부처님의 눈에는 사랑과 연민과 존경이 교차하고 있었다. 세연이 다 했음을 안 야소다라가 마지막 힘을 모아 말했다.
“고맙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당신과의 인연, 당신과 나눈 사랑, 그리고 함께했던 세월들…, 그 모두가 이 순간 너무나 고맙습니다. 모두가 다 당신 덕분입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당신께서 제시해 준 위대한 가르침으로 인해 후회 없는 삶을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불사(不死)의 길을 얻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세존이시여, 당신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부부’ 수행자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이 그날따라 유난히 짙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