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정윤경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인생찬가이다
정찬주(소설가)
상생과 조화의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빛깔이 다양하게 어우러진 이불재 풍경이다.
자줏빛, 연분홍빛, 진홍빛, 하얀빛, 신록빛, 초록빛, 갈맷빛 등등
빛깔만 해도 서로 튀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상생하듯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하고 있다.
사람 사는 도리가 초여름, 이불재 풍경이 이뤄낸
아름다움 속에도 깃들어 있는 것 같아 단상을 남긴다.
꽃은 꽃봉오리가 개화할 때, 가장 순결하고 우아한 것 같다.
경봉 노스님께서는 진리의 법문은 그냥 듣기만 해도
어느 땐가는 깨달음의 꽃이 된다고 말씀했다.
나는 무심코 꽃을 보는 버릇이 있다.
내가 보았던 꽃이 내 속뜰에 다시 필 것만 같은 예감 때문이다.
내 산방 앞산 뒷산에 야생화가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다.
풍성하게 존재하는 이 초여름의 축복이자 위안이다.
신산하고 잔혹한 세상 같아서 더욱더 눈물겨운 꽃이다.
<반야심경> 중에서 가장 장엄하고 아름다운 구절은
아마도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일 것이다.
<반야심경>을 한역한 현장은 주문이라 하여 뜻을 번역하지 않고
산스크리트어 음과 엇비슷하게 음역만 하고 말았다.
이후 모든 스님들도 주문으로 받아들일 뿐 원뜻의 번역을 피했다.
주문을 해석하면 신비스러운 힘이 없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산스크리트어인 ‘가테 가테 파타가테 파라삼가테 보디 스바하’를
굳이 해석하자면 이기영 박사께서 다음과 같이 옮기신 적이 있다.
가신 분이여
가신 분이여
피안에 가신 분이여
피안에 온전히 가신 분이여
깨달음이여
행운이 있으라.
여기서 ‘가신 분(가테)’이란 ‘지혜의 완성을 이룬 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성 이미지를 띤 단수인데
그분을 부르는 호격(呼格)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서 부르는 대상이란 <반야심경>의 주어이기도 한
관자재보살 혹은 법신(法身)이 아닐까도 싶다.
훗날 이기영 박사께서 다시 재해석하여 번역하신 적이 있다.
가신 님이여, 가신 님이여, 저쪽으로 가신 님이여,
저쪽으로 완전히 가신 님이여, 그리고 다시 오신 님이여,
우리 부처님이시여, 영원히 영광이 있으소서.
그런데 라즈니쉬는 이해하는 관점을 사뭇 달리하고 있다.
우리는 본래 부처이니 주문을 더 적극적으로 이해하라고 비판한다.
‘그대는 부처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대는 부처가 아니다.
이것이 딜레마다. 하나의 역설이다.
그대는 부처가 되기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대는 그만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런데 <반야심경>은 그대를 다시 본 궤도로 옮겨 놓을 것이다.
부처라고 운명 지어진 그대에게 <반야심경>은 큰 도움을 줄 터.
중국, 한국, 일본, 스리랑카, 태국 등지에서는
수 세기를 내려오면서 이 주문을 외우기만 했다.
그러나 독송은 어디까지나 독송으로 끝난다.
독송의 반복은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다.
독송과 더불어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주문이 그대 자신이 되어야 한다.’
가자
가자
더 높이 가자
우리 다 같이 가자
깨달음이여
영원하여라.
라즈니쉬는 첫 번째의 ‘가자’는 의식이 잠든 물질과 육체와
눈에 보이는 유형의 세계로부터 떠나자는 의미라고 말한다.
그리고 두 번째의 ‘가자’는 삶과 죽음이 무한하게 연속되는
윤회로부터 떠나자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세 번째의 ‘가자’는 선택하는 마음과 사념(思念)으로부터
높이 떠나가자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마지막 네 번째의 ‘가자’는 나라고 하는 주어가 사라진
창조 이전으로 떠나가자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네 번째의 의미에 내 생각을 보태자면
무아의 상태 즉 공(空)을 자각하자는 뜻이 아닌가 싶다.
모든 것에서 떠나 있으니 절대순수인 공의 차원인 것이다.
그가 ‘보디(菩提)’를 ‘깨달음이여’라고 번역한 것은
앞의 세 번째 단계를 통하여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왔으니,
거꾸로 말하자면 모든 것이 사라져 텅 비워져 있으니
순수한 자성이 깨달아지는 순간을 문득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편 라즈니쉬는 <반야심경>의 마침표와 같은 ‘사바하’를
자성을 깨달은 상태의 절정의 감탄사라고 말한다.
그는 그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단어가 없을 텐데도
‘영원하여라’라는 축복하는 서술어를 빌렸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사바하’란 깨달은 이의 황홀한 외침이고
확고한 메시지라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스바하.’는
우리 모두의 희망가이자 인생찬가가 아닐까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