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빠자빠띠 고따미(Mahāpajāpatī Gotamī) ⓵ 

빠자빠띠 고따미(이하 고따미)는 부처님의 이모이자 양어머니이다. 고따미라는 이름은 고따마 족의 여인이란 의미다. 부처님의 친어머니인 마하마야 왕비가 싯다르타를 낳고 칠일 만에 세상을 뜨자, 관례에 따라 그의 막내여동생 고따미가 숫도다나 왕(정반왕)의 정식 왕비가 되었다. 이모에서 양모가 된 고따미는 싯다르타의 양육에 혼신의 정성을 기울였다.  

고따미는 데와다하 시의 쑵빠붓다 집안에서 막내딸로 태어났다. 당시 점성술사들은 마하마야와 고따미 자매를 살펴보고는 “이 두 여인이 잉태한 아들 가운데 전륜성왕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고따미는 싯다르타를 양육하면서, 한 순간도 소홀함이 없었다. 그녀가 기울인 정성은 싯다르타가 ‘세상에 나만큼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아이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할 정도였다. 

고따미가 훗날 출가의 마음을 낸 것은 남편 숫도다나가 죽고 홀로 된 뒤였다. 그녀는 부왕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까삘라왓투에 왔던 부처님에게 처음으로 출가의 뜻을 밝혔다. 장례를 마친 후 부처님은 까삘라왓투 외곽에 위치한 니그로다 동산에서 한동안 칩거하고 있었다. 먼 여행과 부왕의 임종을 지키고 다비를 치르면서 겹친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고따미는 니그로다 숲으로 부처님을 찾아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고따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나는 이 세상에 홀로 남게 되었다. 사랑하는 남편은 저세상으로 가버렸고, 내 생명의 한 부분 같던 싯다르타는 왕위도 버리고 출가수행자가 되었다. 싯다르타를 대신해 왕위를 이을 내 아들 난다도 형을 따라서 출가수행자가 되었고, 어린 손자 라훌라까지 그리 되고 말았다. 까삘라왓투에서의 나의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되었다. 이제 나도 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오직 부처님만이 나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정은 고따미에게만 닥친 특별한 상황이 아니었다. 극심한 가뭄으로 로히니 강의 물을 논에 대기 위해 강을 사이에 두고 물싸움을 하다가 일촉즉발 전쟁 직전까지 갔던 사끼야(석가) 족과 꼴리야 족 젊은이들의 어리석음을 놀라운 지혜와 위엄으로 일깨워준 부처님에 대한 공경심으로, 이들이 다투어 출가하면서 졸지에 많은 여인들이 남편이나 아들과 이별을 하고 홀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고따미는 까삘라왓투 니그로다 동산의 사원에 머물고 있는 부처님을 찾아갔다. 부처님은 그녀의 얼굴에 가득 찬 비탄과 슬픔을 보았다. 고따미는 부처님에게 예를 올리고 자리에 앉아 말했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가르침 아래 여인들도 출가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부처님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고따미가 이토록 중대한 문제를 제안해 오리라고는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확답을 줄 수가 없었다. 여성의 출가를 허용하는 것과 같은 혁명적인 조치가 야기할 여러 가지 결과를 면밀히 숙고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미 브라만교가 지배하고 있던 중인도의 철학, 종교, 사회 및 정치 등에서 일대 변혁을 일으키고 있었으므로, 여성 출가허용이라는 또 하나의 혁신적 조치가 불러올 사회적 후폭풍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부처님께서 설파한 영원불변하는 실재로서의 자아(自我)와 영혼에 대한 부정, 의식주의(儀式主義)에 대한 단호한 비판,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카스트 제도에 대한 거부, 그리고 왕권신수설에 대한 논리적인 비판들은 일부 브라만교도들의 반발과 소동을 야기했고, 크샤트리아들의 원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물며 그가 이끌고 있는 상가(승단)에 여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서는 가볍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여성의 출가를 허용할 경우 기존의 사회 조직은 심각한 와해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비롯해 여성을 가족의 결합과 유지에 아주 중요한 구성요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반발을 살 것이 분명했다. 

수행에 있어 남녀 사이에 우열이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부처님은 여성의 출가 허용이 초래할 후폭풍을 염려했다. 부처님은 사회 전반에 변화를 수용할만한 여건이 성숙되기를 바랐다. 보다 신중한 태도가 혁명적 교설이 뿌리를 내리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부처님은 고따미의 요청을 들은 후 고심을 거듭했다. 비록 고따미가 처음부터 비구와 대등한 위치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출가를 결심한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부처님은 두 가지의 곤란한 문제를 두고 숙고에 들어갔다. 하나는 고따미가 슬픔을 극복하고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가의 지속에 관한 문제였다. 이래저래 여성의 출가를 허용할지 여부는 쉽사리 결정할 수 없는 딜레마였다. 한참을 고심하던 부처님이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고따미여, 나의 상가에 여성 출가자를 받아달라고 요구하지 마십시오.”

한 번의 청으로 여인의 출가가 허락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고따미는 부처님의 완곡한 거절에도 당황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출가를 결심한 배경을 설명했다. 

“세존이시여, 선왕(先王)의 그늘에 의지해 저는 몸과 마음이 편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그늘이 사라졌습니다. 이 나라에는 혼자 남은 여인들이 많습니다. 수백 명의 사끼야 족 젊은 남성들이 부처님께서 이끄시는 상가로 출가함으로써, 졸지에 홀로 남아 가슴 아파하는 여인들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불쌍한 여인들도 세존의 그늘에 의지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고따미의 요청은 충분한 배경과 근거를 갖고 있었기에 잘라 거절하기가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부처님의 입장은 단호했다. 

“고따미여, 이 상가에 여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청하지 마십시오. 여인이 나의 법과 계율에 들어와 가사를 입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세속에 살지라도 목숨이 다할 때까지 청정한 행을 닦으며 건전한 삶을 영위하며 큰 공덕을 짓도록 하십시오.”

부처님의 냉정하리만큼 단호한 반응에 의연했던 고따미의 심장은 찢어질 듯 아파왔다. 부처님의 발등에 볼을 부비며 고따미가 거듭 애원했다. 

“여자는 태어나 아버지에게 의지하다가 결혼하면 남편에게 의지합니다. 나이가 들어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자식을 의지해 살아가야 합니다. 남편도 떠나고 두 아들(싯다르타, 난다)도 떠나고, 귀여운 손자(라훌라)마저 떠난 지금 제게는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부디 가련한 저를 당신의 그늘에서 쉴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

“고따미여, 이 상가에 여인이 들어오는 것을 청하지 마십시오. 나는 여인이 나의 법과 계율에 들어와 가사를 입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청정한 행을 닦아 밝게 깨닫도록 하십시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끼야 족 여인들이 더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통곡하기 시작했다. 사끼야 족 여인들의 통곡에 고따미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여인의 출가 허락을 거듭 요청했다.

“세존이시여, 아버지를 잃고 남편을 잃고 아들을 잃은 여인들이 출가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고따미여, 이 상가에 여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청하지 마십시오. 여인이 나의 법과 계율에 들어와 가사를 입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청정한 행을 닦아 밝게 깨닫도록 하십시오.” 

고따미가 두 번, 세 번 간청했지만 부처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녀는 풀이 죽어 눈물을 흘리며 니그로다 동산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냉정을 잃지 않고 있었고, 어떤 결기마저 서려 있었다. 무언가 굳게 결심을 하는 표정이었다. 고따미가 떠나고 난 다음 아난다가 부처님에게 물었다. 

“스승이시여, 고따미께서 몹시 실망한 것 같습니다. 여인들을 우리 상가에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니면 여인은 깨달음과 해탈에 이를 능력이 없는 것입니까?”

“아난다, 나는 여인들이 깨달음과 해탈을 성취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출가해 있는 많은 남성 수행자들이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아직 많은 수행자들이 욕망과 정염의 속박 속에 머물러 있다. 앞으로도 많은 출가수행자들이 그런 상태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나의 첫 번째 제자가 남자였다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남성 수행자들로 이미 형성된 나의 상가는 당연히 그들의 깨달음과 해탈에 도움이 되는 환경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부처님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여인의 출가를 선뜻 허락할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나는 여자 이상으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 어떤 소리나 냄새도, 맛도, 감촉도 여자와 관계된 것 이상으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아난다여, 남자 이상으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어떤 것도 나는 생각할 수 없다. 어떤 소리나 냄새도, 맛도, 감촉도 남자와 관계된 것 이상으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게 곧 여자가 느끼는 남자의 매력이며, 남자가 느끼는 여자의 매력이다. 아직 갈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남녀의 제자들을 함께 생활하게 하는 것은 마치 불과 기름을 가까이 두는 것과 같다. 그럴 경우 상가는 매우 엄격한 계율로 통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난다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사끼야 족들은 극단적인 고행에 별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부처님이 첫 번째로 까삘라왓투를 방문했을 때, 그 가르침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도 금욕주의에 대한 그들의 선입견이 작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부처님이 가르치는 보다 완화된 형태의 금욕주의가 그들 사이에서 점차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브라만 사제들의 권위를 일거에 무너뜨린,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부처님의 교설과 함께 세속적 사회생활의 가치를 인정하는 가르침은 점차 사끼야 족의 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고 있었다. 

사끼야 족 여인들, 출가의 여정을 떠나다

한동안 니그로다 동산에 머물던 부처님 일행이 까삘라왓투를 떠났다. 그러자 부처님의 보호 아래 여자들도 출가생활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간청을 거절당한 고따미는 단단하게 결심한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거친 베옷으로 갈아입었다. 화려한 치장과 보석을 마다하지 않던 그녀가 화장을 지우고 삭발한 채 맨발로 거리에 나서자, 약속이라도 한 듯 사끼야 족 여인들이 하나 둘씩 그 뒤를 따랐다. 여인들의 행렬이 꼴리야 국를 지나 말라 국의 땅으로 들어섰을 즈음, 사끼야 족 여인들의 행렬은 오백 명으로 불어났다. 여인들은 집단으로 부처님을 찾아가 여성의 출가를 허락해 줄 것을 재차 간청하기로 의기투합했던 것이다. 

남편 또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던 여인들은 별 준비도 없이, 지닌 것도 없이 무작정 고따미를 따라 부처님께서 머물고 있는 웨살리의 큰 숲으로 향했다. 그들 가운데에는 야소다라의 친정어머니 빠미따 부인도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삭발하고 황색 가사를 걸치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웨살리에 도착한 여인들의 발은 상처로 피가 흘렀고, 물집이 부르텄으며, 온몸은 더러운 먼지로 뒤덮였다. 여인들의 몸과 마음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이렇게 사끼야 족 여인들은 묻고 또 물으며 마침내 부처님과 제자들이 머물고 있는 첨탑당에 도착했다. 

그때 아난다는 부처님이 쉬고 있는 방문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는 황색 가사를 입고 다가오는 일단의 여인들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따미가 인솔하는 사끼야 족 여인들 모두가 먼지투성이에 다리를 절고 있었고, 극도로 지쳐 있었다. 다만 눈빛만큼은 모종의 결기로 초롱초롱 빛났다. 아난다가 그들 앞으로 나아가 물었다.  

“고따미여, 무슨 까닭으로 헤진 옷을 입고 맨발에 얼굴은 더럽고, 옷은 먼지투성이인 채 이렇게 지쳐서 울고 계십니까? 여러분, 점심은 드셨는지요? 제가 어떻게 하면 여러분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아난다여, 우리들의 식사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다만 오직 한 가지 우리가 편안해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세존을 뵙고 우리도 출가하여 세존의 상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그만 멈추십시오, 고따미여. 잠시 마음을 진정하시고 기다리고 계십시오. 제가 지금 들어가서 세존께 여러분의 뜻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아난다는 여인들에게 기다리도록 당부한 후 부처님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미 아난다와 사끼야 족 여인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들은 부처님이 아난다에게 물었다. 

“아난다, 나를 만나기 위해 멀리서 귀한 손님들이 오신 게 아닌가?”

“그렇습니다. 까삘라왓투에서 온 많은 사끼야 족 여인들이 뵙기를 청합니다. 그 가운데는 세존의 어머니 고따미와 야소다라의 어머니 빠미따도 있습니다.”

“아직도 그들이 출가를 원하는 것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렇게 해버렸습니다. 그들은 삭발하고 황색 가사를 걸쳤습니다. 오직 세존의 허락을 받기 위해 먼 길을 맨발로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합니다. 그들의 발은 부르텄고 온몸은 먼지투성이이며, 정신도 완전히 지쳐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 여인들이 우리의 상가에 들어와 수행자로 살도록 허락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부처님은 여전히 단호했다. 

“아난다, 여인들이 상가에 들어오는 것을 청하지 말라.”

아난다가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스스로 머리를 깎고 험한 길을 맨발로 걸어온 여인들입니다. 부르튼 발에서는 피가 흐르고, 때와 먼지 가득한 얼굴에는 눈물자국만 선명합니다. 세존께 간청 드립니다. 저 딱한 여인들이 상가에 들어와 수행자로 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난다, 여인들이 상가에 들어오는 것을 청하지 말라.”

아난다는 그러나 부처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거듭 애원했다. 

“세존이시여, 고따미는 젖을 먹여 당신을 길러준 어머님이십니다.”

아난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러나 부처님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부처님, 여인의 출가를 허용하다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눈물짓던 아난다가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옷깃을 바로하고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자도 수행하면 남자와 같이 수행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여자에게도 깨달음을 성취해 열반을 얻을 기회가 제공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가장 먼저 여성 아라한이 될 기회를 고따미에게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부처님은 눈을 감고 침묵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부처님께서 이윽고 고개를 들어 아난다에게 말했다.

“아난다, 이제 더 이상 여인들을 상가의 바깥에 세워둘 수 없게 되었구나. 그들도 이제 상가의 한 부분이 되게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로 가까이 살게 될 남녀 제자들을 온전하게 계도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계율을 제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인의 출가가 허락되는 실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아난다는 몹시 기뻤다. 환희에 넘친 그는 뛸 듯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는 이 열정적인 사끼야 족 여인들의 출가를 위해 자신이 맡은 역할에 스스로 기꺼워졌다. 아난다가 사끼야 족 여인들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만약 여러분들이 엄격한 계율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세존께서 여러분의 출가를 허락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런 계율 제정에 동의하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난다여. 우리들의 출가가 허락된다면 어떤 계율도 감수하겠습니다.” 

그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비구니 상가는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성립될 수 있었다. 이 날의 일을 기점으로 바야흐로 사부대중, 즉 출가대중인 비구와 비구니, 남녀 재가신자 등 4부 대중으로 이루어진 불교교단이 형성되었다. 

고따미 일행은 한 없이 기뻤다. 먼 여독으로 쌓인 피로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듯했다. 그들은 본래의 안색과 윤기를 금세 되찾았다. 기쁨에 넘친 그들은 한적한 자리로 물러나와, 인근의 물가로 가서 온 몸을 뒤덮은 먼지와 때를 씻고 가사를 빨았다. 한동안 휴식을 취한 그들은 부처님의 저녁 설법을 듣기 위해 대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이때 사끼야 족 여인들이 받아들인 계율이 ‘여덟 가지 공경의 원리’, 팔경법(八敬法)이다. 그 내용은 ‘수행녀(비구니)는 구족계를 받은 지 백 년이 되어도 방금 구족계를 받은 수행승(비구)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응대해야 한다.’를 비롯하여 ‘수행녀는 수행승이 없는 곳에서 안거해서는 안 된다.’, ‘수행녀는 보름마다 수행승의 참모임에 두 가지 원리, 즉 포살에 대한 질문과 훈계하는 자의 방문을 간청해야 한다.’, ‘수행녀는 안거를 마치면 수행승과 수행녀의 참모임에서 보고, 듣고, 추측한 세 가지 잘못에 대하여 자자(自恣)를 행해야 한다.’, ‘수행녀가 공경의 원리를 어기면 수행승과 수행녀의 참모임에서 십사일 간의 속죄를 행해야 한다.’, ‘정학녀는 이년 동안 여섯 가지 원리에 대하여 학습한 뒤에 수행승과 수행녀의 참모임에서 구족계를 청해야 한다.’, ‘수행녀들은 어떠한 이유로도 수행승들을 비웃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 ‘오늘 이후 수행녀들의 수행승들에 대한 충고의 길은 막히나, 수행승들의 수행녀들에 대한 충고의 길은 막히지 않는다.’ 등이다. 

여덟 가지 공경의 원리, 즉 팔경법은 수행녀들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어기지 않도록 공경하고, 존중하고, 숭앙하고, 존숭해야 한다는 법이다. 고따미는 이 팔경법을 받아 부처님을 스승으로 출가하여 구족계, 즉 비구니계를 받았다. 그녀의 나이 75세 때였다. 고따미와 함께 웨살리까지 찾아온 여인들도 모두 한꺼번에 구족계를 받고 비구니가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