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거룩한 진리(사성제)에 눈 뜨라(ariya saccâ na dassanaṃ) 

종교가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막아내고자 하는 노력에 기독교계가 최대 걸림돌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승려가 절에 불을 지르는 등의 볼썽사나운 일들로 인해 불교계에 대한 사회 일반의 눈총이 전에 없이 따갑습니다.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라는 자조 섞인 표현이 나온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걱정’이 ‘혐오’로 바뀔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걱정스러운 흐름은 세상을 파악하는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견해가 왜곡되었거나 틀렸다는 것이지요. 대체적으로 종교들은 영원불멸한 존재를 설명하는 것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접근을 시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초월적 힘을 가진 의지처를 바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그의 불가사의한 위신력으로 자신과 사회의 고통을 구원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중세 페스트의 창궐을 부추겼던 종교집회의 어리석음을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오늘날에도 답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잘못된 견해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파악해서 대처하지 않고 절대자나 능력자 타령을 하고 있으니 권위와 신뢰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행위가 만연한 것은 불교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다르게, 불보살님을 무엇이든 들어주는 절대적 존재로 여기게 해 매달리도록 만드는 분위기가 횡행하고 있음을 솔직히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기본적으로 세상을 바르게 보지 못하는 데서 기인합니다. 현실을 올바르게 응시해서 그 대처법을 발견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 능력은 부처님의 수행법인 위빠사나(Vipassanā) 수행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의 위(Vi)는 ‘상세하고 명확하게’의 의미이고, 빠사나(passanā)는 ‘관찰’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상세하게 관찰한다.’는 뜻이 됩니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파악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계는 결코 빛나는 것도 아니고, 행복으로 가득한 곳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현실 세계가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을 부처님께서는 늘 깨어 있음으로 직시하라(Sati)고 강조하셨습니다.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관찰하면 세상은 괴로운 일, 곤란한 일, 불만족스러운 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 보고 올바른 견해를 가질 때 현실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핵심 4성제(四聖諦)의 첫 번째가 고성제(苦聖蹄)인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올바로 인식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렇듯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세상을 현실적인 눈으로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경전을 독송하면 괴로움이 없어진다든가, 어떤 대상을 믿으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하라는 가르침인 것이지요. ‘이 세상은 괴로움이다’를 성스러운 진리로 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세상은 괴로움의 세계이며, 그 괴로움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단념하고 살자는 염세적인 삶의 방식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도성제(道聖諦), 즉 ‘팔정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김진태 교수의 역저 <반야심경의 바른 이해>에서는 사성제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성제에 대한 통찰은 개념적 사유에 의한 진리 인식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체험하여 증득된 진리이므로 기나긴 길을 거쳐야 한다.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는 철저하게 알아야 하고,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는 버려야 한다.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는 실현해야 하고,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도 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는 닦아야 한다. 모든 번뇌의 소멸은 오직 사성제에 대한 깊은 통찰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고의 진리, 즉 고성제에서 말하는 괴로움은 몸이 아프다거나 다툼을 벌인다든가, 경기가 나빠 힘들다는 따위의 일상적인 괴로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성제에서의 고(苦)는 ‘불만족’에 가깝습니다. 또한 노·병·사(老病死)도 고성제에서 말하는 괴로움입니다. 그렇다면 왜 괴로움이 있는 것일까요? 부처님께서는 그 원인을 갈애(渴愛)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애는 충족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래서 갈애가 쌓이면 괴로워지는 것[集聖諦]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갈애가 사라진 상태를 행복한 경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불만이나 괴로움이 모두 사라진 경지[滅聖諦], 이것을 멸(滅), 즉 열반이라고 부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어 멸, 즉 열반의 경지를 성취하기 위해 길을 제시하십니다. 바로 열반을 증득하고 해탈의 실현으로 이끄는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길(八正道)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늘 고귀한 진리와 길, 즉 사성제와 팔정도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번다한 화제가 불가피하게 등장하겠지만 의식적으로라도 ‘견해의 청정’으로 가는 데 도움이 되는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이지요.   

어느 날 부처님께서 500명의 비구들과 함께 시골길을 걸어 유행한 후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도착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처소 간다꾸띠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셨고, 함께 유행을 다녀온 비구들은 강당에 앉아 걸어왔던 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마을로 가던 길은 부드러웠지. 어떤 마을로 가던 길은 매우 거칠었어. 어떤 마을로 가던 길은 자갈로 덮여 있었지. 어떤 마을로 가던 길은 자갈이 없었어.” 

비구들이 걸었던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 부처님께서 그들이 아라한과를 성취할 인연이 무르익었음을 아시고 강당으로 들어가 준비된 자리에 앉은 후 물었습니다. 

“비구들이여, 여기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가?”

비구들이 유행하면서 걸었던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대답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그 길은 우리의 관심사하고는 거리가 먼 길이다. 비구라면 마땅히 고귀한 길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탈을 얻을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길 중에서 팔정도가 으뜸이요,

진리 중에서 사성제가 으뜸이다. 

법 중에서 탐욕 없음(열반)이 으뜸이요,

두 발 가진 중생들 중에는 

법안이 열린 자가 으뜸이다. 

길은 오직 하나뿐

견해의 청정(見淸淨)으로 가는 데는

다른 길은 없나니

그대여!

마땅히 이 길을 가라. 

그러면 마라를 당황하게 하리라. 

이 길을 간다면 

괴로움의 끝에 이르리라. 

번뇌의 가시를 뽑는 이 길을 깨닫고

나는 그대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대들은 힘써 노력하라. 

나 여래는 단지 길을 보여줄 뿐.

누구든지 이 길을 가면

마라의 얽매임에서 벗어나리라. 

                            -무념 스님 저 <법구경 주석서>

이 게송을 들은 500명의 비구들은 모두 아라한과를 성취했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게송을 듣고 아라한과를 성취한 500명의 비구들처럼, 사성제의 진리를 삶 속에서 완전하게 실천한다면 괴로움을 소멸하고, 궁극적으로 최고의 행복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현상은 조건에 의지해서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조건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기 마련이고, 괴로움의 속성이 있어서 큰 의미나 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이므로 취착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작용까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작용은 있되 실체가 없는 것이지요. 이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 고의 진리, 즉 고성제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바르게 아는 것, 마음의 작용을 바르게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음작용이 탐·진·치를 바탕으로 하면 괴로움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확연하게 아는 것이 집성제입니다. 탐·진·치를 벗어난 마음이 바탕이 될 때 괴로움의 소멸이 이루어집니다. 괴로움이 소멸되는 길로 이끄는 법이 바로 팔정도, 즉 도성제로 유익한 법입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저절로 이루어질 리 만무합니다. 나눔으로 보시의 공덕을 쌓고, 건전한 몸과 마음을 확립하고, 사성제의 진리를 확실하게 알아야 탐·진·치가 완전하게 소멸되어 마침내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성제에 눈을 뜨는 것이 최고의 행복으로 가는 지침일 수밖에 없는 연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