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청정범행을 실천하라(brahmacariyā)
집 앞 매화꽃들이 다 지고 뒤뜰 복숭아꽃이 한창입니다. 향기에는 차이가 있지만 저마다 아름다움과 매력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시차를 두고 피고 지는 봄꽃의 향연을 즐기노라면 시나브로 봄이 무르익습니다. 며칠 전까지는 매화 향기에 취해 살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마당에 내려서면 상큼한 매화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곤 했습니다. 꽃샘 바람결 사이에 실려 스리슬쩍 스쳐 지나가는 향기에 취하노라면 저절로 행복했었지요. 몇 분 향기에 취하노라면 슬그머니 욕망이 일어납니다. 좀 더 향기를 누려야겠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매화나무로 향하는 것이지요. 매화꽃송이에 코를 들이대고 향기를 만끽하곤 했습니다. 백매꽃 향기를 실컷 맡다가 이내 홍매꽃 향기도 맡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나고, 발걸음은 홍매나무로 향합니다. 홍매꽃 향기에 취하는 시간도 잠시, 다시 나의 발걸음은 청매나무로 옮겨집니다. ‘매화향기는 역시 청매향이지!’라고 뇌까리며 청매꽃에 코를 박습니다.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자극적인 향기를 취하려는 욕망에 부지불식간 나의 몸과 마음이 휘둘린 것입니다.
사진. 이학종
욕망은 이처럼 끝이 없습니다. 충족되지 않는 것의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욕망’일 것입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것처럼, 작은 욕망이 걷잡을 수 없는 욕망으로 비화하는 일은 우리 주위에 비일비재합니다. 욕망이란 이처럼 제어가 어려운 것입니다. 오죽하면 부처님께서 욕망을 ‘마라(魔羅)’라고 표현했겠습니까. 마라는 사람의 마음을 홀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고 수행을 방해하여 악한 길로 유혹하는 나쁜 귀신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욕망은 욕계에 사는 중생들에게는 원죄처럼 주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 중에 욕계(欲界)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욕계는 색욕(色欲), 식욕(食欲) 재욕(財欲) 등의 욕망들이 지배하는 세계입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 더 자극적이고 맛난 것을 먹고자 하는 욕망, 끝없이 재물을 불리고자 하는 욕망은 욕계에 사는 중생에게는 솔직히 제어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부처님께서는 행복해지고 싶다면 욕망을 극복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욕망은 파멸의 구렁텅이로 이끄는, 마땅히 제거해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런데 그게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욕망은 기본적으로 달콤하고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취하는 것에 대한 과보는 크고도 무섭습니다. 감각적 욕망은 어떤 대상을 취착하고자 하는 것인데, 대상은 언제나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한된 대상을 얻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경쟁하다 보니, 경쟁에서 졌거나 충족하지 못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분노와 좌절로 인한 괴로움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욕망을 극복하지 않고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가르침을 고깃덩어리를 물고 날아가는 새에 비유해 설명하십니다. 고깃덩어리를 물고 날아가는 새를 발견한 매가 고깃덩어리를 빼앗기 위해 새를 쫓아가 공격을 가하는데, 맛난 고깃덩어리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새는 온몸이 매의 공격으로 부서지는데도 끝내 고깃덩어리를 놓지 않는다는 비유입니다. 고깃덩어리를 먹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포기하지 않은 대가는 만신창이가 된 몸뚱어리인 것이지요. 이렇듯 욕망은 포기하거나 절제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욕망을 갖고 행복에 이른다는 것은 꿈에 지나지 않으며, 욕망은 반드시 절제하고 멀리해야 할 대상이라는 교훈이 이 가르침에 담겨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청정범행(淸淨梵行)을 실천하라는 것은 욕망 가운데 특히 색욕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범행(梵行)이란 범천에 사는 하늘 사람들의 행동을 말하는데, 범천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 즉 성행위 자체가 없는 세계입니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범천의 사람들처럼 성적 욕망을 완전히 떠나야 한다는 것이지요. 범행을 ‘완전한 순결’ 또는 ‘완전한 고상함’(complete chastity)으로 해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에 “청정범행 갈고닦아~”라는 문장이 들어 있고, <선림보훈(禪林寶訓)>에서 오조법연 선사의 “도를 배우는 이들이 명성을 드날리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범행이 청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문장 역시 범행이, 특히 출가수행자에게 얼마나 중차대한 덕목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괴로움과 재난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욕망을 소멸하고 최상의 행복인 열반을 성취하도록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길은 8정도(八正道)입니다. 8정도는 싯다르타가 부처가 된 길이고, 과거의 부처님들이 열반과 해탈을 이룬 그 길입니다. 그래서 8정도를 ‘붓다의 옛길’이라고도 부릅니다. 욕계 중생이 좇는 오욕락(식욕, 성욕, 수면욕, 명예욕, 물욕) 가운데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욕망이 성행위, 즉 성욕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범행은 색욕을 벗어난 수행자의 행을 의미합니다.
욕망에서 비롯된 괴로움과 재난에서 완전하게 벗어나기 위한 수행법으로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4념처·4정진·4여의족·5근·5력·7각지·8정도 등의 일곱 가지 수행 방법을 제시합니다. 제시된 수행법들을 모두 합치면 서른일곱 가지가 되므로 이를 37조도(三十七助道)라고도 부릅니다. 이 길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성취한 길이고, 수행자들이 깨닫도록 제시한 열반과 해탈의 길입니다. 4념처(四念處)는 팔정도의 일곱 번째 수행법인 정념 중 위빠사나 수행법을 말합니다.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 등 네 대상을 알아차리는 수행법이기 때문에 4념처 수행이라고도 합니다. 4정근(四正勤, 4정진이라고도 함)은 이미 일어난 악을 없애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은 일어나지 않게 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좋은 일을 일어나게 하고, 이미 일어난 좋은 일을 보호·유지·발전시키는 것입니다. 4여의족(四如意足)은 욕(欲)여의족, 정진여의족, 심(心)여의족, 사유(思惟)여의족을 말합니다. 여의족은 어떤 덕목을 뜻하는 바대로(如意)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5근(五根)과 5력(五力)은 신(信)·정진·염(念)·정(定)·혜(慧) 등 다섯 덕목에 바탕을 의미하는 근(根)과 힘을 의미하는 역(力)을 붙인 것입니다. 5근을 잘 성숙시켜가는 힘이 5력인입니다. 7각지(七覺支)는 한 찰나 전의 기억을 잘 알아차림(念覺支, 사띠)을 비롯하여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진실한 법을 잘 가려냄(擇法覺支), 열심히 노력함(精進覺支), 진실한 가르침을 실천하여 기쁨이 생겨남(喜覺支), 몸과 마음이 쾌적해짐(輕安覺支), 마음을 한곳에 집중함(定覺支), 어떤 마음 상태에도 담담하고 평정해짐(捨覺支) 등을 말합니다.
청정범행은 마음을 정화하여 오욕락에서 벗어나는 행위이며, 이것은 곧바로 8정도를 잘 닦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8정도는 바른 견해((sammādiṭṭhi, 正見)를 바탕으로 궁극적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바른 견해를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또 바른 견해를 바탕으로 사유하고, 말하며, 행동하고, 생계를 유지하며, 정진하고, 대상을 알아차리며, 삼매를 닦고, 정진하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고, 어리석으면 집착이 일어나게 됩니다. 집착은 고통의 원인이고 이것을 극복하여 궁극의 행복에 이르는 것이 도성제, 즉 팔정도와 멸성제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청정범행을 닦는다는 것, 청정범행을 실천한다는 것은 4성제 진리를 각자의 삶 속에 적용하라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부처님의 수행법인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테라와다 불교권에서는 도과(道果)를 성취하는, 중생에서 성인의 흐름에 들어가는 주요한 과정으로 일곱 가지 청정의 구족을 이야기합니다. 이른바 7청정(七淸淨)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행의 첫 단계는 수지 한 계율을 청정하게 보존하는 것이라는 의미의 ‘계청정’, 삼매의 힘을 키워 마음청정에 이르라는 ‘심청정’, 자아라는 그릇된 견해에서 벗어나라는 ‘견해청정’, 과거 생에 내가 살았을까? 따위의 원인이 없다고 여기는 사견에서 벗어나라는 ‘의심극복청정’, 광명이나 희열 등 눈앞에 펼쳐진 현상을 도와 과의 단계로 착각하는 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도비도지견청정(도와 도 아님에 대한 지혜 및 견해의 청정)’, 도 닦음에 대한 지혜와 견해의 청정을 의미하는 ‘행도지견청정’, 마지막으로 ‘지혜와 견해의 청정’이 그것입니다.
사진. 이학종
테라와다 불교는 물론 대승불교에서도 공히 불교를 정의하는 성구로 인정하는 <법구경>의 칠불통계(七佛通戒)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에서도 핵심은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자정기의)’입니다. 청정한 마음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드러내준 것이지요. 이 경구는 ‘악한 것은 마음을 혼탁하게 하는 것’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피해와 상처를 주는 것만 악한 일이 아니고 스스로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 일 모두가 악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모름지기 지혜는 맑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순간 혼탁해지더라도 얼른 다시 맑아질 수 있는 그 마음자리에서 지혜가 솟아날 수 있습니다. 청정심에서 발현하는 지혜의 힘으로 살아갈 때 건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청정심(淸淨心)이 곧 부처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