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정윤경
죄업을 깨끗이 하고 싶다면
정찬주(소설가)
인도 힌두의 성지 바라나시에 있는
강가강을 영어식으로는 갠지스강이라고 한다.
강가는 어머니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니까 강가강은 인도 사람들에게 어머니 강이다.
어머니는 자비와 사랑의 화신이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창조했다는 속담이 있다.
어머니는 신의 대리인인 셈이다.
어머니는 자식의 어떤 허물이라도 다 덮어준다.
자식이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어머니만은 다 용서해 준다.
인도에서 사두(힌두교 스승)에게 들은 말이다.
힌두교 신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강가강에 들어가
몸을 씻으면 지은 죄가 소멸된다고 믿는다고 한다.
사후에도 시신을 강물에 적신 뒤 화장하여 재를 뿌리면
살아생전에 지은 죄가 다 소멸된다고 한다.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도 바라문들은 날마다 강물에 들어가
그런 멸죄의식을 아무런 의심 없이 치렀으니
수천 년도 더 된 힌두교 신자들의 전통적인 의식인 셈이다.
아마도 강을 종교적으로 어머니와 연관시켰기 때문에
그러한 의식이 생겼으리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부처님은
정견(正見)으로 통찰하여 그러한 멸죄의식을 부정하신 바 있다.
초기경전에 여러 군데 보인다.
부처님이 꼬살라국 순다리까강 주변 작은 숲속에 머물 때였다.
아마도 순다리까강은 강가강의 한 지류가 아닌가 싶다.
어느 날 강가 움막에 사는 한 늙은 바라문이 부처님을 찾아와
얘기를 나누고 간 적이 있었다.
그 무렵의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지 오래 되지 않았으므로
바라문들이 잘 알아보지 못했던 것 같다.
늙은 바라문은 부처님에게 다가와 자기와 함께
순다리까강에 들어가 목욕을 하자고 권유했다.
부처님은 그의 제의를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그에게
강에서 목욕을 하면 무슨 좋은 일이 있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바라문이 말했다.
“사문이여, 순다리까강은 구원의 강이요, 상서로운 강입니다.
만약 누구나 여기서 목욕하면 모든 죄업이 다 사라지게 될 겁니다.”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설하여 늙은 바라문을 놀라게 했다.
“어떤 강물도 사람의 죄업을 깨끗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 강물에 목욕을 해서 죄업이 사라진다면
그 강물 속의 물고기는 죄업이 하나도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사람이 물고기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겠소.
죄업을 깨끗이 하고 싶다면 오직 청정한 행을 닦는 것이 옳습니다.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말 것이며,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 것이며,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 것이며,
남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우물물에 목욕해도 깨끗할 터이므로
굳이 강에 들어가 목욕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청정한 행을 닦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자주 강에 들어가서 목욕한다 해도
죄업을 깨끗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 의식에도 물을 성수라 하여 중요시하고 있다.
물에 씻는 것을 세례라 하고, 물에 잠기는 것을 침례라 한다.
모두 힌두교의 멸죄의식과 흡사한 점이 있지 않나 여겨진다.
물론 기독교가 말하는 물은 말씀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당시 바라문이 지배하는 시대에
보수적인 통념을 깨고서 물로서는 그 어떤 죄업도
씻을 수 없다고 설했으니 대단히 용기 있고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때문에 2년 동안 인도 여행이 늦어지고 있다.
인도를 간다면 예전과 같이 바라나시를 먼저 들를 것이다.
그곳에서는 동쪽으로 난 길로 가면 반드시 강가강을 만난다.
새벽 일찍 일어나 강가강으로 나가면 일출 장엄을 볼 수 있다.
몇 년 전이던가. 새벽에 강가강 모래밭에서 기다리다가 보았던
핏덩어리 같은 아침해가 바로 나에게는 관자재보살 같았던 것이다.
마주치는 순간 내 안의 어둠 같은 것을 행복으로 바꾸어주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