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선지식을 친견하라(samanānañ ca dassanaṃ)
시끄럽고 복잡다단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정신을 가다듬고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이 요지경 속일수록 산골에 살며 주변에서 갖가지 풀꽃들이 하루가 다르게 돋아나는 모습을 보며 사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꼭 챙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가급적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웬만하면 ‘그렇구나!’ 하고 넘기는 것이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는 길입니다. 뭔가에 이끌리고, 정신이 팔리고, 생각 없이 움직이다 보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며 살게 마련입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정신 줄을 놓고 산다.’고 하지요. 조금 더 과하게 표현한다면 ‘미친 정신(狂)’으로 세상을 산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일단 마음 다스리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에서 시시각각 일어나는 갖가지 현상들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공부와 훈련은 혼자서 해나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솔직히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럴 때 선지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위를 물색하여 훌륭한 출가 수행자를 찾고, 시간을 내어 찾아가 뵙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은 공덕이 많아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태어났더라면 부처님을 찾아뵈면 간단한 일이겠지만 그런 선연을 갖지 못했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고 실천하는 선지식을 대신 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지식이 반드시 출가자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속세의 모든 인연을 접고 오직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 출가한 분들만 한 스승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경주남산 탑곡 마애불상군(사진. 염정우)
불전에도 제정신을 놓아버리고, 망상에 휘둘리는 사람이 부처님을 친견하면 나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핵심 논서인 <대지도론> 제8권의 내용을 살펴볼까요.
“어떤 사람은 몹시 화가 났는데 스스로 억제할 수 없어서 크게 미치게 된다. 어떤 우치한 사람은 사악한 까닭에 재를 몸에 바르고 머리칼을 뽑고 발가벗고 미쳐 날뛰면서 똥을 먹는다. 어떤 사람은 풍병ㆍ열병ㆍ중병 등에 걸려 미친다. 어떤 사람은 악귀가 씌어서 미치고, 어떤 사람은 어리석게도 빗물을 마시고 미친다. 이처럼 정신을 잃어버리는 갖가지 경우를 미쳤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부처님을 뵙게 되는 까닭에 광증이 낫게 되는 것이다.
미친 것[狂]이 곧 어지러움[亂]이거늘 어찌하여 구별하는가?
어떤 사람은 미치지 않았더라도 마음이 많이 흐트러지고 어지러운 것이 마치 원숭이가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과 같나니, 이러한 것을 어지러운 마음이라 한다. 또한 지나치게 일에 바쁘고 마음이 일에 집착되어 있으면 곧 심력(心力)을 잃고 도(道)를 감당해 내기 어렵게 된다.
어지러운 마음에는 어떠한 인연이 있는가?
해탈에 도움이 되는 좋은 마음이 차츰 얇아지고 해탈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지를 따르나니, 이를 마음의 어지러움이라 한다. 또한 이런 사람은 무상함을 관찰하거나 죽음의 모습을 관찰하지 못하고 세상의 공함을 관찰하지 못한 채 수명에 애착하고 갖가지 사무를 계교하여 갖가지로 흩어져 달리나니, 그러므로 마음이 어지럽다. 또한 불법 안에서 내면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고 밖의 즐거움만을 구하여 즐거움의 원인을 따르고 쫓나니, 그러므로 마음이 어지럽다.
이렇게 어지러운 사람은 부처님을 뵙게 됨으로써 그 마음이 집중된다.” -<대지도론> 제8권 중에서
이렇게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도 부처님을 친견하면 마음의 산란함을 벗어나 집중할 수 있게 되고, 차츰 광증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대지도론>은 언급합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이 광증에 걸려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제정신을 놓아버려 실성한 사람은 그 증세가 겉으로도 드러나게 마련이어서 속히 조치를 취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심각한 광증은 주변 사람들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광증입니다. <대지도론>에서는 그릇된 방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삿된 종교지도자들의 광신적 행동이 더 심각한 광증이라는 것이지요.
부처님께서 스물아홉 번째 행복 지침으로 ‘출가 수행자를 친견할 것(Sight of the Samanas.)’을 제시한 이유는 증세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기 전에 솔선해서 ‘참 수행자들을 친견하라(Sight of a True Monk.)’는 뜻입니다. 그것도 가능하면 정기적으로 자주 시간을 내어 찾아뵈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친견하고자 하는 대상이 과연 참 수행자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간단치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숫타니파타>에 거짓 수행자를 경계하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비록 집을 떠나 출가의 몸이 되었을지라도. 만일 거친 말을 하고 남을 괴롭히기 좋아하며 짐승 같은 짓을 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사악해지고 더러워질 것이다. 논쟁을 좋아하고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 수행자는, 눈 뜬 사람의 설법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는 무지에 이끌려 수양을 쌓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번뇌가 지옥으로 가는 길임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수행자는 고난의 장소에 태어나고 사람의 모태에서 다른 모태로, 암흑에서 암흑으로 전생하며 죽은 후에도 고통을 받게 된다. 마치 똥구덩이가 세월이 지나면 똥으로 가득 차듯이, 불결한 사람은 깨끗해지기가 어렵다.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은 출가 수행자는, 사실은 집에 기대고 있는 사람이고, 빗나간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릇된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나쁜 곳에 있는 사람인 줄 알아라.” -<숫타니파타>
참된 수행자는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참된 수행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시시비비를 따지려 들지 않습니다. 수행자는 오직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따질 뿐이지요. 또한 참 수행자는 온화하고 부드럽습니다. 마치 너그러운 할아버지처럼 사람들을 늘 편하게 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의지할 수 있고 기댈 수 있으며, 힘과 용기를 갖추고 있어 절로 존경하게 만듭니다. 아집이 없으며, 비판을 받아도 싫다는 내색을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당황하게 하거나 걱정하지 않게 하고, 다른 사람의 평온을 방해하지 않으며, 사람의 존엄을 지켜줍니다. 음식과 옷가지, 잠자리를 따지지 않고, 좋아하는 것이 있어도 집착하거나 연연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자애롭게 대하고, 어느 누구와 같이 있어도 부딪침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데, 특히 그의 성장과 행복에 관심을 갖습니다. 결론적으로 바다처럼 모든 것을 품고, 하늘처럼 모든 것을 허용하며, 대지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태양처럼 모두에게 베푸는 수행자가 참 수행자인 것이지요.
출가수행자의 필독서로 널리 알려진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에도 참된 수행자에 대한 기준이 잘 제시되어 있습니다.
“마음속의 애욕을 모두 여윈 수행자를 사문이라 하고, 세상일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을 출가라 한다. 도를 닦는 수행자가 호화스러운 비단옷을 입는 것은 개에게 코끼리 가죽을 입힌 것과 같이 우스꽝스러운 일이며, 수행자가 이성에게 연정을 품는 것은 고슴도치가 쥐구멍에 든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비록 재주가 있더라도 쾌락의 유혹이 가깝게 있는 세속에 사는 사람에게는 부처님께서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내시고, 설사 도를 닦는 힘이 모자라더라도 산사에서 수행하는 사람은 모든 성현들께서 그를 기쁘게 여긴다. 재주와 학문이 있더라도 계율을 실천하지 않으면 보배가 있는 곳으로 인도해도 길을 떠나지 않는 것과 같고, 비록 부지런하지만 지혜가 없는 사람은 목적지가 동쪽인데 서쪽을 향해 나아가는 것과 같다. 지혜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은 쌀로 밥을 짓는 것과 같고,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행위는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다.” -<발심수행장> 중에서
경주남산 탑곡 마애불상군(사진. 염정우)
바람 앞에 마구 흔들리는 깃발처럼 범부중생의 마음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온갖 경계들 앞에서 마구 흔들립니다. 힘겹고 괴로운 경계가 다가올 때는 울고불고 괴로워하며 답답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즐겁고 행복한 경계가 다가올 때는 웃고 즐거워하며 한없이 행복에 겨워합니다. 그런데 깃발은 바람에 마구 흔들리지만 깃발을 지탱하고 있는 깃대는 늘 그 자리에서 고요합니다. 그러나 깃대가 대지에 얕게 꽂혀 있다면 거센 바람 앞에서 뿌리가 뽑혀 나가고 말 것입니다.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마음의 중심이 단단하게 잡혀 있으면 그 어떤 외부의 경계가 다가와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수행자의 맑고 당당한 마음입니다. 이렇듯 수행자의 경계는 어떤 경계와 마주할 때 여실하게 드러나는 법입니다.
때때로 선지식을 친견하려면 먼저 선지식, 즉 참 수행자를 찾아내는 안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망갈라숫따(행복경)>의 시작을 “어리석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섬기며, 존경받을만한 분을 존경하라.”는 것으로 정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