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정윤경
매화꽃 향기로 귀를 씻을 수 있을까?
정찬주(소설가)
텃밭에서 20년쯤 자란 매화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다.
낙향해서 심었으니 나와 함께 세월을 보낸 매화나무이다.
석양빛이 함박눈처럼 투과하여 마치 설화가 핀 듯 화사하다.
매화꽃처럼 봄을 알리는 꽃도 드물 듯싶다.
중국 어느 비구니 수행자가 봄을 찾으러 산에 들어
온종일 헤매다가 결국 암자로 돌아와서 뜰에 핀
매화꽃을 보고 봄맞이한다는 우화 같은 시가 떠오른다.
나 역시 무심코 텃밭에 핀 매화꽃을 보고
새삼 봄날이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대구에서 한 작곡가가 찾아왔다가 갔다.
작년에 산방을 방문했다가 나를 만나지 못했던 분이다.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사랑방 처마 밑에 걸린 무염산방(無染山房)과
벽록당(檗綠堂) 편액에 대해서 물었다.
“어느 분의 글씨입니까?”
“무염산방은 법정 스님, 벽록당은 정영채 선생님의 글씨입니다.”
“둘 다 사랑방 이름입니까?”
“아닙니다. 사랑방 이름은 무염산방이고,
벽록당은 나중에 남향집을 지으면 당호로 사용할 생각입니다.
제 법명은 무염이고, 수불 스님께서 벽록이란 호를 지어주셨습니다.”
“작가님은 법명에다 호까지 있으니 참 복이 많으신 분입니다.”
나는 차담으로 수불 스님이 지어주신 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안국선원 서울 신도들과 함께 중국 선찰을 순례할 때였다.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황벽선사 묘탑에 이르렀을 때
수불 스님께서 단박에 벽록이라는 호를 지어주셨던 것이다.
벽(檗)은 황벽나무 벽자이고, 록(綠)은 푸를 녹자이다.
“황벽 선사처럼 푸른 정신의 작가가 되라는 것 같습니다.”
작곡가는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어린 시절 섬진강을 보고 자랐습니다.
지금도 고향으로 돌아가 섬진강 강물이나 강가의 매화꽃,
노을 같은 자연을 무심히 보고 있으면
문득 제 마음과 하나가 됩니다.
저는 그때의 제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그가 또 물었다.
“왜 이런 산중에 집을 지어 살고 있습니까.”
“인도 바라문에게는 여생을 자연 속에서 사는 전통이 있습니다.
임간기(林間期) 혹은 임서기(林棲期)라고 하는데
가족이나 이웃에게 사회적인 의무를 다한 뒤,
자연을 벗 삼고 스승 삼아 사는 기간을 뜻합니다.
바라문들의 삶에 공감해서 산중으로 내려와 살고 있습니다.”
작곡가는 자신도 도회지를 떠나 산중에서 살고 싶지만
아내가 반대하여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웃었다.
짐작하건대 나 역시 젊은 그의 외모로 보아서 아내와 자식,
사회에 봉사해야 할 나이인 것 같아서 더 기다리라고 말했다.
출가한 수행자라면 모르겠으나 이미 인연 맺은 가족에게
책임과 의무를 회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작곡가가 간 뒤, 한동안 텃밭의 매화꽃을 보면서
향기로도 귀를 씻을 수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문향(聞香), 즉 ‘향기를 듣는다.’라는 말이 있으니 가능할 듯했다.
향기로 귀속을 씻는다면 무엇부터 씻을까?
나를 비난하는 소리보다 칭찬하는 소리들을 먼저 씻고 싶다.
아상이 없어져야만 ‘거짓 나’에서 ‘본래의 나’로 돌아갈 테니까.
사실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남도 산중으로 낙향한 까닭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살았던 자주적이지 못한 ‘거짓 나’를 버리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본래의 나’로 살고 싶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