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정윤경
사리불과 목련의 우정이 부럽다
정찬주(소설가)
초겨울이 되면 인도가 절로 생각난다.
인도는 11월부터 2월까지의 건기(乾期)가 여행하기 좋다.
3월부터 혹서기이고 여름 우기(雨期)는 적응하기가 힘든 것이다.
인도를 여러 번 갔지만 또 마음이 동한다.
처음에는 부처님 성지를 순례하는 감동에 젖어
부처님이 성지에 남긴 흔적을 좇아 참배하고 다녔지만
나중에는 부처님의 10대 제자들의 그림자까지 만날 수 있어
신심이 몹시 고양되는 것을 느꼈다.
특히 초기교단의 중심적인 인물이었던 사리불과 목련존자의
고향을 지나칠 때는 무언가 아련해지고 코끝이 찡했다.
죽림정사가 있는 라즈기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날란다대학 터엔
지금도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사리불 탑이 남아 있다.
그곳에 사리불 탑이 있게 된 이유는 사리불 고향이 날란다 마을이고
사리불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반야심경>에 등장하는 사리자(舍利子)가 바로 사리불이다.
원어는 샤리푸트라(Sariputra)이다. 사리불은 부처님 10대 제자 중에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내가 사리불과 목련존자에게 감동한 까닭이 있다.
진리의 길을 걸었던 두 아라한은 진실하고 절절한 우정을,
무엇이 진정한 도반(道伴)인지, 영혼의 친구인지,
뿐만 아니라 죽음까지도 함께 여실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이웃 마을에서 살던 그들은 출가도 함께 하여
부처님의 수승한 10대 제자가 되었고,
죽음도 부처님의 허락을 받은 뒤 같이 죽었다.
이 정도는 돼야 영혼의 친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부처님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도반이 아니라면
차라리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고 했다.
성철 스님도 송광사를 떠나면서 뒤따르려는 일타스님에게
‘중이 가는 길은 홀로 가는 길’이라고 하며 표표히 혼자 떠났다.
사리불은 마가다국 수도 라자가하(王舍城; 라즈기르)에서 가까운
날란다 마을에서 부유한 바라문의 큰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이름은 우파티샤였으나
어머니 이름인 사리를 따서 사리불(舍利弗)로 불렸다.
사리불은 여덟 형제 중에서 가장 총명했다.
인도 고대 성전인 베다를 모두 익혔고 예술적 재능도 빼어났다.
그런데 사리불이 살던 이웃 마을 코리카에 한 소년이 있었는데,
그도 역시 여러 학문에 통달하여 어른들의 칭찬을 받곤 했다.
코리타 소년은 훗날 부처님 10대 제자 중에 신통제일 목련이 되었다.
어린 사리불과 목련은 의기투합하여 친구로 지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라자가하 근교의 산정에서 지내는
바라문교의 산정제(山頂祭)를 구경했다.
사람들은 밤새 노래하고 광란의 춤을 추었다.
어린 사리불과 목련도 함께 춤을 추다가 문득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이 미친 듯 노래하고 춤추지만 백 년 뒤에도 저럴 수 있을까.’
백 년 뒤에도 살아남아 노래하고 춤출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갑자기 어린 사리불과 목련은 무상함을 절감했다.
사리불은 무상함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다가 출가를 결심했다.
집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간청했다. 그러나 부모는 바라문 가문을 잇고
집안의 제사를 지낼 책임이 있다면서 거절했다.
그러나 사리불은 일주일간의 단식 끝에 출가를 허락받고 말았다.
목련도 사리불처럼 부모를 설득하여 출가했다.
사리불은 처음에 회의론자인 산자야의 제자가 되었으나
7일 만에 스승의 경지에 올라 또 다른 스승을 찾아 나섰다.
이윽고 사리불의 눈(法眼)을 뜨게 한 사람은
부처님의 다섯 비구 가운데 한 사람인 앗사지(馬勝)였다.
사리불은 앗사지에게 부처님이 설한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듣고는
죽림정사로 가서 목련과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두 사람은 부처님의 신뢰 속에서 제자들 가운데
핵심적인 인물이 되어 교단을 지키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목련은 집장외도(執杖外道)들에게
목숨을 위협받을 정도로 심한 박해를 받았다.
그들이 휘두른 몽둥이에 뼈가 부러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사리불이 드러누운 목련을 찾아가 물었다.
“벗이여, 그대는 신통제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왜 몽둥이를 휘두르는
외도의 무리를 피하지 않았는가.”
“과보를 어찌 피하겠나. 나는 전생에 부모님을 괴롭힌 적이 있다네.
그 과보를 받았을 뿐이네.”
사리불이 보기에 목련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리불은 도반인 목련을 먼저 보낼 수 없었으므로 말했다.
“우리는 ‘완전하게 평안한 마음’을 얻으려고
함께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지.
나와 그대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제 부처님의 허락을 받아 같이 입적하는 것이 어떤가.”
사리불은 부처님을 찾아가 목련과 함께 입적하겠다고 간청했다.
부처님은 그들에게 세상의 인연이 다했음을 알고 허락했다.
그리하여 사리불과 목련은 각자 고향 마을로 돌아가
친척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고는 눈을 감았다.
자신의 죽음까지도 스승에게 허락을 받았던 제자들,
서로를 너무도 사랑하므로 죽음까지도 함께 했던 사리불과 목련.
부처님께서 수많은 제자들 가운데서
유독 사리불에게 <반야심경>을 설한 까닭도
그의 지고지순한 마음에 대한 보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부처님의 여러 성지 중에서 유독 상카시아가 떠오른다.
부처님이 도리천으로 올라가 어머니 마야부인에게 불법을 설하고
내려왔다는 곳이다. 지금도 그곳에는 석가족 후예들이 살고 있다.
목련이 사리불에게 부처님께서 상카시아로 오실 것 같다고 조언하자,
사리불은 미리 그곳으로 가서 무리를 지어 정진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부처님은 도리천에서 상카시아로 내려왔는지도 모른다.
상카시아에서 만난 석가족 마을 자스라즈푸르 사람들,
내게 찬불가 CD를 선물한 소녀가수 비나,
자애롭게 생긴 마을 절의 담마팔 주지 스님 등도 잘 있는지 궁금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