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담마(가르침) 실천에 게으르지 말라.
신축년(辛丑年) 새해 첫 달을 맞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절반이 지나갑니다. 개인적으로는 환갑이 되는 해를 맞았으니 의미가 각별합니다. 아들의 결혼식이 코앞으로 다가와 몸과 마음이 다소 바쁘다는 핑계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마음속에 담아둔 계획들이 벌써 흔들리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하루 두 시간은 앉음수행(坐禪)과 걸음수행(行禪)을 하리라는 다짐도, 올해에는 반드시 합격하리라 계획한 자격시험 준비도 부지불식간 느슨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독하게 마음을 먹지 않는 한, 연초에 세운 계획이나 좌우명 등을 실천하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담마(Dhamma),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의 기준으로 삶는 것’이 매우 중요한 행복 지침이라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지침이나 좌우명이 아무리 거창하고 훌륭해도 올바로 실천하지 않으면 별무소용(別無所用)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나름의 계획을 세웁니다. 올해는 열심히 공부해서 반드시 목표로 한 시험에 합격하겠다, 담배나 술을 끊고야 말겠다는 등의 다양한 목표를 정해놓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기에 부처님은 담마를 삶의 기준으로 삶되, 실천에 게으르지 않아야 함을 반복해 강조하십니다. 바른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에 게으르지 않아야 하고(Non-recklessness in the Dhamma.), 공덕을 짓는 선한 행위(선업)를 하는 것에 방일하지 않아야 함(Steadfastness in virtue.)을 간곡하게 당부하고 있는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행복한 삶으로 가는 스물한 번째의 지침, ‘담마의 실천에 게으르지 말라.(Appamādo ca dhammēsu)’입니다.
부처님께서 열심히 정진하는 비구와 게으른 비구를 격려하고 훈계하는 이야기가 <법구경주석서(Dhammapada Aṭṭakathā)>에 나옵니다. 이야기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부처님께서 제따와나(기원정사)에 계실 때 두 비구에게 수행 주제를 주고 정진을 당부했다. 두 비구는 수행 주제를 들고 숲속의 사원으로 들어갔다. 한 비구는 그곳의 사미, 행자들과 어울려 잡담에 열을 올렸다. 다른 비구는 수행에 열중했다. 어느 날 부지런한 비구가 잡담 중인 비구에게 충고했다.
“벗이여, 수행 주제에 집중하지 않고 방일하게 살아가는 비구는 악처가 곧 자기 집이 될 것입니다. 세존의 가르침은 형식적인 수행이 아닌 정진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게으른 비구는 도반의 충고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열심히 정진하는 비구는 하는 수없이 홀로 사띠에 집중하며 정진의 고삐를 죄었다. 초저녁에는 발과 몸의 움직임에 마음을 챙기는 수행에 집중하고, 한밤중에는 방에 들어가 쉬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수행에 매진했다. 이렇게 열심히 정진한 끝에 부지런한 비구는 오래지 않아 사무애해(四無碍解)를 갖춘 아라한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부지런한 비구의 모습이 게으른 비구에게는 방에서 잠이나 자는 것으로 여겨졌다. 게으른 비구는 여전히 여섯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대상에 전혀 마음을 집중하지 않고 다른 일로 시간을 때우며 지냈다. 이윽고 안거가 끝나자 두 비구는 제따와나로 부처님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부처님은 두 비구에게 안거 기간 동안 정진을 잘 했는지를 물었다.
“비구들이여, 그동안 둘 다 주의 깊게 열심히 수행에 매진하여 출가자의 목표에 도달했으리라 믿는다.”
부처님의 말씀에 게으른 비구가 부지런한 비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어떻게 이 비구가 주의 깊게 생활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여기를 떠나는 순간부터 줄곧 방에 드러누워 잠만 잤을 뿐입니다.”
“그럼 너는 어찌했느냐?”
“부처님이시여, 저는 아침부터 땔감을 주워 모아서 화로에 숯불을 피웠습니다. 저녁에는 화롯가에 앉아 몸을 따뜻하게 데우며 지냈습니다. 저는 잠은 자지 않았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 알고 있던 부처님은 게으른 비구의 대답이 끝나자 그를 꾸짖었다.
“너야말로 게으르게 시간을 보냈으면서 열심히 사띠를 챙기며 살았다고 말하는구나. 너는 사띠를 놓치지 않는 것과 게으름도 구분하자 못하느냐? 나의 아들(부지런한 비구)과 비교해보면 너는 노쇠하고 비루먹은 망아지와 같고 나의 아들은 잘 달리는 준마와 같다.”
부지런한 비구를 ‘나의 아들’이라고 부른 부처님은 이어 게송을 읊으셨다.
제멋대로 방일하게 사는 사람들 속에서
주의 깊게 사띠 챙기며
졸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늘 깨어있는 이는
열반을 향해 달려간다.
날쌘 말이 느린 말을 앞지르듯이.
<법구경, 무념·응진 역 참조>
수행은 겉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감각기관으로부터 전해지는 느낌과 마음 작용과 법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여 지혜를 발현하는 데 있음을 강조한 내용입니다. <법구경> ‘쌍요품’에도 담마를 실천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한 게송이 있습니다.
경전을 아무리 많이 외워 알아도
게을러 실천에 옮기지 않는 사람은
남의 소나 세고 있는 목자와 같이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다.
雖誦習多義 放逸不從正 如牧數他牛 難獲沙門果
‘압빠마도(Appamādo)’는 ‘불방일(不放逸)’로 한역되었습니다. 한글로는 ‘게으르지 않다’로 옮겨졌지요. 그런데 압빠마도를 단순히 ‘게으르지 않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담긴 심오한 뜻을 거두절미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의 번역으로는 부처님께서 남겨주신 담마를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참뜻이 왜곡될 우려도 크지요. 그러므로 압빠마도의 참 의미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압빠마도는 ‘사띠(sati)를 놓치지 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반야심경의 바른 이해>의 저자 김진태 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한 찰나 전의 기억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 몸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느낌이나 통증, 감각기관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들 등등 찰나찰나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선업에 해당합니다. 설사 망상이 일어나더라도 곧바로 ‘망상이 일어났구나!’ 하고 알아챈 다음 거기에서 빠져나와 곧바로 수행 주제로 돌아가니 공덕을 짓는 선업인 것입니다. 따라서 사띠는 선업을 기억하는 것, 선업을 잊지 않는 것, 어떻게 하든 선업을 하는 것. 몸과 입으로, 마음으로 잊지 않고 선업을 실천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태국에서 삼장법사에 오른 빤냐와로(진용) 스님은 한 법문을 통해 “사띠를 단 한 번만 챙겨도 다이아몬드나 루비를 갖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사띠로는 해탈을 성취할 수 있지만 다이아몬드와 루비로는 해탈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말씀이지요. 빤냐와로 스님은 “사띠의 소중함을 알고, 일초일각을 허비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사띠해야 한다. 사띠를 마음속에 결정심으로 하면 사띠가 뿌리내릴 수 있다. 수행해야지 하는 마음을 갖지만 어느 순간 무시하고 넘어가는 마음,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천 원, 만 원짜리 지폐를 버리는 사람은 없다. 왜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띠는 1초, 1분 챙기려고 하지 않는다. 사띠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가치를 안다면 1초, 10초, 1분을 넘어 1시간도 넘게 사띠를 챙기게 된다.”고 부연해 설명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사띠를 놓치지 않는 것이 곧 살아남는 길입니다. 교통사고 등 여러 가지 사고의 원인을 따져보면 대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띠를 놓쳐 사고가 일어난 것이지요. 인간이 끝없이 나고 죽으며 윤회의 고통을 겪는 원인도 사띠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띠를 놓치지 않음, 잊지 않음이 죽지 않는 길입니다. 잊지 않는 자가 죽지 않는 자이며, 아예 잊지 않는 사람이 부처님이며 아라한입니다. 다시 말해 선업을 잊는 것이 끝없이 죽는 길이며 선업을 잊지 않는 것이 윤회를 벗어나는 길입니다. 번뇌 없는 부처님을 생각함으로써 번뇌 없는 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부처님의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지요. 좋은 업을 짓는 것이 습관이 된다면 지혜를 낳는 바탕이 됩니다. 사띠의 가치를 깊이 마음에 새겨놓으면 지혜가 생겨나고, 자신감이나 확신이 생기며, 노력하게 되고, 수행하게 되며, 선업하기 쉬워지고, 차츰 부처님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넘어지고 일어나고 넘어지고 일어나는 일을 거듭하면서 자전거 타는 기술이 터득되는 것처럼. 잊어먹으면 잊어먹었다는 것을 알고 자꾸 잊어먹지 않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기억하는 순간을 늘려가야 합니다. 사띠를 놓쳤을 때, 놓치게 된 원인을 파악해야 합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대상을 볼 때, 어떤 소리가 들릴 때 사띠를 잊어먹는구나!’ 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자꾸 잊어버리는구나!’ 하고 주의를 기울이면 잊어먹지 않는 경계가 찾아옵니다. 이렇게 언제 어느 순간 잊어먹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띠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어가는 것, 잊어먹는 것을 줄이는 것을 스스로 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담마를 실천하는 데 게으르지 않는 것입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