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직업)에 정연하여 혼란하지 않게 하라.’

나이 60줄에 들어서니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리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동기들이나 친구들은 대부분 종사했던 분야의 일선에서 은퇴했거나 은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친구나 자영업을 하고 있는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인생 2막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인생 2막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은퇴하고 난 후에 이런저런 일자리를 얻은 운 좋은 친구들도 있고, 백수로 지내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저 역시 이름 앞에 농부, 시인(작가), 칼럼니스트 등을 붙이고는 있으나 실상은 백수 아닌 백수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산골에 살다보니 쓰임새야 크게 줄었지만 벌이가 여의치 않으니 빡빡한 살림살이를 감수해야만 합니다. 이 나이쯤 된 이라면 대개 느끼는 것이지만 일정한 수입이 있는 안정된 직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감하고 있습니다.

안정된 직업이란 고정 수입이 보장된 일자리를 말합니다. 이런 경우는 수입에 걸 맞는 일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겠지요. 고정된 수입이 있어야 자신과 가족을 위한 계획을 수립할 수 있고,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지출도 할 수가 있습니다. 직업이 불안하면, 그리하여 내일이 불투명하면 계획도 지출도 어려워집니다. 불안감이 밀려오고 삶의 질이 저하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산골에서 소농으로 살아가자면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애환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주로 우리 식구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한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글을 쓰는 일상이야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편이지만 그것이 안정된 수입으로까지 연결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지요. 특히 관리기나 건조기 등 값이 제법 나가는 농기계를 구입할 때면 고심을 거듭하게 되고, 구입을 하고 난 다음에도 그 후유증이 한동안 남아있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면 현직에서 한창 일할 때 좀 더 많은 재산을 마련해 놓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불쑥불쑥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런 삶도 몇 해가 더 지나면 안정을 찾겠지만, 부처님께서 행복해지는 길 열세 번째 지침으로 ‘일(직업)에 정연하여 혼란하지 않게 하라.’를 제시하며 안정적인 직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가 피부로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일(직업)에 정연하여 혼란하지 않게 하라.’는 열세 번째 행복지침은 ‘안정적인 직업(peaceful occupations)’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일을 함에 혼란스러움이 없거나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는 것(Not leaving work undone)’을 뜻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또 하나 포함해야할 중요한 의미는 ‘하는 일이 혼란스럽지 않은 것(Right Conduct or Action)’입니다. 하는 일이 혼란스럽지 않다는 것은 살생에 관련된 직업이거나, 도둑질에 해당하는 일이거나 삿된 음행에 관한 것에 관련되지 않는 일(Refraining from killing, stealing, sexual misconduct)인데, 이 세 가지를 잘 지키는 바른 행위는 곧 안정적인 직업을 영위해 행복을 누리는 데 중대한 근간이 됩니다. 예컨대, 돈벌이가 잘 된다고 해서 악업을 쌓는 일에 종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직업(kammantā)을 갖되, 올바른 행위(sammā kammantā), 즉 정업(正業)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깜마(kamma)는 업(業)을 말합니다. 안정된 직업을 의미하는 깜만따(kammantā)는 깜마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업은 몸과 입의 행동으로써 쌓아갑니다. 바른 행동을 했을 때 바른 업이 있고 삿된 행위를 했을 때 나쁜 업이 됩니다. 남의 목숨을 해치는 것,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 삿된 음행을 하는 것, 이런 것은 몸으로 행하는 나쁜 행위이기 때문에 나쁜 업이 되는 것이고, 반대로 사랑을 널리 베푸는 행위, 남에게 널리 베푸는 행위, 그리고 청정한 행동과 같은 행위들은 바른 업을 쌓게 합니다. 바른 행위, 즉 정업은 몸으로 실천해야 하는 도덕률입니다. 그래서 몸으로 행하는 업을 바르게 잘 실천해서 불선업을 쌓지 않고 선업을 쌓도록 하는 것이 정업입니다. 선업을 반복하면 큰 공덕을 쌓게 되고 결국에는 생사윤회를 끊어 버려서 해탈의 길에 이르도록 하는 최상의 공덕으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바른 행위’란 ‘불선한 행위가 몸을 표현 수단으로 삼아 일어나는 것을 삼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정업’의 핵심은 ‘자제(refraining)’라는 심적 요소가 됩니다. 이 자제가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행위에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바른 행위라 부르는 것이지요. 부처님은 바른 행위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세 가지 행위로 ‘살생 멀리하기’, ‘주어지지 않은 것 취하지 않기’, ‘부정한 성행위 멀리하기’를 말씀하셨습니다.

‘살생을 멀리한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하지 않는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계율은 그 어떤 유정물(有情物)도 살상하지 말하는 규정입니다. ‘유정물(pāṇi satta)’이란 마음 또는 의식을 지닌 생물로서 사람과 동물, 곤충 등을 의미합니다. 식물은 어느 정도의 감수성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유정물의 여부를 규정짓는 기준인, 의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기본 속성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생명을 해치는 일’은 의도적인 살상, 즉 의식을 지니고 있는 존재의 생명을 고의적으로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생명을 해치는 일을 멀리하라는 원칙은 모든 존재는 살고 싶어 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에 근거합니다. 이 계율의 위반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적 요인은,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일으키는 살생의욕입니다.

그런데 다른 것들을 죽이는 행위는 곧 자신을 죽이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죽일 때 일어나는 악한 마음들이 나의 행복을 빼앗고 나의 것들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든지 모든 존재 중에서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며, 자신이 소중한 줄 알면 다른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아무리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자신보다 사랑스러운 이 찾을 수 없네.

이처럼 자신이 가장 사랑스런 법이니

자기를 사랑하는 자, 남을 해치지 말라.​

<말리까경> SN3.8)

이 게송은 부처님께서 꼬살라 국의 빠세나디 왕에게 들려준 게송입니다. 어느 날, 빠세나디 왕이 말리까 왕비에게 “당신은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사랑스럽소?”라고 물었습니다. 말리까 왕비는 “저는 제 자신이 제일 사랑스럽습니다.”고 대답했지요. 남편인 자신을 제일 사랑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정작 말리까 왕비는 자기 자신이 제일 사랑스럽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러자 빠세나디 왕은 매우 서운하고 야속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빠세나디 왕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말리까 왕비의 대답을 전하며 서운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빠세나디 왕의 마음을 다독이며 들려주신 것이 이 게송인 것입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아니면 다른 것을 죽이도록 하는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긍정적인 마음을 자꾸 자꾸 갖게 되고, 그 마음이 더 고귀하게 되고, 선량해지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고 남에게 큰 도움을 주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멧따(metta, 자애)’와 ‘까루나(karuna, 연민)’가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살생을 멀리하는 마음이 자신은 물론 가족과 이 세상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훔치지 않는 것’도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버릴 때 가능해집니다. 어떤 물건도 그것의 주인에게는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다면 훔치는 행위는 자제될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은 마음을 속이는 행위와 다르지 않고, 이런 마음은 함께 기뻐할 줄 알 때 자제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더불어 기뻐하라(喜, muditā)’고 하셨습니다. 나만 기뻐하지 말고 더불어서 기뻐하는 행위들을 자꾸 실천할 때, 베풀려는 마음이 일어나 훔치려는 의도가 일어나지 않고, 따라서 훔치는 행위를 방지해 나갈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삿된 행위를 하지 않는 것’ 역시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고 남을 속이지 않는 마음을 가질 때 자제될 수 있습니다. 이 덕목은 미혼자(부모나 보호자나 형제자매에 의해 보호되는 사람)와 기혼자(남편에 의해 보호되는 사람), 그리고 다른 사람과 약혼한 사람, 담마에 종사하는 여성을 비롯하여 사회적 약자 등에 모두 적용됩니다.

수월관음도  고려후기  비단에색, 1110 x 577mm, 일본 단잔진자(談山神寺) 소장

안정된 직업을 갖는 것, 그리고 그 안정된 직업에서 일을 혼란스럽지 않게 하는 것은 행복으로 가는 매우 중요한 지침입니다. 또한 이 지침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업, 즉 ‘죽이는 행위, 훔치는 행위, 삿된 행위 멀리하기’의 실천이 밑바탕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거듭 언급하지만 이와 같은 지침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현세에서의 행복한 삶과 언제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궁극적 행복(열반)을 원한다면 마땅히 지불해야할 당위인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힘들고 어렵지만 의지와 인내를 갖고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행복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