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끝에 매달린 물고기1
-게으른 스님의 바랑
그림 정윤경
바람이 불면 절의 처마 끝에서 뎅그랑 뎅그랑 소리를 내는 물고기 모양의 금속판이 있습니다. 스님들은 그것을 풍경이라고 부릅니다. 물고기 모양의 금속판이 지나가는 바람을 만나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소리를 내지요.
그런데 움직이는 금속판이 왜 하필이면 물고기 모양인 줄 아십니까? 물고기는 물에서 사는데 왜 허공에 매달려 뎅그랑 뎅그랑 울고 있을 있을까요?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옛날 어느 암자에 노승이 살고 있었습니다. 대숲으로 둘러싸인 암자는 강 건너 가파른 절벽 위에 지어져 있었습니다. 햇볕이 하루 종일 들고 멀리 산 능선들이 상쾌하게 내려다보이는 수행하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노승에게는 몇 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수행을 잘하는데, 다만 한 제자가 애를 먹였습니다.
천성이 게을러서 수행은 물론이고 법당 청소도 잘 하지 않았습니다. 노승이 청소를 시켜놓고 법당에 들어가 보면 먼지가 그대로 쌓여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공부할 때도 그 제자만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암자 주위를 돌며 찾아보면 햇볕이 잘 드는 대숲 너머에서 잠을 자고 있거나 강가에서 물고기를 낚고 있었습니다. 노승은 그때마다 야단을 쳤습니다.
“이놈이 이제는 살생을 하는구나.”
“아닙니다, 스님. 저는 고기를 잡았다가 다시 놓아주고 있습니다.”
“시끄럽다 이놈아. 왜 물고기를 괴롭히느냐. 아직도 인과의 도리를 알지 못했단 말이냐. 네가 지은 업은 반드시 과보를 받게 되는 게야. 그게 인과의 도리가 아니고 무엇이더냐.”
노승은 그 제자가 뒷방에서 도둑잠 자는 것까지는 용서해 주었으나 물고기 낚는 것을 보고는 암자에서 쫓아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제자는 강을 건너 다른 절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를 기꺼이 받아주는 절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그는 떠돌이가 되어 돌아다녔습니다. 그제야 그는 뼛속 깊이 뉘우쳤습니다.
‘나를 받아주기만 한다면 목숨을 걸고 수행해서 반드시 부처님이 되고 말 텐데.’
그는 노승의 암자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낯익은 마을을 지나칠 때도 그를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을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공동묘지처럼 괴괴했습니다. 골목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길바닥에 나와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마을의 한 노인이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오지 마시오. 어서 이곳을 떠나시오. 병에 걸리면 스님도 죽습니다.”
노인은 다음날 스르르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제자는 그 노인을 묻어 주었습니다. 뒤늦게 관군이 달려와 죽은 시신과 살아 신음하는 사람들을 격리했습니다. 그는 마을을 떠나 강변으로 걸어갔습니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이 서로 나와 긴 삿대를 저어 강을 건너 주었는데 이제는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건너야 했습니다.
암자에 이르러 그는 숨을 가쁘게 쉬었습니다. 다행히 노승은 거지 몰골로 찾아온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이제 네 잘못을 뉘우치겠느냐.”
“네, 스님. 허락하신다면 가르침을 받아 반드시 성불하겠습니다.”
“좋다. 너를 다시 제자로 받아들이겠으니 예전의 허물을 벗어버리거라.”
그 제자는 누구보다 열심히 수행을 했습니다. 새벽 예불도 빠지지 않았고, 공부도 잠을 자지 않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제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져 버렸습니다. 전염병이 돈 마을을 지나올 때 이미 그는 몹쓸 병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는 곧 죽었습니다. 노승은 제자의 시신을 태우고 뼛가루를 강물에 뿌려주었습니다. 살아서 물고기를 괴롭혔으니 죽어서는 물고기의 밥이라도 되어 잘못을 빌라는 뜻으로 그랬습니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