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혜로운 충고를 줄 수 있는 이를 가까이 하라.
행복해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 어리석은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면, 두 번째 조건은 지혜로운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사실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 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지몽매한 사람과 어울리지 말라고 당부하시면서, 지혜로운 사람을 섬기거나 어울리되,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차라리 홀로 정진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어차피 수행이란 홀로 정진하는 것일 수밖에 없지만 궁극의 경지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러니까 홀로 정진할 수밖에 없는 순간을 맞이했을 때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이를 통해 배우고 습득한 지혜가 큰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동시에 강조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잡보장경> 권3에 지혜로운 이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유리하다고 기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風流)를 즐기고
사슴처럼 두려워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니라.
지혜로운 이는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잘 정리한 내용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공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막상 실천에 옮기기는 결코 쉽지 않은 삶의 지침들입니다. 유리한 입장에 있을 때 기만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불리할 때 비굴해지지 않는 것 역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요. 돈과 권력과 명성과 세력이 있는 사람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비굴해지는 장면들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치가 명확해도 과감히 행동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냉정하되 필요할 때는 불처럼 뜨거워질 줄도 아는 삶, 자부심이 태산처럼 크지만 누운 풀처럼 자신을 낮출 줄도 아는 삶, 부적절한 재물을 사양할 줄 알고, 하루에도 수십 번 벌컥벌컥 분출되는 화를 잘 다스릴 줄 아는 삶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이 글을 가만히 살펴보면 주로 구업(口業), 즉 입으로 짓는 선업(善業)을 중심으로 한 설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신구의(身口意) 3업을 모두 선업으로 지으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삶인지를 역설적으로 알려주고 있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담마빠다(법구경)>에서는 ‘국자와 혀의 비유’를 통해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을 가리는 기준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즉 어리석은 사람은 한평생 다 하도록 어진 사람을 가까이 섬기어도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하는데, 이는 마치 국자가 국 맛을 모르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잠깐이라도 어진 사람을 가까이 섬기면 곧 참다운 법을 바로 아는데, 이는 마치 혀가 국 맛을 아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결국 행복으로 가는 두 번째 길은 지혜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구분해낼 줄 아는 안목을 갖추는 것이 선결 과제이며, 이것이 해결되었을 때 그분의 충고를 잘 새겨듣고 실천에 옮길 줄 아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담마빠다>에서 부처님은 ‘지혜로운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허물을 지적하고 꾸짖어 주는
지혜로운 사람을 만났거든 그를 따르라.
그는 감추어진 보물을 찾아 준
고마운 분이니 그를 따르라.
그런 사람을 따르면 좋은 일이 있을 뿐
나쁜 일은 결코 없으리라.
남을 훈계하고 가르쳐 깨우치라.
사람들을 옳지 못함으로부터 구하라.
이와 같이 사람을 선한 이는 사랑하고
악한 이는 미워할 것이다.
나쁜 벗과 사귀지 말라.
저속한 무리들과도 어울리지 말라.
착한 벗과 기꺼이 사귀고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 섬기라.
진리를 음료수로 삼는 사람은
맑은 마음으로 편안히 잠들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즐긴다.
성인들이 말씀한 그 진리를.
물 대는 사람은 끌어들이고
활 만드는 사람은 화살을 곧게 한다.
목수는 재목을 다듬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다룬다.
큰 바위가 그 어떤 바람에도
끄덕하지 않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비난에도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깊은 못은 맑고 고요해
물결에 흐려지지 않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를 듣고
마음이 저절로 깨끗해진다.
현명한 사람은 어디서나 집착을 버리고
쾌락을 찾아 헛수고를 하지 않는다.
즐거움을 만나거나 괴로움을 만나거나
지혜로운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자손과 재산과 토지를 바라지 말라.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 되기를 바라지 말라.
덕행과 지혜로써 떳떳한 사람이 되라.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생의 저쪽 기슭에 이른 이는 아주 드물다.
대개의 사람들은 이쪽 기슭에서
갈팡질팡 헤매고 있을 뿐이다.
진리가 바르게 말해졌을 때
그 이치에 따르는 사람은
건너기 어려운 죽음의 강을 건너
머지않아 저쪽 기슭에 이르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어둠을 등지고
밝음을 찾아 나서야 한다.
어둠의 집을 떠나 출가하여
고독 속에서 기쁨을 찾으라.
번뇌를 물리칠 좋은 약을 구하라.
지혜로운 사람은 욕망을 버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마음의 때를 씻어 자신을 맑히라.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마음을 바르게 닦고
집착을 끊고 소유욕을 버리고
항상 편안하고 즐거우며
번뇌가 사라져 빛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이미 대자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지혜로움은 사실 중국이나 서양의 철인들이 말하는 지혜와는 그 궤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솔로몬의 지혜처럼 사리분별을 잘 할 줄 아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에서 지혜를, 굳이 팔리어를 음사해 ‘반야’라고 번역해 사용하는 것은 다른 문화 전통에서 언급하는 지혜와 근본적으로 결이 다른 지혜임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智)나 혜(慧)라는 말로서는 반야가 가진 심오한 의미를 모두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불교에서는 지혜를 삼혜(聞思修), 즉 문혜‧사혜‧수혜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문혜는 듣거나 읽어서 얻어지는 지혜이며, 사혜는 보다 깊은 사유와 사색에 의해 생겨나는 지혜입니다. 둘 다 반야에 포함되는 지혜입니다. 다음 단계의 지혜인 수혜는 오직 불교에서만 제시하고 있는 지혜입니다. 수혜는 수행을 통해 체득되는 가장 높은 단계의 무루의 반야를 말합니다. 무루의 반야는 부처님께서 증득한 열반과 해탈로 이끄는,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열반과 해탈을 성취하게 하는 지혜입니다. 그러니까 성인의 반열에 든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에서 더 나아가 반야바라밀을 완성하게 하여 아라한으로 나아가게 하는 궁극의 반야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반야의 어원적 의미는 ‘아주 뛰어난 인식이나 앎’이란 뜻이지만 개념적 분별을 동반한 일반적인 지식이 아니라 번뇌와 업력을 끊어갈 수 있는 힘을 가진 마음의 작용을 의미합니다. 수혜의 힘으로 반야바라밀이 완성되면 문혜와 사혜는 저절로 더 단단해지게 됩니다.
내친김에 조금 더 자세하게 반야에 대해 알아볼까요. 최근 김진태 교수가 펴낸 <반야심경의 바른 이해>(민족사 펴냄)에서는 반야를 “물질과 정신이라는 실재를 보고, 물질과 정신의 일어남-사라짐을 보고, 인과(因果)의 연기(緣起)를 보고, 실재의 생멸(生滅)을 통해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를 보고, 나아가서 열반, 곧 탐진치의 일어나지 않음을 보는 마음”이라고 설명합니다. “언어적 개념을 걷어내고 사물에 직접 다가갈 수 있는 마음작용이고, 열반을 보고 번뇌와 업력을 제거하여 생사윤회로부터 해탈할 수 있게 하는 마음작용”이 반야라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담마빠다>의 ‘지혜로운 삶’ 시구 가운데,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생의 저쪽 기슭에 이른 이는 아주 드물다./ 대개의 사람들은 이쪽 기슭에서/ 갈팡질팡 헤매고 있을 뿐이다.”는 불교에서의 지혜가 추구하는 방향과 궁극이 어떤 것인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쪽 언덕에 이르렀다면 오온의 굴레에서 이미 벗어난 것이니, 인격체를 의미하는 ‘(저쪽 기슭에 이른) 이’ 또는 ‘∼분’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온전한 옮김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같은 이치로 우리가 흔히 접하는 반야심경 마지막의 주문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스와하’를 번역함에 있어, ‘가신 분이여! 가신 분이여! 저 언덕으로 건너가신 분이여…’로 옮기는 것도 올바른 번역이 아니라는 데 유의해야 합니다. 어떤 존재가 건너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야바라밀다주는 ‘건너감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