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판01) <붓다의 기적>의 윗부분, 간다라 양식, 1120x420mm,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소장.
1. 쌍신변의 기적을 계기로 포교 중심지가 된 기원정사
기원정사는, ‘쌍신변의 기적’을 계기로 외도들의 항복을 받게 되고, 드디어 포교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된다. 불교 교단 구축의 결정적인 근거를 마련한 이 역사적인 사건을, 초기불교 미술품들(<붓다의 기적>(도판01) 및 <사위성의 기적>(지난 연재20 도판04 등)은 여실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난무하던 뭇 외도들을 전폭적으로 굴복시킨 그 기적의 내용은 무엇인가? 관련 경전 속의 기록부터 살펴보자.
쌍신변의 기적, ‘심心찰라’의 극치를 보이다!
상반신에서 불이 나타나고, 하반신에서 물이 흐른다. 반대로 하반신에서 불이 나타나고, 상반신에서 물이 흐른다. 몸의 앞쪽에서 불이 나타나고, 등 쪽에서 물이 흐른다. 반대로 등 쪽에서 불이 나타나고 앞쪽에서 물이 흐른다. (이하 물과 불이 번갈아 교차해 나타나는 현상 생략) 오른쪽 눈에서 … 왼쪽 눈에서 … , 반대로 왼쪽 눈에서 … 오른쪽 눈에서 … , 오른쪽 귀에서 … 왼쪽 귀에서 … 반대로 … , 오른쪽 코에서 … 왼쪽 코에서 … 반대로 … , 오른쪽 어깨에서 … 왼쪽 어깨에서 … 반대로 … , 오른손에서 … 왼손에서 … 반대로 … , 오른쪽 옆구리에서 … 왼쪽 옆구리에서 … 반대로 … , 오른쪽 다리에서 … 왼쪽 다리에서 … 반대로 … , 열 개의 손가락과 열 개의 발가락에서 … 반대로 …, 한쪽 모든 털에서 다른 쪽 모든 털에서… 반대로 …, 한쪽 모든 털구멍에서 다른 쪽 모든 털구멍에서 … 반대로 … (물이 흐르고 불이 나타난다) 몸의 각각의 부분에서 여섯 색깔의 빛(육종광명)이 쏟아져 나온다. 청색, 황색, 적색, 백색, 주황색과 빛(광채)의 여섯 빛깔이 쌍으로 흐르거나 함께 흘러나온다.(요약 인용)
-『법구경주석서(Dhammapada Aṭṭhakathā)』
(도판02) (도판01) <붓다의 기적>의 아랫부분.
‘쌍신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쌍신변(Yamaka-pāṭihāriya)이란, ‘두 가지 기적이 동시에 행해졌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영어로는 ‘twin miracle(직역하면 쌍둥이 기적)’ 또는 ‘double appearances(이중의 나타남)으로 표현된다. 두 가지라는 것은 첫 번째로 ‘물과 불’이다. 다음으로는 ‘여섯 색깔의 빛’이 쌍으로 또는 동시다발로 나타난 것이고, 마지막으로 ‘본체’와 ‘분신分身(또는 화신化身)’을 말한다. 쌍신변의 구체적 모습을 말해주는 경전 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이하 쌍신변 내용의 인용,『법구경 이야기-법구경 주석서-』(무념·응진 역)를 중심으로,『밀란다 왕문경』『붓다차리타』(마명 지음) 등을 참조하여 요약함.〕
공중에 보배 경행대를 만들어 걸쳐놓으시고 앞뒤로 경행하면서 쌍신변을 나투셨다. 상반신에서 불을 까시나의 대상으로 사선정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선정을 반조하고, 다시 하반신에서 물 까시나를 대상으로 사선정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선정을 반조한다. 이 두 가지를 일으키는 데는 단지 네 다섯 번의 심心찰라(마음 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 원리는 몸의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불이 일어난 것과 물이 흐르는 것은 결코 섞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순간에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선정에 들어갔다 나오는 데 이보다 빠른 사람은 없다. 붓다는 자유자재롭게 선정에 들어갔다 나오는데 절정에 도달한 분이다. 붓다 몸에서 뿜어져 나온 불과 물은 위로는 범천의 세계에 가닿고, 아래로는 철위산의 가장자리까지 닿는다. 신통은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며, 붓다는 보배 경행대를 오르내리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법문하셨다. 그때마다 군중들은 박수를 치고 찬탄하였다. 붓다는 법회에 참석 한 사람들의 다양한 근기에 따라 법문하기도 하고 신통을 나투기도 하셨다.
(도판03) 붓다의 몸체, (도판01) <붓다의 기적>의 중간 부분.
뿜어져 나오는 물과 불, 강력한 신성성
<붓다의 기적>(도판01)과 <사위성의 기적>(지난 연재20 도판09)의 두 작품은 쌍신변을 행하는 붓다의 ‘강력한 신성성’을 매우 잘 표현한 대표적 간다라 양식이라 하겠다. 경전에 묘사된 그대로, 상반신과 하반신에서 물과 불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양 어깨와 양 발바닥에서는 이글거리는 불꽃 또는 출렁이는 파도 모양의 강렬한 파장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육종광명의 신성함은 몸체와 머리의 두광으로 나타내고 있다. 물론, 깨달음의 징표는 몸에서 나오는 빛(광배)과 제3의 눈이 열린 상징인 미간 차크라의 표현(백호), 그리고 완벽하게 열반에 듦의 표상인 백회 차크라의 열림(육계) 등으로 어김없이 나타난다. 이는 모두 신성한 깨달음과 하나가 된 상징들이다. 부처의 상像을 일반 사람의 상像과 구분 짓는 핵심 요소들이다.
위에 언급한 이 두 작품의 특이할 만한 점은, 간다라 양식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몸체의 양감量感이 어머 어마하다는 것이다. 보통 간다라 지방의 양식은 (비교적 위치가 북쪽이고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옷을 두껍게 표현한다. 그래서 몸체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마투라 지방의 양식은 (비교적 위치가 남쪽이고 기후가 덥기에 풍토성이 반영되어) 상체 옷을 입지 않거나, 표현하더라도 지극히 얇게 표현한다. 그래서 마투라 양식의 작품은, 붓다의 신성성을 몸체 그 자체의 강건함과 팽팽한 양감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양감은 여의주(깨달음을 상징)의 양감과도 상통한다. 그런데 특히, <붓다의 기적>(도판01) 경우의 몸체 표현을 보면(도판03), 옷 주름이 동일한 간격으로 퍼지고 있고 옷이 얇아 붓다의 강건한 몸체가 거의 모두 드러나고 있다. <사위성의 기적>(지난 연재09)의 경우는, 옷 주름이 불규칙하여 보다 사실적이고, 무릎 이하는 매우 두껍게 표현하여 <붓다의 기적>(도판01)보다 더 시대가 앞선 간다라 양식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붓다의 기적>의 경우는, 간다라 양식임에도, 이미 굽타 양식을 예견하는, 과도기적 명작이라 하겠다.(간다라 · 마투라 · 굽타 양식: 초기 불교미술을 논하는 데 있어, 기본이 되는 이 세 가지 양식에 대해서는 추후 연재에서 다룸.)
여섯 색깔의 광명 육종광명 은 몸의 곳곳에서 뿜어져 나온다. 푸른빛은 머리털과 턱수염 등이 털에서 뿜어져 나온다. 노란빛은 피부에서 뿜어져 나온다. 붉은빛은 살과 피에서 뿜어져 나온다. 흰빛은 뼈와 이빨에서 뿜어져 나온다. 심홍색은 손바닥과 발바닥에서 뿜어져 나온다. 광명은 이마와 손발톱에서 뿜어져 나온다. 여섯 색깔의 빛은 도가니에서 흘러나오는 용해된 금처럼 철위산의 내부에서 솟아 나와 범천의 꼭대기에 닿고 거기서 다시 흘러나와 철위산의 가장자리에 닿았다. 철위산 전체가 둥근 아치와 광명으로 이루어진 깨달음의 집과 같았다.
-『법구경주석서(Dhammapada Aṭṭhakathā)』
어째서, 능가할 수 없는, 최고의 신통인가?
붓다가 보이신 쌍신변의 대상들을 보면, 까시나 수행의 대상들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40가지 명상 주제 중에 열 가지 까시나인 ‘땅·물·불·바람·청색·황색·백색·적색·광명·허공’ 중의 두 가지 또는 빛깔 6가지를 동시에 보이신 것이다. 까시나(Kasiṇa)는 ‘전체’ 또는 ‘모든’이란 뜻이다. 하나의 까시나를 대상으로 정해 그것을 표상으로 만들고 온 우주 공간에 확장하여 온통 그것으로 채우는 수행법이다. 고도의 마음 집중으로 가능한 선정 체험의 방법이다. 그런데 마음은 한순간에 하나의 대상 밖에는 알 수 없다. 그래서 한 번에 한 가지씩 밖에는 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을 ‘동시에 보이는 것처럼 행하셨다’라는 것은, 마음 순간 즉 심(心) 찰나를 참으로 상상하기도 힘든 속도로, 말 그대로 신통 또는 기적의 경지에서, 왔다 갔다 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섯 빛깔을 몸체에서 동시다발로 부위별로 각각 다르게 뿜어냈다는 것이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전례 없는 분신의 신통이 이어진다.
붓다께서는 모인 군중 속에서 붓다의 마음을 이해하고 질문할 이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신통으로 분신을 창조하셨다. 그래서 분신이 질문하면, 붓다께서 대답하셨다. 붓다가 경행을 하면 분신은 다른 일을 했다. 분신이 경행하면 붓다는 다른 일을 하셨다.
마음의 대상이 이중 또는 다중으로 보이도록 나타내는 신통. 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마음을 운영한 결과인데, 이 같은 신묘한 기적을 붓다는 네 번 나투신 것으로 전한다. 첫 번째, 정각 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천신과 범천의 의심을 타파해 주기 위해, 두 번째, 고향인 카필라바스투를 방문하여 자만심 높은 친족들을 조복하기 위해(해당 내용과 작품은 지난 연재15 참조: 붓다의 신통, 분신무량과 물불을 내뿜다), 세 번째, (본 연재 소개하는) 사위성의 망고나무 아래에서 이교도들을 항복시키고 군중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네 번째 바이샬리의 이교도 때문에 모인 군중들을 교화시키기 위해이다.
(도판04) <기적을 일으키는 부처(천불화현)> 지름 680cm
천불화현, 특이한 ‘분신分身’을 창조하다
여기서 포인트는 분신과 본체의 제각기 다른 행동이다. 그러니까 본체가 손을 들면, 분신도 손을 들고, 본체가 말하면 분신도 말을 하고 … , 이렇듯 본체의 복사로서의 분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체와 분신이 각각 별도의 행동을 함으로써,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이도록 나투신 것이다. 이 같은 신통은 ‘붓다만이 가능하다’라고『밀란다왕문경(Milinda Pañha)』에 언급되고 있다. 또 16일간 계속된 이러한 쌍신변의 신통과 설법의 결과로 2억 명의 중생들이 법(Dhamma)에 대한 이해를 얻었다고 전한다.
(도판05좌)(도판06우) 붓다의 무수한 분신들의 모습. (도판04)의 부분.
(도판07좌)(도판08우) 몸을 무량하게 분신하는 모습. <붓다 설법상>(또는 <사위성의 기적>)의 부분(연재15 도판08참조), 간다라, 2세기, 편암, 라호르 박물관 소장.
초기 불교미술에서, 쌍신변 기적의 일환으로서의, ‘분신分身’ 표현은 <천불화현>이라는 제명으로 묘사된다. 분신의 모습을 보면, 본체와 같은 동일한 형식인 경우도 있고〔(도판04) <기적을 일으키는 부처(천불화현)>〕, 본체와 다른 형식인 경우도 있다.〔(도판07, 08) <붓다 설법상 또는 사위성의 기적>의 천불화현 부분〕<붓다 설법상 또는 사위성의 기적>의 부분(도판07,08)의 경우는 붓다는 결가부좌하고 선정에 들어 있는데, 좌우로 화현化現한 분신들은 서있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손을 들고 있기도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 같은 천불화현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아잔타 석굴의 <사위성의 기적(천불화현)>(도판10)을 들 수 있는데, 무궁무진한 ‘다불多佛’이 거대한 벽면을 가득 매우고 있다. 법신法身으로 설정되는 바탕자리에서, 연꽃 줄기가 올라와 연꽃이 우주 공간에 무수하게 만개하고, 만개한 연꽃 위에 무수한 부처님이 ‘연화화생(蓮花化生 또는 蓮華化生)’하였다. 대부분 선정인禪定印을 하거나 설법인說法印을 하고 있다. 드물게, 초전법륜인初轉法輪印의 수인이 보이기도 한다.
쌍신변의 신통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 ‘아비담마’
교단 확립과 포교의 근거지 확보 차원에서, 신통을 통해 이교도들을 제압하였다는 사실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겠다. 그런데 신통이 중요한 이유가 또 하나 더 있다. 신통을 나투신 후, ‘아비담마의 설법’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법구경 주석서에 따르면, ‘쌍신변의 신통’과 ‘아비담마의 설법’은 이어지는 하나의 에피소드라는 것이다. “신통을 나툰 후에 삼십삼천에서 안거를 보내면서 어머니를 위한 아비담마 삐따가(논장論藏)을 설하는 것이 역대 모든 부처님들의 변함없는 관습이었다.”라는 것을 붓다는 아시고, 사위성에서 (삼십삼천으로) 갑자기 모습을 감추시게 된다. 이때 안거 기간 동안 붓다의 부재를 불안해하는 신도들을 위해 최초의 불상 佛像이 만들어지게 된다.(연재17의 내용 참조) 기원정사의 붓다의 거처인 간다 쿠티에는 붓다를 대신하여 전단목으로 깎아 만든 붓다의 형상이 안치되게 된다. 붓다께서 어머니를 위해 설하신 아비담마 삐따가는 아비담마 칠론七論이라고 부른다. 그 내용은 담마상가니·위방가·다뚜까타·뿍갈라빤냣띠·까따왓투(이 항목만 붓다가 아니라 목갈라뿟따 띳사 장로가 논한 것으로 전해짐)·야마까·빳타나이다. 간략히 소개하면 마음 89가지, 오온·십이처·십팔계·오근·십이연기·사념처 등, 요소(다뚜dhatu), 빤냣띠(개념), 뿌리·오온·장소 등, 상좌부의 5백 가지 바른 견해, 24연기 조건(마음과 물질의 상호의존 관계)이다. 쌍신변의 신통은 삼십삼천에서도 계속하여 때때로 행해진다.
3개월의 안거 동안의 아비담마의 법문을 마치고, 다시 지상으로 오실 때, 많은 군중들은 언제 어디로 오실지 궁금해했다. 붓다가 해제 날 내려오시는 곳이 상키시아(상깟사) 성문이다. 이때 제석천은 금, 보석, 은으로 된 세 개의 계단을 만들고 가운데 보석 계단으로 붓다가 하강하신다. ‘상키시아의 하강’ 역시 초기 불교미술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이다.(연재17 도판 및 내용 참조) 상키시아의 하강 자리는 역대 모든 부처님들이 하강하신 ‘영원히 변치 않는 자리’ 중 하나로 전한다. 붓다가 천신들과 범천들의 권속을 거느리고 상키시아의 계단으로 내려오시는 모습은 너무나도 거룩하였다. 이에 마중 나온 사리불은 그 모습을 “예전에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네!”라고, 그 전례 없는 장엄한 풍경을 찬탄한다. 그리고 “모든 범천과 천신들과 재가자들이 붓다를 예찬하며 자신들도 붓다가 되기를 서원합니다.”라고 하자, 붓다는 그대들이 되고자 하는 ‘붓다가 과연 무엇인지’, 명료한 게송으로 가르침을 주신다. 그것이 ‘법구경 181번의 게송’이다.
삼매와 통찰지를 닦은 현자는
해탈의 기쁨 속에 즐거워한다.
주의 깊게 마음 챙기고 바르게 깨달은 이를
천신들도 지극히 존경한다.
-『법구경 181번의 게송』
‘삼매와 통찰지를 닦은 현자’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삼매는 ‘사마타’를 말하고 통찰지는 ‘위빠사나’를 말한다. 양자를 모두 닦으면 해탈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정定과 혜慧(정혜쌍수), 지止와 관觀(지관겸수)의 양 날개가 갖추는 지혜로운 현자이어야 함을 강조하신다. 또 그 행(行)은 ‘주의 깊게 마음 챙김’ 즉 ‘삿띠’로, 이를 통해 바른 깨달음에 도달하고, 비로소 그대들이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경지가 된다는 것이다. 불교 수행법의 요지가 더할 나위 없이 함축된 법구경의 게송이다.
(도판11좌)(도판12우) 인도 성지순례 중에 길거리에서 만난 풍경. (도판11)은 홍차밀크티(차이티아) 파는 가게.
(도판13좌)(도판14우) <천불화현의 탑> 쌍신변을 행하신 장소. 기원정사의 남쪽.
2. 계속되는 ‘천불화현 조형’의 전통
초기 불전에서 대승 경전으로, 이어지는 ‘천불화현’
위에서 <사위성의 기적>의 일환으로서의 ‘천불화현’ 조형의 시원始原을 잠시 살펴보았다. 붓다의 몸체 좌우 주변으로 8구 또는 10구의 분신들을 표현하는 간다라 작품 사례들(도판05~도판08)이 있었고, 분신들을 무량무변하게 석굴 벽면에 다중으로 빼곡히 조각한 아잔타 제7석굴의 사례 <사위성의 기적(천불화현)>(도판10, 11)이 있었다.
(도판09) <사위성의 기적(천불화현)>(도판10)의 부분, 아잔타 석굴 제7굴
아잔타 석굴 사례의 경우, ‘다불의 표현’이 마치 전 우주 공간으로 뻗어나가 삼라만상을 채우듯 표현되다. 이미 이 시기부터 법화경(구원성불久遠成佛) 및 화엄경(비로자나시방화불毘盧遮那十方化佛)에 언급된 분신 또는 화불化佛의 개념이 적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초기불전 상의 ‘쌍신변의 신통’의 맥락과는 다른 면이 있지만, 분신이라는 기본적인 현상은 같겠다. 화불化佛 또는 화신불化身佛은 변화한 몸의 부처란 뜻으로, 변화신 또는 변화불의 의미를 갖는데, 대승불교에서는 응신應身이라고도 칭한다. 대승적으로 정착된 의미로는 ‘수많은 중생의 다양한 근기와 소질에 응해 갖가지 형상으로 또는 복수의 형상으로 몸을 나투는 것’을 말한다. 법화경의 ‘구원성불久遠成佛’의 개념이란 과거로부터 현재, 미래까지 시방삼세를 관통하여 항상 여여하게 부처님이 존재하여 설법하고 교화를 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나는 한량없는 과거로부터 무한한 미래에까지/ 다양한 이름과 모습으로 출현하였는데/ 이는 모두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만일 어떤 중생이 내게 찾아오면/ 나는 부처님의 눈으로/ 그의 믿음과 근기의 날카롭고 둔함을 보아/ 제도할 바를 따라 곳곳에서 설하되/ 이름도 다르며 수명도 달랐으며 또는 열반에 들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편으로 미묘한 법을 설해/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의 마음을 내게 했다.”
-「여래수량품」『법화경』
(도판10) <사위성의 기적(천불화현)>의 부분, 아잔타 석굴 제7굴
인도, 중국, 한국의 천불화현 조형의 대표 사례
천불화현 또는 다불多佛 조형의 전통은 인도의 아잔타 석굴 작례를 시작으로 대승불교의 전통 속에서는 불교 장엄의 중심 주제로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하, 중국 및 한국의 대표 명작 사례를 잠시 소개한다.(중앙아시아 및 일본 것은 원고 분량 상 생략) 중앙아시아 돈황의 다불 표현을 거쳐, 중국에는 5세기 운강雲岡 석굴에 무량한 화신불의 표현이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운요曇曜 제18굴의 노사나불 육신 표면에 조각된 다불 표현은 가장 잘 알려진 작례 중 하나이다.(도판15) 이러한 다불 표현은 수대隋代를 거쳐 당대唐代에 오면 그 성숙기를 맞게 된다. 돈황 막고굴뿐만 아니라, 운강 석굴을 거쳐 용문 석굴(도판16)에 이르기까지 석굴의 내외 벽면은 온통 다불고 채워진다.
(도판15) <노사나불>의 부분, 노사나불 몸체 표면 위에 조각된 다불 표현. 운강雲岡 석굴, 曇曜 제18굴. 5세기.
(도판16) <화신불 또는 다불> 용문龍門 석굴, 만물동萬佛洞, 중국 당대唐代.
(도판17) <비로자나삼천불도>의 부분, 고려불화, 14세기 추정, 비단에 채색, 196.0cm×133.5cm, 일본 고베시립박물관 기탁 보관.
(도판18) <비로자나와 다불多佛> 표현, 「화장세계품제5」 변상도., 해인사 『80화엄』, 사간장경寺刊藏經 변상판화(수창년간壽昌年間 개판본).
(도판19좌 도판20우) <붓다의 천불화현> 인도 라자스탄 또는 구자라트 출토, 노턴 시몬 박물관 소장.
“변화 분신으로 일체 세계해를 가득 채우네”
우리나라의 경우, 화엄경의 세계를 한 폭의 그림으로 옮긴 고려불화 <비로자나삼천불도毘盧遮那三千佛圖>(도판17)를 보면, 거의 2미터가 되는 큰 화면을 손톱보다 작은 수십, 수백 구의 불상으로 가득 채워 장관을 이룸을 확인할 수 있다. 또 고려대장경의 화엄경 판본의 「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변상도를 보면(도판18), 화불들은 가장 앞줄에 있는 존상들만 결가부좌 한 모습으로 표현했고, 그 뒤 또는 그 위로는 줄지어 화생하는 존상들은 동그란 얼굴과 두광만 표현하여, 다수의 부처를 최대한 많이 표현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작품들의 도상과도 직결되는 화엄경 화장세계품의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화장 장엄 세계의 무수한 띠끌 있네 / 낱낱 띠끌 가운데 법계를 본다 / 광명 속에 부처님이 구름 모이듯 / 이것은 온 세상에 자재하는 부처님인 것을
청정하신 비로자나 부처님 / 장엄을 갖춘 속에 그 모습 드러내고 / 변화 분신 무리 에워 두르고 / 일체의 세계해 모두 가득 채우네 / 존재하는 화불 모두 환영 같아서 / 오신 곳을 구하여도 알 수가 없네 / 부처님 경계의 위신력으로 / 일체의 세계 속에 이렇듯 화현하시네 (강조 방점 필자, 이하 상동)
- 「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 『80화엄경八十華嚴經』
(도판20) “佛身普遍十方中(불신보편시방중) 三世如來一切同(삼세여래일체동)” 경북 기림사 삼천불전三千佛殿 전각에 걸려있는 편액 문구(이는 여타 사찰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 보편적인 경전 문구이다.)
이렇듯 화장 세계의 무대가 되는 향수해香水海에서는 “화장세계의 비로자나毘盧遮那와 시방화불十方化佛 및 일체의 모든 부처님이 신통한 일들을 나타내셨다”고 한다. 즉, 진리의 세계의 모습은 비로자나와 변화 분신의 화불이 일체 출현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진리의 눈을 뜨면 체험하게 되는 세상이다.
글ㆍ사진: 강소연(불교문화재학 전공ㆍ중앙승가대학 교수)
<필자 소개>
강소연
중앙승가대학 교수. 문화재청 전문위원, 성보문화재위원회 위원, 조계종 국제위원, 문화창달위원회 위원, 전통사찰보존위원회 위원 등. 30년 간 오로지 불교문화재를 연구한 베테랑 학자. (경력)홍익대 겸임교수(10년 근속),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 동국대 불교학과 연구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4급 학예공무원). 조선일보 공채 전임기자. (해외경력) 런던대 SOAS 교환장학생(NDR수료), 대만 국립중앙연구원(Academia SINICA) 역사어언연구소 장학연구원, 교토대학 대학원 연구조교. (수상) 일본 명예학술상 ‘국화상’ 논문상, 불교소장학자 ‘우수논문상’. (저서)『명화에서 길을 찾다-매혹적인 우리 불화 속 지혜-』(시공아트), 『사찰불화 명작강의』(불광출판사),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부엔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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