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익진 박사(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의 엮음 『한글 아함경』게송 중심으로.
8. 해용의 본래 인연에 대한 품(本紀該容品)
여래께서는 천이백오십 명의 비구들과 함께 사바티의 기원정사에서 구람니국의 구사라정사로 오셨다.
국왕의 이름은 우전이였는데, 매우 사납고 해만 끼치며 아첨하는 말을 잘 받아드리고 여색의 즐거움에 지나치게 빠져서 스스로 의심의 그물에 잠겨 있었다.
또 대부인 두 사람을 두어 좌우에서 시중들게 하였는데, 두 왕후의 용모는 그 나라에서 견줄 이가 없었다.
왼편 부인의 이름은 조당으로, 사람됨이 교만하고 오직 악한 것만을 쫓아 어진 이를 질투하여 헐뜯어 고해바치고 남 헐뜯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오른편 부인의 이름은 해용으로, 어질고 자애로운 일을 행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조심하며 소박하고 몸을 단속하여 무늬가 있는 것을 몸에 걸치지 않았으므로, 왕은 그녀의 행실을 귀히 여겨 매사에 치우치게 사랑하였다.
이에 조당은 시샘하여 해용을 헐뜯어 고하기가 극에 달했지만, 왕은 그녀의 행동을 살피며 조당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용에게는 도승이라는 나이 든 하인이 있었는데, 향을 사라갈 때마다 문안을 드리기 위해 정사로 가는 길로 돌아서 갔다. 그는 매번 공경하는 마음을 표했으며, 향 값을 조금씩 떼어 모았다가 부처님과 비구들을 찾아가 공양하였다. 또한 부처님께서 그를 위하여 법을 말씀하시면, 지극한 마음으로 잊지 않았다.
그가 보시를 마치고 궁전으로 돌아오면서 가게에 들러 향을 사 왔는데, 이 공덕으로 본래의 행이 뒤따랐으므로 향에서 풍기는 향내와 무게가 평상시보다 두 배나 더하였기에, 해용이 그 이유를 묻자, 사실대로 말하였다.
“매번 향 값을 줄여서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였습니다. 그 법은 심오하고 이치가 미묘하여 세상에서는 들을 수조차 없는 법입니다.”
해용은 부처님이라는 말을 듣고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뻐하며 생각하였다. ‘나의 마음은 뛸 듯이 기쁘건만, 어떻게 하면 한량없는 가르침을 들을 수 있을까.’
도승은 부처님께 법을 설하는 의식을 묻고, 해용은 법의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서 알맞게 법을 설해 주니, 해용과 시녀들은 의심이 풀려 악을 물리치고 수다원의 도를 얻었으며, 도승도 이때 총지를 얻었다.
반면 조당은 원망과 질투심으로 분노하며 자주 헐뜯기를 한두 번에 그치지 않자, 왕은 도리어 꾸짓었다.
그러나 조당이 여러 번 헐뜯어 고하기를 그치지 않자 왕도 혼란스러워졌다.
이에 조당은 꾀를 내어 생각하였다. ‘그녀가 재를 올리는 날을 노리면 틀림없을 것이다.’
“오늘은 오른편 부인을 청하여 즐기십시오.”
왕이 곧 많은 이를 부르자 명을 받고 모였으나, 해용은 재를 올리느라 홀로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세 번까지 불렀지만 절개를 지니고 움직이지 않았다. 왕은 더욱 성을 내며 사람을 보내 끌어내 오게 하였다. 궁전 앞에 묶어 둔 채 활을 쏘아 죽이려 하였지만 해용은 두려워하지 않고 한마음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왕이 직접 화살을 쏘았지만 그 화살은 다시 자신을 향하여 돌아오고, 다시 쏘아도 곧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왕은 크게 부끄러워하고 당황하면서 그녀를 풀어주며 물었다.
“당신은 무슨 재주가 있기에 이런 것이오.?”
“오직 여래만을 섬기고 삼보에 귀의하였습니다. 분명 세존께서 저를 가엾이 여겨 돌봐 주셨기에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훌륭하구나! 어찌 옳은 말이 아니겠느냐. 나도 정사로 찾아가 뵙고 경건함을 표하겠다.”
그런데 때마침 적국에서 군사를 일으켜 국경을 침입해 들어왔다. 그 무리의 세력이 강하여 왕이 직접 전쟁터에 나가면서 범지 길성에게 뒤를 부탁하여 임시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다.
이에 조당은 기뻐하였다.
“나의 부친께서 정사를 다스리면 그 여자를 반드시 죽여 버릴 것이다.” 왕이 떠난 후 부녀는 음모를 하여 불이 난 것처럼 하여 해용과 시녀들을 태워 죽였다. 거짓말을 덮을 수 있으리 믿었지만 결국 사실이 드러나 버렸다.
길성은 나라 밖으로 쫓아 버리고, 조당의 무리들은 땅굴에 가두었다. 그리고 삿된 도를 몰아내고 부처님 법을 천명하였다.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왕후 해용과 시녀들은 정진하였는데 무슨 죄로 이런 불의 해를 입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세존께서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바라나시라는 성에 오백 몀의 음녀들이 있었는데, 경박한 이들을 맞아들여 먹고 살았다. 그때 세간에 가라라는 벽지불이 백성들을 교화하여 오계를 지니게 하니, 온 나라의 남자와 여자들이 마음을 돌려 스승으로 여겼다.
이에 음녀들은 성을 내며 말하였다.
‘이 자는 왜 이곳에 와서 우리의 손님들을 끊어 놓는단 말인가.’
그리하여 모두 성을 내며 해칠 것을 도모하였는데, 훗날 가라가 다시 그 마을에 들어오자 음녀들은 다 함께 성을 내며 화로로 가라를 치고 때렸다. 가라는 온몸이 타고 문드러졌으나 원망하지 않다가 문득 신족을 드러내 허공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음녀들은 모두 놀라 두려워하며 울면서 허물을 뉘우치고 무릎을 끓고 앉아 고개를 들고 호소하였다.
‘여자들이 어리석어서 참된 도를 몰랐습니다. 어리석은 무리들이 신령한 이를 해치고 욕보였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허물과 죄악은 태산과 같습니다. 바라건대, 거룩한 덕을 내리시어 무거운 재앙을 녹여주십시오.’
이에 가라는 소리를 내며 내려와 열반에 드니, 여인들은 탑을 세우고 사리에 공양하였다.“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때의 저 음녀들은 지금의 해용 등이니, 죄와 복은 사람을 따라다녀 아무리 오래되어도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
이 법을 말씀할 때에 나라 안의 사람들은 어린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믿어 받들고 기뻐하였으며, 다 같이 삼보에 귀의하고 계율을 받고 물러갔다.
이에 부처님과 비구들은 다시 사바티로 가셔서 기원정사에 머무셨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