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일제의 소위‘국가총동원법’이라는 발포와 함께 <종군 위안부>가 생겨났다. 대대적인 조선 처녀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그로부터 1945년 8월까지 약 20만 명의 조선 여성이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었다. 아무도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개나 돼지처럼 붙잡혀 능욕을 당하는 그들 옆에는 부모형제도 없었고, 조국도 없었다. 행여 그들로 하여 우는 사람도 없었다. 그곳에서 죽은 이는 오히려 행복했다. 그들의 육신은 갈가리 찢겨졌다. 그들의 영혼은 산산이 흩어졌다. 그러나 그들을 지옥보다도 못한 그곳으로 몰아넣은 것은 일본이 아니었다. 아직도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었다.
1943년, 명장사
타박타박.
타박타박.
굵은 눈송이들이 세 사람의 얼굴을 때렸다. 두 사람은 아버지와 딸이었고, 한 사람은 젊은 스님이었다. 누더기 옷차림의 열 살 난 소녀의 손을 잡고 있는 병약한 아버지는 잦은 기침을 토했다. “쿨룩, 쿨룩!”
뒤따라오던 말쑥한 승복 차림의 스님이 말을 붙였다.
“어디로 가시나요?”
“북간도.”
“하필이면 이 추운 날에.”
“쿨룩, 쿨룩! 추워야 강을 건너지요.”
아버지는 귀찮은 듯 길을 재촉했다.
스님이 자꾸 따라붙었다.
아이는 손거울 들고 있었다.
“참 예쁘구나.”
“엄마 거에요.”
아이가 또록또록 대답했다.
“이름이 뭐지?”
“옥아요. 강옥아.”
“좋은 이름이구나.”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에요. 깨끗하게 살라고.”
“옥아, 그 거울 속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
“네 얼굴도, 저 산도, 저 강도 들어가 살 수 있는, 그 거울 속에는 누가 살고 있어?”
“제가 비추는 거요.”
“허허. 맞다.”
스님의 웃음소리가 눈발 날리는 허공을 갈랐다.
“어르신, 이 아이를 제자로 삼고 싶군요. 얘하고 같이 우리 절로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옥아(玉娥)는 젊은 스님, 회산(檜山)과 함께 두만강 가 머물렀다. 그러나 그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아버지는 목숨을 놓았다.
1943년 5월.
층암절벽이 병풍처럼 막아선 두만강가에 오붓이 들어앉은 조그만 암자 명장사. 남평에서 제일 높은 곳, 바람이 호랑이 울음처럼 들린다는 고갯마루 위의 명장사 뜨락. 나비 한 마리가 새로 돋아난 작은 주목 잎사귀를 물고 있었다. 아니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였다.
그 날 밤.
옥아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일제의 국가 총동원령 때문이 아니었다. 아랫마을 사람들의 눈빛 때문이었다. 하루에도 몇 명씩 굶주림으로 죽어나가는 봄,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니면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옥아는 폭신한 이불을 걷어찼다. 그리고 조용히 일어나 등잔에 불을 밝혔다. 온갖 생각들이 물 끓듯 일어났다.
그즈음 각 마을 마을마다 보국대, 여자근로정신대, 군위안부와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가 난무했다. 예를 들면 여러 명의 순사가 처녀들을 붙잡아 이들을 전쟁터로 보내 죽여서 신체의 기름과 피를 빼내 비행기 등 군용으로 공급한다는 이야기가 바람 앞의 들불처럼 퍼져나갔던 것이다. 또 여성들이 전쟁터로 가서 취사, 빨래 등의 노동과 함께 밤이면 군위안부로 이용될 것이라는 소문도 일찍부터 돌았다. 그래서 마을마다 불온한 소문을 퍼뜨렸다고 검거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옥아는 혼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책을 꺼내들었다.
옥아는 천천히 첫 장을 열었다.
春雨暗西池/輕寒襲羅幕 愁依小屛風/墻頭杏花落/보슬보슬 봄비는 못에 내리고/찬바람이 비단 장막 속에 스며들 제/뜬 시름 못내 이겨 병풍 기대니/송이송이 살구꽃 담 위에 지네. 봄비<春雨>, 마음을 잡을 수 없을 때 늘 꺼내들던 명나라 본 <허난설헌 시집>이었다. 물론 아랫단의 언문 번역은 회산이 한 것이었다.
가엾은 사람, 난설헌은 자신의 재능으로 인해 불행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27에 죽기까지 길지 않은 삶을 살았을 뿐이지만 그 짧은 삶도 별달리 행복하지 못했다. 허난설헌의 시적 재능은 중국과 일본에까지 알려져 그곳에서 시집이 출간될 만큼 뛰어났지만, 그녀의 재능은 그녀에게 행복을 선물하지는 않았다.
공부를 시키지 않으려고 했던 아버지 밑에서, 타고난 총명함으로 시적 재능을 갈고닦았으나 조혼의 풍습으로 일찍 시집가야 했고, 남편과의 금실도 좋지 못했던 허난설헌은 재주 있어 불행했던 조선 여인이었다. 그녀에게 조선은 탈출구가 없던 시대였고 사회였던 것이다. 경상관찰사를 지낸 아버지 허엽(許曄)과, 허성(許筬), 허봉(許篈) 두 오라버니, 그리고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아우 허균(許筠)이 모두 당대의 걸출한 문장가였음에도 난설헌은 늘 세 가지의 한을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나는 여자로 태어난 것. 다른 하나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 두 가지는 옥아와 꼭 같았다. 그러나 김성립과 회산은 달랐다.
그녀는 잠깐 난설헌의 남편이었던 김성립의 얼굴을 떠올렸다. 분명히 회산과는 반대로 생겼으리라. 그녀는 빙긋 웃었다. 어쨌든 그래서 옥아에게 난설헌은 스승이고 친구였다. 회산이 늘 능가경을 머리맡에 두듯이 그녀 또한 난설헌을 늘 머리맡에 두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난설헌은 행복한 사람, 그래도 난설헌은 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옥아가 다음 책장을 넘기려 할 즈음.
바로 그때였다.
“아씨 스님?”
옥아는 순간적으로 불을 껐다.
“누구세요?”
“들어가도 될까요?”
분명 남자 목소리였다. 그녀는 얼른 문을 열었다. 간절한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문을 열자마자 두 사람의 사내가 방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확 코를 틀어막는 술 냄새와 담배 냄새. 옥아는 냄새에 민감했다. 술 담배로 죽은 아버지 탓이었다.
“우리 아시지요?”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그녀는 그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랫마을에서 가끔씩 마주친 얼굴들이었다. 따지고 보면 전혀 동정의 여지가 없는 얼굴들이었다. 세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가정을 살피는 위인들이 아니었다. 옥아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췄다.
“이 밤중에 웬일이십니까?”
“당분간 저희를 숨겨주세요.”
옥아는 짐작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랫마을은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일제의 총동원령이 이곳 조그만 마을까지 폐허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저 사람들을 데려다가 어디다 쓸꼬. 옥아는 순간적으로 밀려드는 생각을 물렸다.
“언제까지 피할 수 있습니까?”
“이번에 우리 마을에 할당된 인원만 차면 될 겁니다.”
“그럼, 아저씨들 대신 다른 사람이 가야 하잖아요?”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사람들은 아니지만. 옥아는 일부러 순진하게 말했다. 기다렸다는 듯 그들은 동시에 머리를 숙였다. 언제 어느 때든 머리 숙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옥아는 그들의 다음 말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딸린 아이들이 많습니다.”
더 할 말이 없었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벌써 딸 둘을 팔아먹은 위인이었다. 옥아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회산은 요즈음 들어 매일같이 아랫마을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였다. 물론 아랫마을 나들이도 못하게 했다. 회산에게 그리 당부를 받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회산 스님이 아시면......”
“그래서 이렇게 아씨 스님을 찾아왔지요.”
옥아는 망설일 수가 없었다. 그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병든 아버지를 따라 천 리 길을 나설 때와 똑같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오세요.”
옥아는 두 사내를 데리고 조용히 방을 나왔다. 회산의 방은 불이 꺼져있었다. 옥아는 산신각 바로 밑에 있는 관음전으로 사내들을 데리고 갔다.
“절대로 제 허락 없이 바깥으로 나오시면 안 됩니다.”
“아씨 스님, 고맙습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옥아는 불도 켜지 않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동이 터오고 있었다. 여태껏 회산을 속인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린 시절 툭하면 회산을 속여먹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삽화 염정우
푸르고 푸르른 봄날.
그곳이 어디였더라. 옥아는 늘 산언덕에 올라 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해거름이면 절로 돌아왔다. 그때마다 회산은 옥아의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그렇지만 당돌한 옥아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어디서 오는 길이냐?”
“나무하러 갔다가 오는 길입니다.”
“지게도 없이, 그렇다고 도끼나 낫도 없이?”
회산이 넌지시 옥아를 바라보았다.
옥아는 그런 회산의 표정을 보면 언제나 당당해지고 싶었다. 기실 아버지 어머니가 있었다고 하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부모는 아니었다. 그들은 그냥 그녀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것뿐이었다. 그러나 회산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누구보다도 곱게 키워주었다. 문자를 가르쳐 주고, 동서양의 시문을 가르쳐 주고, 세상의 이치를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이상한 마음까지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하늘같은 사람. 그래서 더욱 회산 앞에서 주눅이 들고 싶지 않았다.
“삭정이를 모아서 칡넝쿨로 엮어오려고 하였습니다.”
“옳지. 너는 힘이 좋으니까. 삭정이도 잘 주을 수 있고, 그것을 등에 메고 올 수도 있겠지. 그런데 너는 지금 손에 아무것도 없잖니?”
회산이 웃었다.
옥아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버렸습니다.”
“뭘?”
“나무를요.”
“일껏 모아놓고 버렸단 말이지?”
“우리 절엔 아직 나무가 많아요.”
“장마가 올 텐데.”
“그때 가서 준비하지요.”
“그래, 부처님도 가장 나쁜 것은 창고라고 했지.”
“쌓아놓는 것에서부터 싸움이 싹텄지요.”
옥아는 제법 선승 흉내를 내고 있었다.
다시 회산이 한껏 웃었다.
“하하하, 그러냐? 나는 몰랐구나.”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가히 장관이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아랫녘 강물이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내가 왜 이곳으로 왔는지 아느냐?”
느닷없는 말이었다.
“모릅니다.”
“두만강변, 여기서 죽고 싶었지.”
“예?”
“그런데 그게 잘 되지를 않아.”
회산은 물끄러미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옥아는 그 옆에서 회산의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숨소리마저 고운 양반. 옥아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있고 싶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나란히 함께 서 있을 수 있다면... 그러나 그런 옥아의 어린 마음을 회산이 가만둘 리 없었다.
“그래서 해가 지도록 너는 무얼 했느냐?”
“바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에? 그럼, 넌 바위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
“전 그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생각도 않고? 그래. 넌 하늘에 구름이 끼면 서글퍼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해님이 쨍쨍하면 너무 즐거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비 내리면 비 내리는 대로, 눈 내리면 눈 내리는 대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잖아. 너는 아직 물 짐 한 번 제대로 져 본 적이 없어. 네가 할 몫은 항상 내 몫이지. 그렇지만 걱정하지 말고 시간이 나면 산에 올라가 참선을 계속하도록 해라. 허허! 아니다. 딱 하나 가시나무 하나는 제대로 하지.”
“하늘이 요새같이 푸르면 전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옥아는 그때를 생각하며 빙긋 웃었다. 그때 함께 보았던 그 붉은 노을, 어두운 산그늘, 마을을 타고 오르던 실낱같은 연기, 그것을 눈 감을 때까지 잊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면서.<계속>
삽화 염정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