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주인이 되라
일러스트 정윤경
마중물 생각
마당가 바위 틈새에 처음 심을 때는 어린 영산홍이었지만 지금은 키가 1미터가 넘는다. 바위가 숨이 막힐 것 같아서 가지치기를 이삼 년 터울로 해주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꽃이 무더기로 흐드러지게 피어나 화장세계(華藏世界)를 이룬다. 아니, 꽃이 피어나 봄을 맞이하게 된다.
세월이 꽃을 모셔온 걸까?
꽃이 세월을 불러온 걸까?
문득 무심히 상념에 잠긴다.
마음의 주인이라면 봄에도, 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문득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귀에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 잠 못 들어 하노라’는 이조년의 시조 <다정가(多情歌)>가 생각난다. 이 시인의 다정(多情)은 아름다운 집착이 아닐까도 싶다. 그러나 나는 그냥 무심코 봄과 꽃을 바라볼 뿐이다.
스님의 말씀과 침묵
#
내 마음이 열려 있을 때는 곁에서 바람이 불건 파도가 치건
내 속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 열려 있지 않으면 그런 메아리들이
마음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평상심이 도란 말이 있다.
평상심이란 순간순간 지니고 있는 그 마음이기도 하지만
다른 말로 하자면 너니 나니 네 것이니 내 것이니 하는
차별을 극복한 열린 마음이다.
#
내 삶에 성에 차지 않을 때 나는 입을 다뭅니다.
밖으로 향했던 관심과 시선을 안으로 돌립니다.
묵은 밭을 일구듯이 내 속뜰을 다시 경작합니다.
벽을 향해 허리를 곧추세우고 묵묵히 않습니다.
마음의 바다에 부침하는 사물들을 지켜보면서
스스로를 텅텅 비웁니다.
텅텅 비워버려야 새로운 메아리가 울려옵니다.
안으로 시선을 돌리면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하나의 세계에 마음을 쓰고
그것을 두둔하게 되지요.
이 세상 모두가 우리 마음에 메인 것임을 알아차립니다.
내 마음이 천당도 만들고 지옥도 만듭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들의 삶을 풍성하게 할 수도 있고
가난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순간순간 사는 일이 즐거움일 수도 있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주재하는 것은 그 어떤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그래서 옛 성인들은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한 것입니다.
#
<금강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과거의 마음도 찾아볼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찾아볼 수 없으며,
또한 현재의 마음도 찾아볼 수 없다.’
찾을 수도 얻을 수도 없는 마음을 어디에 메어두어야 한단 말인가.
찾을 수 없는 마음이라면 텅텅 비워버려야 한다.
텅 빈 마음에서 비로소 메아리가 울린다.
집착이 없는 빈 마음이 훨훨 날 수 있는 자유의 혼을 잉태한다.
갈무리 생각
달마스님이 말했다. 마음이란 좁기로 말하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고, 넓기로 말하면 허공 같다고 했다. 마음이 좁아진다는 것은 마음에 휘둘린다는 것이고, 마음이 넓어진다는 것은 마음의 주인이 되어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대는 지금 마음에 휘둘리고 있는가, 아니면 마음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마음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달마스님은 수행 중에서 수연행(隨緣行)을 깨달음의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했다. 모든 인연을 거스르지 않고 다 받아들이는 것을 수연행이라고 하는데, 허공 같은 마음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