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대승불교의 큰 스승 중에 산티데바라는 인도 스님이 계십니다. 적천(寂天) 스님이라고도 합니다. 산티데바의 법문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남’이란 나와 전혀 상관없는 타인이 아니라 또 다른 ‘나’입니다. 보다 큰 자기입니다. 산티데바는 어떻게 보살행을 할 것인가를 두고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이라는 저술을 남겼습니다. 왕자였던 산티데바는 어느 날 꿈에서 문수보살을 만납니다. 그는 문수보살로부터 “왕의 자리는 지옥과 같다.”라는 말을 듣고 왕위 계승에 회의를 느낍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왕위를 계승하게 될 전날 밤, 왕궁을 몰래 빠져나와 날란다사로 가서 출가합니다. 인도불교 역사를 보면 부처님을 비롯해 왕자들이 가끔 그런 식으로 왕위 계승권을 버리고 출가하는 사례가 더러 있습니다. 산티데바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입보리행론>은 보리심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보리심을 일으키는 마음, 즉 발보리심입니다. 다른 하나는 보리심을 행하는 마음, 즉 행보리심입니다. 보리심은 곧 자비심입니다. 불교는 발보리심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행보리심으로 회향합니다. 개체에서 출발해 전체에 이르는 길입니다. 나에게서 출발해 너에게 이르는 길입니다.

배움의 과정을 문(聞), 사(思), 수(修) 세 가지로 나누기도 합니다. 어떤 가르침을 듣고, 그 뜻을 깊이 생각하며, 스스로 그렇게 실천하고 닦아 가는 것이 배움의 과정입니다. 그런 닦음과 실천이 행보리심입니다. 수행이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보살행입니다. 남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수행입니다.

불교의 수행은 행보리심, 즉 보살행입니다. 행의 궁극적인 종점이 곧 깨달음입니다.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믿고 이해하고 행하면 그 행의 결과로 깨달음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억할 점은 깨닫고 나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행의 완성이 곧 깨달음이라는 사실입니다. 행 속에 이미 깨달음이 들어 있습니다. 마치 과일 속에 씨앗이 들어 있듯이.

오래 전에 발간했던 <천불탑의 비밀>이란 장편소설이 생각난다. 도반이기도 한 이판승과 사판승의 이야기다. 사판승이 도량에 천불탑을 짓는다. 사판승은 모든 이들의 기도처로 만들기 위해 원을 세웠고 그 원력으로 천신만고 끝에 천불탑을 한 층 한 층 조성해 간다. 그러던 중에 선방을 전전하던 이판승이 그 절에 온다. 그리하여 이판승이 천불탑 회향식 날에 봉안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러 인도로 간다. 그런데 이판승이 약속한 날에도 돌아오지 않는다. 사판승은 정해진 회향식 날에 가짜 사리를 부처님 진신사리라고 신도들을 속이고 봉안식을 마친다. 그런 뒤 도반인 이판승을 만나러 인도로 건너가 갠지스 강변에서 그를 조우한다. 그런데 이판승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갠지스강에 버렸다고 한다. “이 세상이 다 부처님 진신사리이므로 형상에 집착할 까닭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 순간 사판승은 벼락같은 충격을 받으면서 금강경의 한 구절, 무릇 있는바 상은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를 깨닫는다.

소설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상구보리(上求菩提)나 하화중생(下化衆生) 이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자각에서였다. 산티데바 스님의 발보리심은 상구보리이고, 행보리심은 하화중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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