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현실도피적이라는 세상 사람들의 지적은, 그들이 중시하는 가치들을 불교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가치들은 우리를 괴로움으로 빠뜨리는 주범이라고 해서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고 선언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중시하는 가치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불교의 가르침을 배우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며 수행하는 것을 일러, ‘불교에 빠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 삶의 현실이 본질적으로 괴로움이라는 진단에 동의한다면, 그리고 이번 생(生)만 아니라, 아득히 많은 세월 동안 생사를 되풀이하면서 그러한 괴로움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신뢰한다면, 과연 그렇다고 해도 현실도피적이라는 평가를 할 수 있을까?” -96쪽   

 

<불교는 무엇을 말하는가>(한산암 펴냄)의 저자 김윤수 전(前) 판사(이하 김 판사)의 명성은 일찌감치 들어 알고 있었다. 서평을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 저자와는 일면식도 없었으나 불교공부를 참 열심히 하는 법조인임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의 개정판을 접한 2014년, 나는 오랜 만에 좋은 책을 만난 기쁨을 만끽했다. 불교의 교설에 대해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 책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나는 불교를 공부하고 싶다는 이를 만나면, 물론 그 수는 많지 않았지만, 주저 없이 이 책을 추천하곤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중대한 사건의 재판을 앞두고, 올바른 판결을 위해 사건의 전모를 집요하게 천착했을 김 판사의 열정이 불교의 정수(精髓)를 파악하는 데도 그대로 적용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사성제, 즉 고집멸도로 단락을 구분해 불교의 핵심교설을 체계적으로 설파해 나간다. 제1장 ‘삶은 과연 괴로운 것인가’를 시작으로 제2장 ‘괴로움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제3장 ‘괴로움을 끝내려면’, 제4장 괴로움의 영원한 소멸로 목차를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장 제5장 ‘불교의 변화’에서는 불교의 원형과 변화의 과정을 부파불교, 대승불교, 선불교, 인도불교의 쇠퇴 이후로 나누어 상설하고 있다.
목차만 읽어도 저자가 대중들에게 불교를 제대로 바르게 이해시키고, 전하려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가 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평소 내가 궁금했거나 명쾌하게 풀리지 않았던 교리에 대한 의문을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내게 늘 풀리지 않은 갈증처럼 남아 있었던 것이 8정도의 정념과 정정에 관한 올바른 이해였다. 지금은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만, 5년 전만 해도 정념과 정정은 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따지고 들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그런 대상이었다. 그때 나는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올바른 팔정도 이해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
12연기 가운데 유(有) 역시 내겐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유’라면 일종의 존재를 말하는 것인데, 이 유를 기반으로 생사라고 하는 또 다른 유가 뒤따라 나오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리는 불편한 의문이었던 것이다. 내 나름대로 12연기의 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이 책 저 책 찾아봤지만 어떤 교리서나 해설서도 이 부분을 명쾌하지 다루고 있지 않았다. 늘 애매모호하거나, 책을 읽을 때는 알듯하다가 책을 덮으면 다시 아리송해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잔학(殘學)함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유에 대한 해석 역시 이 책을 뛰어넘는 것을, 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사마타 선정과 위빠사나 선정에 대한 명쾌한 개념 정립 역시 늘 헷갈리는 것인데, 이 책에서는 그 개념과 정의를 매우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특히 사마타 수행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곧바로 위빠사나 수행에 들어갈 것을 권하는 미얀마 마하시 사야도 계통에서 도입하고 있는 ‘순수 위빠사나’ 수행에 대한 언급까지도 매우 적확하게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저자의 불교에 대한 이해와 애정, 공부의 깊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평소 불교교리 가운데 궁금했던 것, 모호했던 것들의 거의 대부분이 해소되는 희열을 느낄 수가 있었다. 불교를 소개하는 입문서, 불교의 중요한 교설을 해설한 개설서로 이런 수준의 책이 불교학자도, 출가자도 아닌 재가의 거사에 의해 저술되었다는 것이 놀랍고 또한 자랑스러울 뿐이다. 숙세에 걸쳐 쌓은 불연과 바라밀 공덕이 아니라면 불가한 일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살펴보면 불법을 아예 모르거나, 알아도 제대로 모르는 중생들에 대한 연민이 바탕에 깔렸음을 알 수 있다.

 

“주변에 불교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불교를 소개하는 입문서나 개론서 또한 시중에 적지 않게 출간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런 입문서나 개론서를 읽고 불교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유가 없지 않다. 그런 입문서나 개론서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복잡다단하게 변화한 불교를, 외형 중심으로 전부 열거하여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불교를 이해시킬 수 없다. 겉과 전부가 아니라, 그 속과 근본을, 뼈대 중심으로 자세히 설명하여 이해하게 해 주어야 한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집필의 동기를 이렇게 밝힌다. 그가 밝힌 것처럼 이 책은 불교를 원리 중심, 뼈대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 내면을 이해하도록 구성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이번 개정판에서 2007년 초판에서 다루지 않았거나 미흡하게 처리한 부분, 즉 대승불교에 바탕을 둔 선불교가 주류로 자리 잡고 있는 우리 불교와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나, 수행은 직접 체험하면서 이해해야 할 부분이라는 이유로 도성제 부분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처리했던 점 등을 보다 충실히 보완함으로써 이 책은 보다 탄탄한 명저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저자 김윤수 판사는 자신 있게 말한다. “이제 이 개정판 1권을 읽으면 이 책의 제목과 같이, 불교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바야흐로 책의 내용이 그 제목과 일치하는 것이니, 누구든지 불교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할 수 있는 그런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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