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의 만감일기> 박노자 지음
불가(佛家)에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는 말이 있다. 정 반대의 개념인 번뇌와 보리(깨달음)를 등치시키는 이 말은 상식의 차원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불가에는 이와 비슷한 표현이 많다.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라던가, 극락이 곧 지옥이라던가, 부처가 곧 중생이라는 말 등이 그것들이다. 번뇌즉보리란 깨치지 못한 중생의 견해로 보면 미망(迷妄)의 주체인 번뇌와 깨달음의 주체인 보리가 다른 것이지만, 깨친 입장에서 보면 번뇌와 보리가 아무런 차별이 없다는 의미의 말이다. 모든 법의 실상은 공(空)한 것이기 때문에 번뇌도 공이요 보리도 공이기 때문에 번뇌가 곧 보리가 된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우연히’ 영화 ‘춘향전’을 본 이후 한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일어나 결국은 한국인이 된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우리에게는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노르웨이의 한국인’이 책을 냈다. 이 책은 그가 펴낸 다른 책들과는 달리, 그가 블로그에 연재한 인터넷 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박노자의 최초의 사적 기록이며, 따라서 공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관심의 편린들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반항아’로도 일컬어지는 박노자는 궁금하다. 대체 어째서 인터넷의 악플들은 사라지지 않는 건지, 한국에서 유난히 ‘거절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뭔지,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에 표를 몰아주고, 경제만 살리면 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뭔지…. 뭐 이런 궁금증을 박노자는 ‘번뇌’라고 부른다. 그간 인터넷 블로그에 쓴 그의 일기들은 이러한 ‘번뇌’의 흔적이며, <박노자의 만감일기>(인물과사상사 펴냄)는 바로 그 흔적을 모은, 최초의 사적 기록이다.
박노자가 발표한 여러 글들을 보면 그의 마음속에 불교적 DNA가 진하게 흐르고 있음을 문득문득 확인할 수 있다. ‘번뇌가 깊어지면 꽃이 핀다’는 제목의 프롤로그는 번뇌즉보리라는 불교적 사유와 경지가 갖춰지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다시 노르웨이로…. 세계를 무대 삼아, 세계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연구를 업으로 삼아 살고 있는 박노자가 일상에서 부딪친 여러 테마에 대한 사유를 통해 걸러낸 일종의 지혜들이다.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피게 돼 있고, 번뇌가 깊어지면 결국 빛이 보이는 법이라고, 개인 각자가 갖고 있던 수많은 번뇌들이 서로 소통하게 되는 순간 백척간두 위의 대안모색이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학자이자 저명한 칼럼니스트이며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박노자의 사적이고 사회적인 고백을 담은 인터넷 일기 모음집 <박노자의 만감일기>는 그래서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이 일상에서 접한 바로 그 번뇌를 깊은 사유와 통찰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발현한 반야, 즉 지혜로 타자(세상)와 나누고 소통함으로써 위험사회의 한계를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박노자의 만감일기>에는 개인과 가정, 역사와 사회에 대한 사적인 그러나 동시에 너무나 사회적일 수밖에 없는 궁금증과 생각이 담겨 있다. 그간 너무 민감해서 혹은 너무 개인적이라서 신문, 학술지에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단상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걱정, 민족주의와 국가, 폭력과 사회변혁에 대한 염려까지, 다양한 소재와 분야를 넘나드는 그의 고민들은, 때로는 학자적 통찰을 담아, 때로는 평범한 한 사람의 입장에서 진술된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염려하는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누군가의 일기를 들춰볼 때 느껴지는 은근한 즐거움과 함께 미처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에 대한 넓은 관심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우리사회의 모순들, 문제점들에 대한 박노자 교수의 생각 깊은 의견들은 당연히 청소년들과 함께 고민해 볼 문제이다. 하지만 박노자 교수는 진보운동에 대한 여러 지적들을 책의 많은 부분에 할애하고 있고 연관시키고 있다. 현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 전부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일부는 거북스럽기까지 하지만,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고정관념을 벗어난 시각과 견해를 접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내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러시아에서 태어나서 한국인이 된 ‘후천적 한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 그렇기에 드러날 수 있는 제현상에 대한 깊은 고민과 날카로운 비판은 생소하고 신선하며 놀랍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 보다 한국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 보이는 것은 이런 후천적 한국인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가져다준 객관적 통찰의 눈이 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고객에 대한 친절도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친절이라는 국제자본주의 코드; 70p),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많은 것에 중독되어 있다는 내용(우리들의 중독; 76p), 다른 나라와 전혀 다른 우리나라의 악성댓글 문제(악플의 문화; 108p), 한국 자본주의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KTX 여승무원 문제 등을 통해서 보는 신자유주의 문제(한국 자본주의 미래 비관; 111p, KTX여승무원의 단식을 보며; 116p), 영어를 숭배하는 한국의 문제(여행잡감, 영어를 못하는 유럽; 120p), 아프간 피랍사태에 대해 쓴 글(사회주의자가 예수쟁이 구출에 사활을 걸어야 할 이유; 197p) 등의 글들은 그저 스쳐지나가듯 이 문제를 대해왔던 우리들에게 다시 한 번 진지한 고민으로 빠져들 것을 요구하는 청천벽력과 같은 사자후로 다가온다.
‘귀화인도 한국인인가’라는 글에서 털어놓은 것처럼, 귀화를 했기에 법적으로 엄연한 한국인인 그가 스스로 ‘귀화인’이라고 밝히기 전에는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를 접할 때마다 그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늘 고민했던 같다. ‘아니, 백인이 뭐가 좋다고 이러는가?’라는 글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는 백인을 무조건 선호하는 한국인의 경향에 뼈아픈 지적을 통해 우리 안에 깊숙이 내재해 있는 사대성과 편견에 대한 경종을 울린다.
특히 ‘부처님오신날’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우리 사회에 점차 만연해가는 공포와 두려움 현상을 지적하면서 ‘시무외(施無畏)’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불자들이 얼마나 있는가를 묻는다. 그는 공포심 없는 마음을 중생들에게 심어주는 묘한 법이 시무외인데, 과연 불제자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이런 겁이 없는 마음이 정말로 생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박노자는 이어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진정한 의미의 무외를 행하는 이들이 바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라고 생각한다.’며 ‘이 땅의 많은 불제자 중에 흉기를 손에 들기를 거부할 만큼, 사회적인 몰이해와 고립, 남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를 극복한 이들이 얼마나 될까?’라고 묻는다. 그가 제기하는 글 가운데 상당수가 이처럼 우리가 무의식 중에 용인하고 눈감아 왔던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빗나감에 대한 예리한 질타에 다름 아니다. 귀화인이기에 더 가능했을 박노자의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시선들과의 조우는 이 책이 가진 최대의 가치가 아닐 수 없다. 스마트폰 찾아보기에도 바쁜 시절에 굳이 시간을 내어 이 책을 읽어보시라고 권하는 이유다.
저자 박노자는?
1973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태어났다.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Vladimir Tikhonov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곳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했으며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5세기 말부터 562년까지의 가야의 여러 초기 국가의 역사'라는 논문으로 아시아 및 아프리카 학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쳤으며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러시아어과 전임강사를 역임했다. 한국 사회에 대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 지식인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토종 한국인보다 한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아웃사이더 편집위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동아시아학 및 한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활발한 연구 및 강의 활동과 함께 국내 매체 기고를 통해 한국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직접 체험을 바탕으로 '당신들의 대한민국 1, 2',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하얀 가면의 제국', '우승열패의 신화',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나를 배반한 역사', '박노자의 만감일기' 등의 저술 작업과 매체 칼럼을 통해 우리가 알고도 애써 외면하려 했던, 혹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한국 사회 곳곳의 은밀한 배타성, 사대주의가 가미된 인종주의적 이중 잣대, 국가주의적 군대문화 등에 대한 내적 성찰의 길을 마련해주고 있다.
목차
일기를 쓰는 의미에 대하여: 번뇌가 깊어지면 ‘꽃’이 핀다
1부 나를 넘어
조국애란 무엇인가 | 타향살이, 불안의 일상화 |
거절의 미학 | 부처님 오신 날 |
절망을 느끼는 순간 | 너무 쉽게 망각된 그들, 고려대 출교자 |
자리가 사람을 명예롭게 만든다? | 학문의 의미, 미국의 아시아 학회에서 돌아와서 |
종교적 심성을 갖게 된 계기 | 근대적 ‘민중’에 대한 생각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선생, 그리고 군인과 아이 | 노르웨이 직장의 송년회 |
성욕과 종교에 대한 짧은 생각 | 등수 없는 학교의 추억 |
“코리안 호스티스가 필요하세요?” | ‘친절’이라는 국제자본주의체제의 코드 |
불만과 불안의 수위, 그리고 우리들의 미래 | 우리들의 중독(들) |
마광수 교수의 연구실을 보고 | 인권, 아직 오지 않은 ‘근대’ |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인가 | 권위주의 사회엔 권위가 없다 |
<효자동 이발사>와 지배·복종의 심리 | 군 폭력 관련 보도를 보고
2부 우리를 넘어
한국 유학생들의 핸디캡 | ‘테러리스트’는 욕인가? |
<겨울연가> 열풍, 그렇게 자랑스럽기만 한가?|‘악플’의 문화 |
한국 자본주의 미래 비관 | KTX 여승무원의 단식을 보며 |
여행잡감, 영어를 못(안)하는 유럽 | 포섭, 감옥보다 더 무서운…… |
유사 성행위와 유사 신앙행위 | 한국의 자유주의, ‘말의 잔치’ |
보수가 표를 얻는 비결? | 전교조 죽이기, 골프 버금가는 한국 지배계급의 취미 |
아니, ‘백인’이 뭐가 좋다고 이러는가? | 대학 신문을 보다 눈물 흘리다 |
아이를 키우면서 생각한다 | 내가 현실정치를 평생 못할 이유 |
NL파 세력이 유지되는 이유 | 한국사 교과서를 쓰면서 역사 속의 선악을 생각하다 |
숫자놀이의 무의미함에 대해서 | 내가 방효유 선생을 내심 좋아하지 않는 이유 |
‘삼성관’에서 회의를 해본 느낌 | 제 손으로 제 무덤파기, 과잉성 혹은 예방성 폭력 |
강정구 선생 유죄 판결, 혹은 절망의 시간 | 우리가 도대체 그때 노무현에게 왜 기대를 걸었을까? |
‘바람직한 우익’, 한국에서 가능할까?
3부 국가와 민족을 넘어
‘민족주의자’를 포용하는 방법 | 희망과 절망 사이, 북한 학자들과의 ‘만남’ |
사회주의자가 ‘예수쟁이’ 구출에 사활을 걸어야 할 이유 | 국기에 대한 쓴웃음 |
통일, 디스토피아의 그림자 | 한국 사랑? |
‘일심회’ 판결 유감 | 의사 폴러첸의 강의를 갔다 와서 |
귀화인도 ‘한국인’인가? | '노무현’에 대한 가장 위험한 착각 |
‘국민’, 해체되지 않는…… | 미국의 주요 일간지가 전하는 북한의 ‘진짜 의도’ |
김일성 대학 기숙사의 국제 사랑 이야기 | 황장엽의 회고록을 읽다가…… |
‘그들’의 ‘민족’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 | 북한 인권 문제를 생각한다 |
‘반미’보다 차라리 ‘반미제’ | 역사학자들이 파업을 벌인다면? |
극단주의는 왜 위험한가 | 남이 하면 ‘우경화’, 우리가 하면? |
김영남, 그리고 ‘일본인 납치’ 문제 | 월드컵, 스포츠, 그리고 국가 |
우리는 그들과 얼마나 다른가? | 북한은 과연 ‘깡패 국가’일까? |
불교는 평화의 종교? |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4부 경계를 넘어
러시아의 ‘인간 사냥’ | 악의 일상성에 대한 명상 |
‘고향 방문’의 슬픈 회상 | 노르웨이 국치일 |
발이 빠지기 쉬운 징검다리 | 원칙을 배반한 타협의 결과 |
일본 잡감 | 일본공산당원이 서대문 감옥을 둘러보는 심정? |
‘진짜 사회주의’? 슬랴프니코프와 트로츠키 | 배울 것만 배우자 |
노르웨이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오해 | 사담 후세인과 서구인들의 인종주의 |
러시아에 스킨헤드라는 망종이 생긴 까닭 | ‘주니어 제국주의자’들의 발흥 조짐? |
우리가 영어에 매달리는 이유 | 후쿠오카 단상, 의아한 평화 |
성개방과 보수성의 관계? | 일본공산당을 생각한다 |
트로츠키 아이러니 | 모리타 어민의 죽음 |
다민족 국가 미국의 진일보한 인재등용책 | 미 제국이 몰락해버린다면……? |
언어를 빼앗긴 자의 언어, 프랑스 무슬림 청년들의 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