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익진 박사(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의 저서 『현대한국불교의 방향』을 요약 게재합니다.
사진 = 장명확
죄악범부(罪惡凡夫)와 정토신앙(淨土信仰)
대승경전은 현재 약650여 부를 헤아리고 있는데 그 중에서 아미타불의 서방정토를 찬탄하고 있는 것은 200여 부로서, 전체 경전의 3분의 1 정도에 이른다. 정토교설이 대승불교에서 어떠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짐작케 한다. 미타정토에 관한 이러한 경전 중에서 대표 것은 다음의 삼부경이다.
(1) 구마라집 역 아미타경 소경(小經) 1권
(2) 강승개 역 무량수경 대경(大經) 2권
(3) 강양야사 역 관무량수경 관경(觀經) 1권
정토사상이란 정토경전에 설해진 교설을 바탕으로 인도의 용수 무착 세친 중국의 혜원 담란 도작 선도 신라의 원효 경흥 일본의 법연 친란 등에 의해서 전개된 사상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내용적으로는 미타의 본원력에 의해서 정토에 왕생하여 불퇴전의 경지에 이름을 목적으로 한다고 요약할 수가 있다.
미타의 본원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이러한 입장은 지금까지 우리들이 살펴왔던 원시불교에서 대승불교에 이르는 여러 가지 불교 사상과 비교할 때 매우 이채로운 감을 준다. 종전의 한결같은 입장은 ‘법에 의지하고 자신에 의지하라’는 철저한 합리주의적 정신이었다. 그런데 정토사상에서는 왜 자신의 힘보다는 미타의 본원력을 절대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인가. 정토사상은(당시B .C 1세기경)의 힌두이즘의 영향 하에 성립했다는 학설이 있을 정도로 그의 본원력 구제설은 유신론(有神論)적 종교사상에 비숫한 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토교의 정토교다운 트특색은 바로 이러한 타력교적인 점에 있다. 그리고 정토사상에 대한 이해는 바로 이러한 정토교적 종교성이 왜 대승불교에 발생하게 되었는가를 살피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이다.
정토교 발생의 사상적 동기를 문제로 하는 이러한 견지에서 정토관계 문헌을 살필 때 우리는 그곳에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는 극한 상황 의식(意識)을 주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토 삼부경의 하나인 무량수경에는 지금까지 살펴왔던 원시경전이나 반야 법화 화엄과 같은 대승경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들이 처해 있는 현실 사회의 괴로움이 심각하게 묘사되고 있다.
정토사상가들 속에서도 정토교의 이러한 극한 상황 의식은 얼마든지 엿볼 수가 있다. 용수는 정토교를 하열법(下劣法)을 즐기는 범부를 위한 이행도(易行道)로서 이해하고,도작(道綽)은 정토교에 있어서의 극한 상황을 말법시대로 파악하여 그러한 시대에 가장 알맞은 법은 오직 정토교 뿐 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정토사상을 대성한 선도(善導)는 관무량수경의 ‘심심(深心)’에 대해 자신이 죄악범부임을 깊이 믿는 것이라고 주석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정토교가 애초에 극한 상황에 처하여 자신의 힘으로는 깨달음을 실현할 수 없는 나약하고 죄장(罪障) 두꺼운 범부를 의식하고, 그런 의식 위에서 싹터 그 싹이 대승불교의 풍토 속에서 독특한 결실을 보게 된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정토교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토교의 이러한 근본 입각지를 향상 염두 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