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수행센터 담마마마까의 새벽은 고요 속에 열반을 향한 발걸음으로 분주하다. 정중동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난생처음, 이국땅에서 맞는 새해 첫날이지만 도(道)와 과(果),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 새해 첫날은 호들갑을 떨만한 관심사가 아니다.

 

4시부터 시작되는 첫 수행에 참석하려면 3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 어둠이 가시지 않아 더 낯선 대형 법당을 향해 미니랜턴을 들고 걷는다. 법당 안으로 들어서니, 벌써 홀은 수행자들로 꽉 들어차 있다. 비구와 띨라신(여성출가수행자), 그리고 남녀 요기(수행자)들이 법당 안에 들어오는 대로 1인용 텐트처럼 생긴, 천장에 줄을 매 긴 철사 갈고리로 매단, 모기 망사를 내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 ‘앉아서하는 수행’(이하 앉음수행)을 하고 있다. 반드시 도과(道果)를 성취하고 말겠다는 결기에 찬 표정들을 보고 있노라니 경외심이 저절로 일어난다. 장엄한 분위기에 살짝 주눅이 든 채 한국인 수행자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자리를 찾아 모기망사를 펼친 후 그 안에 들어가 앉았다.

 

 

 

법당 전면에 모셔진 부처님을 바라보았다. 한국의 불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아름답고 평화로운 미소는 낯설지 않다. 아, 그러고 보니 저 부처님의 미소는 어제 저녁 공항에서 보았던 미얀마 사람들의 평화롭고 평정한, 바로 그 미소가 아닌가.
지극한 존경심으로 부처님께 3배를 올렸다. 새해 첫 날 새벽에 드리는 예배, 나는 마음속으로 거룩하고 위대하신 분, 부처님께 한없는 고마움을 느끼며 이마를 조아렸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평좌(平坐) 자세로 앉아 사띠파타나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했다. 눈을 감고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따라 아랫배가 부풀고 꺼지는 것을 관찰하며 마음속으로 ‘일어남’, ‘사라짐’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마음의 눈으로 호흡의 흐름을 관찰했다.
앉음수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서 가장 편한 자세(오랫동안 견딜 수 있는 자세)로 앉은 후 두 손은 가볍게 다리 위에 내려놓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허리와 등목을 똑바로 세우고 가능한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해야 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뱃속에서 공기가 움직이는 느낌을 세밀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움직임이 강하면 강함을 사띠(알아차림)해야 하고, 약하면 약함을 사띠해야 한다. 공기의 움직임이 불분명하다면 그 불분명함을 알아차려야 한다. 움직임이 길면 긴 것을, 짧으면 짧은 것을, 거칠면 거친 것을 현재 이 순간에 바로바로 사띠해야 한다.

 

이렇게 호흡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하다보면, 초보수행자는 집중력이 약하기 때문에 망상이 일어나거나 마음이 밖으로 달아나기 십상이다. 그럴 땐 망상에 휘둘리지 말고, 망상 또는 밖으로 달아난 그 마음을 알아채야 한다. 그리고는 즉시 호흡의 일어남 사라짐으로 다시 되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바로 한 찰나 전의 기억을 올바로 기억하는 것’, 즉 사띠가 정념(正念)이고, 달아났던 마음을 즉시 알아차려 주(主)관찰 대상인 호흡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정사유(正思惟)이다. 생각이 아무리 많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밖으로 자꾸 달아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알아차리는 즉시 호흡으로 되돌아오는 노력, 사띠파타나 위빠사나 수행을 반복하다 보면 점점 집중력이 생기고, 집중력이 강해지면 자신의 호흡 속에서 무수히 많은 생멸(生滅)이 진행되고 있음을 아는 지혜가 발현된다.
이렇게 위빠사나 지혜가 점점 향상되면 어느 시점에 이르러 마침내 모든 번뇌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게 되고 번뇌가 모두 소멸된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일어남 사라짐을 관찰하고, 어떤 현상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면밀한 통찰을 거듭하다보면 마음이 영원하지 않은 무상(無常)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고, 사라져가는 것들이 너무 빨라서 마음이 슬퍼지고 괴로워지는 고(苦)의 진리를 체득하게 되며, 이어 그런 것들은 그들의 성품대로 사라져 갈 뿐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무아(無我)임을 알게 된다.

 

앉음수행이 진행되는 법당의 새벽은 숙연하다. 간혹 기침소리가 들려올 뿐, 수행자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게는 저리고, 쑤시고, 가렵고 답답한 갖가지 통증들이 간단없이 일어나고 있다. 왼쪽 무릎아래 정강이는 저리다 못해 감각조차 사라졌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요동을 치는 모양이다. 이럴 때 모든 수행센터의 스승들은 움직이지 말고 끝까지 그런 현상들을 관찰하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수행이란 본래 어려운 것이니 잘 견디고 극복해야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새벽 수행이 끝나면 한 비구가 들어와 불단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수행자들과 마주 보고, 아침 예불 및 수계의식을 집전한다. 매우 중요한 의식이므로 법랍이 높은 비구 몇 분이 번갈아가며 집전을 맡는다. 미얀마 고유의 아침 예불의식이 스님과 띨라신(여성출가자), 그리고 남녀 재가수행자들의 합송으로 장엄하게 펼쳐진다.
매일 아침, 예불과 수계의식을 집전하는 비구가 제일 먼저 선창하는 게송은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붓닷사)이다. 이 게문은 ‘탐·진·치 등의 모든 번뇌로부터 멀어져, 올바른 진리를 스스로 완전하게 깨달아서, 영광의 덕으로 채워진 존경해야 할 분, 부처님께 저희들은 예경 드립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미얀마에 맞이하는 새해 첫날 새벽, 동쪽나라에서 온 이 초로의 불자는 부처님 전에 지극한 마음으로 절과 찬탄을 올리고 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이어질 수행정진이 원만하게 잘 이루어지기를 서원하면서.

 

오전 3시 30분부터 시작되어 밤 9시까지 이어지는 수행센터의 하루 일과는 빽빽하다. 아침 죽 공양과 사시(점심)공양, 사야도와의 인터뷰, 법문 시간 외의 모든 시간이 앉음수행(앉아서 하는 수행을 ‘좌선’이 아닌 ‘앉음수행’으로 명명하기로 한다.)과 ‘걸음수행’(‘걸으면서 하는 수행을 ‘행선’이 아닌 ‘걸음수행’으로 명명하기로 한다.)의 반복으로 구성되어 있다.
넓은 법당에서 중국인 등 일부 외국인을 포함해 미얀마 수행자들이 함께 수행을 하고 있으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적절한 긴장은 수행에 도움이 된다. 미얀마로 오기 전 한 달 전부터 틈틈이 사띠파타나 위빠사나 수행법을 공부하고 온 덕인지,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 다행히 무릎 통증은 완화되었고, 졸음도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다만 아무리 사띠를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써도 순간순간 찾아드는 망상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호흡에 집중이 잘 되어야 수행이 잘 될 수 있는데, 이 또한 말처럼 쉽지가 않다. 하기야 쉬우면 그게 어디 수행이겠는가. ‘수행은 어려운 것이다.’라는 말은 수행자들 사이에서는 격언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인데. 

 

 

 

수행 첫날인지라, 혜송스님이 한국인 수행자들을 위해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해주셨다. 교재는 혜송스님이 지은 <담마마마까 법요집>인데, 사띠파타나 위빠사나 수행에 관한 모든 것을 압축해서 잘 설명해놓았다.
“호흡 그 자체는 특별하지 않지만 반복해서 호흡에 마음을 집중하다 보면 집중력이 좋아집니다. 이 집중력이 수행의 원천이에요. 수행은 자신의 내면을 보는 것입니다.”
혜송스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아니 거의 모든 사람들은 안, 즉 내면을 보는 것에 숙달이 되어 있지 못해요. 평생을 바깥만 좇아 살아왔으니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에 힘겨움을 느끼는 분들이 많아요. 일어나는 모든 대상을 알아차리지 않으니까 안 되는 만큼 장애가 일어나는 겁니다.”

 

혜송스님은 수행을 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결과를 반드시 스승을 찾아 인터뷰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인터뷰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인터뷰는 수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솔직하게 사야도에게 질문하고 지도받는 것인데, 이 과정을 밟지 않으면 수행에 진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자신이 가고 있는 길(방법)이 올바르다는 확신이 없으면 진전이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말씀이다. 혜송스님은 위빠사나의 지혜를 얻기 위해 인터뷰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거듭거듭 강조했다. 점검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혜송스님은 인터뷰를 할 때에는 솔직하고 정확하게 보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승이 어느 정도 공부가 진행되고 있는 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효과적인 지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행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사띠를 깨뜨리는 인연사가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행에 진전이 있고, 100% 집중하면 방해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집중력이 좋아질수록 더 사띠를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혜송스님의 간절한 설명이 이어진다. 한 사람이라도 더 도와 과의 길로 인도하려는 자비심이 스님의 표정에 가득하다.
“사띠는 모양을 관찰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모양은 무시해야 합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실제를 관찰하는 것, 예컨대 부드럽고 거칠고 짧고 길고 등의 뱃속의 공기의 흐름이 가져다주는 느낌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 때 망상이 일어나면 그 망상을 알아차리고 다시 일어남 사라짐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정사유란 본래 뜻이 원래 집중하던 대상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혜송스님은 집중이 생기면 자신의 몸속에서 많은 것이 변화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으며, 느낌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고통스러운 느낌, 좋은 느낌, 중간느낌이 그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중에서 초보자들은 수행의 실제 속에서 고통과 제일 먼저 맞닥뜨린다는 것이다.
혜송스님에 따르면, 통증으로 인한 고통을 알아차리는 방법은 세 가지이다. 통증을 사라지게 하려는 목적으로 알아차림 하는 것 한 가지와, 총으로 쏘아죽이듯이 통증을 모조리 없애겠다는 목적으로 수행하는 한 가지. 그리고 불쾌한 감각(통증)들의 실제성품을 보고 삼법인(三法印,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을 체험하려는 목적으로 알아차리는 것 한 가지가 그것이다. 세 가지 중에 앞의 두 가지는 수행이 되지 않는 틀린 방법이므로 지체 없이 버려야 하며, 오직 ‘통증의 실제성품인 생멸(生滅)을 보고 삼법인을 체험하려는 목적으로 알아차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혜송스님은 이 과정을 통해 ‘이 몸뚱어리와 고통은 다른 것이구나!, 한 순간도 머물지 않고 계속 변하는구나!, 내 몸인 줄 알았는데 내가 조작하거나 명령할 수 없는 것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즉 고(苦), 무상(無常), 무아(無我)의 삼법인을 통증을 관찰함으로써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님은 특히 “통증이 사라지는 과정을 세밀히 알아차려야 하고, 세밀하게 보니까 세밀하게 관찰하는 맛이 생겨나는 것”이라며 “통증이 약해질 때 집중하는 마음이 따라서 약해지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통증이 옮겨진다고 생각되면 집중이 잘 되었다는 것이며, 이럴 때 재미가 있어진다.”고 설명한 혜송스님은 “통증은 무상한 것이며, 통증을 아는 마음도 무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행의 점차(漸次)가 이렇게 세밀하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했다. 나도 모르게 탄식 아닌 탄식이 흘러나왔다. “흠, 만만치 않겠구나.”   

 

*사띠(sati)

 

사띠파타나 수행에서 사띠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사띠파타나 수행에서는 삼매(사마디)보다 사띠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사띠에는 세 가지 주요 요소가 있는데, 첫째는 일어난 현상을 주시·주목하여 알아차림 하는 것이고, 둘째는 일어난 현상을 단지 그대로 보는 것이며, 셋째는 어떤 현상이 일어났음을 인식하는, 즉 한 찰나 전의 기억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인이 성립되어야 제대로 된 사띠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사띠를 통하여 진리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된다.
사띠에는 몇 가지 특성이 있는데 올바른 수행을 위해서는 일단 알아 놓는 것이 좋다. 첫째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의 반영이다. 둘째 판단하지 않는 주시이다. 셋째 치우침 없이 지켜보는 것이다. 넷째 개념화되지 않은 자각(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다섯째 현재 이 순간의 자각이다. 여섯째 변화에 대한 자각이다. 일곱째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닌 깨어 있음이다. 여덟째 참여하면서 주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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