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천에서 굴러 떨어진 왜적들
고성군 남애리(이천 통천군)에는“독벼루”(옹천)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금강산의 한 지맥이 동해바다로 뻗어 나오면서 뒤집어놓은 독처럼 생긴 큰 바위덩어리가 바다 물속에 잠기었다.
예로부터 고성고을에서 통천고을로 가려면 험한 산발을 몇 십리에 돌거나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하였다. 사람들은 한 두어 자 폭이 되어 바위를 약간 쪼아 길을 내였는데 그것은 마치도 큰 독의 어깨에 그은 두 줄기 작은 선과 같아 보였다.
북한 1급화가 최철성 그림 '칠보산 채하봉'
만고풍상 비바람을 다 겪는 사이에 이 통 돌로 된 큰 바위는 씻기고 깎이고 다스려져서 그 겉면이 푸르스럼한 흰빛으로 반들거렸고 어디나 발을 붙이기 어렵게 매끈매끈하였다. 길 위는 밋밋한 절벽이요. 길 아래도 천길 벼랑이었다. 특히 아래쪽은 바닷물이 사시사철 밀려왔고 날씨가 사나와지면 파도소리가 무섭고 흰 물갈기는 기슭을 파헤친다.
웅천 벼랑길은 두 사람이 가까스로 길을 어기고 말은 한 마리만 지나갈 수 있었다. 사람도 아래를 내려다보면 정신이 아찔하고 말이나 하늘소도 무서워 경우 발을 떼놓는 곳이었다.
고려 말 14세기 70, 80년대에 이르러 일본 해적 떼(왜구)들은 우리나라의 남쪽지방을 침범하다 못해 점점 북쪽으로 침습하여왔다. 지금의 강원도 통천, 고성지방에도 놈들이 기여 들어와 백성들을 해치고 재물과 마소들을 약탈해가는 못된 짓을 번번이 저질렀다.
이 시기에 있은 일이다.
어느 해 가을 왜구들이 섭곡현(오늘의 통천군 송전리, 장대리 일대)에 침입하여 노략질을 감행하고 통주(통천)읍을 거쳐 고성 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백호미술창작사 1급화가 리기성 '해칠보의 달문'
왜적들의 만행에 격분한 강원도의 군사들과 금강산일대의 백성들은 왜적들에게 된 매를 안겨줄 계획을 세우고 적을 치기에 유리한 옹천 근방에 미리 매복하고 있었다.
일본 왜적들은 고성군 운전리에서 고개를 넘어왔다.
옹천 길에 들어선 놈들은 너무도 험한 지세에 놀랐다. 놈들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저들끼리 “이런데서 고려 군사를 만났다간 재미없겠는걸....”이라고 수군거리며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벼랑길을 에돌와왔다.
바로 이때였다. 고려군의 지위관은 공격신호로 소리화살을 놈들의 머리위로 날려 보냈다. 그러자 옹천 뒷산 마루와 남북의 개울가에 매복했던 고려군은 일제히 고함을 지르면서 앞뒤에서 놈들을 들이쳤다.
궁지에 빠진 왜적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제가끔 살길을 찾던 놈들은 뒤에서는 빨리 앞으로 나가자고 다그치었고 앞에서는 되돌아서서 도망치려고 밀고 닥치고 하였다. 좁디좁은 벼랑길에 몰리게 된 적들은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리다가 미끄러운 바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앗!”하는 비명소리가 연거푸 터져 나왔다. 수많은 놈들이 짐승같이 울부짖으면서 기어오르려고 하였으나 허사였다. 놈들은 계속 미끄러져 내려서는 “첨벙!” “첨벙!” 바다물속에 빠졌다.
성난 파도는 놈들을 휘감아 기슭의 바위에다 메쳤다. 어떤 놈들은 고려군의 화살에 맞아 허둥 넘어지기도 하고 백성들이 굴리는 돌벼락에 맞아 너부러지기도 하였으며 다른 놈들은 창과 칼에 맞아 자빠지고 굴러 떨어지기도 하였다. 바다에 빠졌다가 요행 살아남은 놈들은 헤염이라도 쳐서 목숨을 건지려고 하였으나 고려군의 활쏘기 명수들은 한 놈도 놓치지 않고 모두 쏘아 맞혔다.
몇 분을 가지 못해서 왜적의 무리들은 완전히 소멸되고 전투는 고려 군사들과 백성들의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이 지방 사람들은 이때부터 복벼루(옹천)를 “왜륜천”(애놈들이 빠져죽은 벼랑)이라고도 하였다.
북한작가 차국철 '해칠보의 저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