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반도 정세변화와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평가 김형기 : 2009년 5월, 제1호를 시작으로 <현안진단>이 발간된 지 어언 10년째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시기에 200호를 발간하게 되어 특집으로 이 분야 전문가들을 모시고 좌담회를 마련했습니다. 그동안 <현안진단>은 사실 관계에 대한 정확한 분석, 균형 있는 진단, 그리고 대안 제시 등을 통해서 여론을 이끌어가는 칼럼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과 같은 동아시아 질서의 변환기에 객관적이고 분별력 있게 대처하는 역량을 키우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현안진단> 발간에 함께 해주신 필진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현안진단>이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독자들의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좌담회에서는 올해 한반도 정세 변화를 되돌아보고 비핵화와 평화체제, 남북관계 각 분야별로 성과와 문제점들을 짚어본 다음 내년도의 전반적인 상황을 전망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올해 한반도 정세변화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조한범 : 한반도 문제 그러니까 남북관계, 비핵화, 평화체제 이 세 축을 본다면 아주 중요한 변곡점이 형성되었습니다. 우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하 김정은 위원장으로 표기)의 신년사에서부터 북한의 변화가 감지되었고요, 지금까지 총 7차례 남북, 북·미, 북·중 정상회담이 열렸고 김정은 위원장이 여기에 모두 참석한 유일한 인물입니다. 이 변화의 기저에는 물론 한국정부의 역할이 컸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시간표와 계획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저는 2017년까지를 김정은 위원장의 집권1기라고 봅니다. 그 판단의 첫 번째 이유는, 2017년10월 노동당 중앙회의 제7기 2차 전원회의를 열어서 권력구조의 재편을 마무리한 점입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과거의 인물들 장성택, 리영호, 심지어 김원홍까지 자취를 감추고 집권 2기의 인물들, 우리에게는 새로운 인물들인 정경택, 박광호, 태종수 등이 전면으로 부상합니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까지 후보위원으로 등장합니다. 그 이후로는 주요 인물을 숙청했다는 이야기가 안 나오고 있지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다음 달인 2017년 11월 29일 화성15형을 고각 발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점입니다. 이렇듯 김정은 위원장은 권력구조 재편에 이어 경제·핵병진노선의 완성을 선언하고 변화의 장으로 나왔습니다. 금년 1월에는 파격적인 신년사를 발표하고, 4월 당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총력집중노선’을 채택했습니다. 따라서 2018년은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발전에 방점을 둔 새로운 전략적 변화를 선택한 집권2기의 시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6.12 북·미 정상회담 때 양 정상은 북한 비핵화라는 최종적인 목표에 합의했지만 그 후 구체적인 로드맵의 도출에는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비핵화 방식에 대해 북·미 양측이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방식의 자발적 비핵화 방식이며, 미국은 동결(moratorium), 신고, 검증, 폐기라는 매뉴얼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비핵화에 뚜렷한 성과가 없고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관계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2018년은 비핵화를 포함해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이 불가역적인 단계에 진입했지만 우려했던 디테일의 악마가 동시에 고개를 드는 한해였다고 봅니다.
남기정 : 한반도 정세가 표면적으로는 2018년에 들어와서부터 신년사를 계기로 급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작년 말에도 조짐이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작년 11월 20일 즈음으로 기억되는데 한국의 국가안보전략연구원과 영국의 대표적 국제문제연구소인 채텀하우스(Chatham House)간에 회의가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 회의에 문정인 특보와 조셉윤 대표가 참석하고 북한 측 대표로 누군가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직전에 북한이 불참을 통보했고 그 다음에 화성 15호 발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북한과 미국이 무엇인가 조정하다 합의가 안 되면서 화성15호 발사까지 이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때도 뭔가 가능성이 있었고 뭔가 주고받은 것이 있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2018년도의 변화들은 2017년 11월 전후로 북한이 준비해왔던 것이고, 그렇게 보면 올해 들어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습니다. 이런 점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조성렬 : 저도 동의합니다. 작년 9월 참여연대 세미나에서 제가 한반도 전쟁위기 국면을 벗어날 세 번의 계기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첫 번째 계기가 11월초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인데, 그 직전에 시진핑의 제2기 당대회에서의 총서기 선출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가 오기 직전이 한 번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두 번째 계기가 북한의 신년사였고,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세 번째 계기가 평창올림픽과 독수리훈련, 키리졸브가 끝난 이후, 다시 말하면 여러 가지 불안 요소가 없어진 뒤인 3월 하순 후에 국면전환이 올 수 있다고 전망했었습니다.
북한이 국면전환 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던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전, 이미 작년 초가을부터 남·북·미 정부 당국 간에 접촉을 시작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작년 가을 틸러슨 미 국무장관(당시)과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조셉 윤이 ‘60일 법칙’을 이야기했습니다. 북한이 2017년 9월 3일 6차 핵실험을 했는데 그때부터 60일 동안 도발하지 않으면 대화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했습니다. 11월 초 60일이 지났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길에 한국에 와서 국회연설을 통해 북한을 비난했고 그것이 근거가 되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 했습니다. 북한은 이에 대한 반발로 11월 29일 ICBM을 쐈습니다. 이후 이란 의원단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미국이 테러국 재지정 등 도발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북한은 ICBM을 쏘지 않았을 것이다. 유감이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북한의 ICBM 발사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물으며, “미국이 정세를 관리하는데 제대로 협조 안 해서 이런 파국까지 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작년 가을 물밑에서 이런 기회들이 있었는데 결국 상황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북한이 ICBM 발사라는 무력행사까지 나갔다고 봅니다. 그리고 12월 8일, 김정은 위원장이 백두산에 올라 모종의 결단을 하는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이어 12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미 N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요구했던 한·미군사연습의 연기 가능성을 이야기했고, 그런 부분들이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변화된 모습을 이끌어 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꾸준한 노력과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이 올해 초의 국면전환을 이끌어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동용승 : 지난해와 비교해서 올해 한반도 정세가 180도 바뀐 것은 분명하고 거기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미국과 북한이 직접 대화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한반도 정세나 북한과 관련된 움직임들은 미국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4자 회담이 되었든 6자 회담이 되었든 다자간 또는 간접적 형태의 접근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다른 나라들이 다 배제된 상태에서 미국과 북한이 직접 대화에 나섰는데 사실 이것은 탈냉전 이후 북한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던 것입니다.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과 북한이 직접 합의를 도출한 이후의 과정들을 보면 항상 다자간 협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북쪽은 끊임없이 미국과 직접적인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왔고 올해 들어 북·미 양자 간의 직접 대화로 반전되었다는 점을 상당히 주목해야 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깃발을 들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북한이 의도하고 바라던 것이 일단은 시작되었다는 것에서 정세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과, 더불어 문제를 풀 수 있는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한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진전이 상당히 더디고 어려움들은 있지만 실마리를 잡기는 했다는 게 올해의 평가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성렬 : 동 박사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김정은의 이니셔티브로 보았던 것이 어떻게 보면 북한이 지금까지 원했던 것을 받아준 것은 트럼프이기 때문에 트럼프의 이니셔티브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제가 며칠 전에 칼럼을 썼는데 결국 현재의 비핵 평화 국면은 삼두마차(三頭馬車)가 끌어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뿐만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 이런 방향전환이 없었다면 현재 한반도의 전환국면은 어렵지 않았겠는가 생각합니다.
고경빈 : 한반도 정세 전환의 명분을 만들어주고 열쇠 역할을 했던 나라들은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있는 거의 모든 나라였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을 움직일 수 있게 명분을 만들어준 것은 중국의 ‘쌍중단 쌍궤병행’ 중재 노력이었고, 미국을 움직여주는 명분을 만들어준 것은 문재인대통령의 노력이었습니다. 문정부가 출범하면서 비핵화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평화문제를 비핵화에 결합시켜서 함께 움직일 수 있게 했습니다. 지금은 쌍중단은 유지되고 있지만 쌍궤병행을 추진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판문점 회담이나 싱가포르 선언이 있은 지 이제 겨우 반년밖에 안되었고,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문제가 짧은 시간에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인데, 한반도 평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크기 때문에 북미대화의 진전이 더디게 보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조한범 : 올해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경제건설총력집중노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실제로 북한의 전략적인 노선변경으로 봐야 합니다.그리고 또 하나 한국정부의 역할도 언급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북·미가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상당히 많은 문제에서 충돌했을 때, 그 이견을 조정하고 협상의 끈을 이어갔던 건 한국정부의 노력이었습니다.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서도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기구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 중립국가들이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올 한해 김정은 위원장의 이니셔티브, 트럼프 대통령의 이니셔티브도 중요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이니셔티브도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라는 점에서 중재자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고 보고요, 운전자 역할을 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남기정 :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삼두마차라고 했을 때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이 중요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 총괄적인 평가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반도에서 2018년도 상황을 만들어 가는데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랐던 사람으로서 트럼프 대통령의 결심이 중요했고 그런 의미에서 3월 8일(미국 현지 시각)이라는 날짜가 굉장히 의미 있다고 봅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5월 중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의향'을 직접 발표했습니다. 저는 북·미 정상회담 수용의 중요성을 이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본 외교의 혼란에서 역으로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탑다운(Top-down) 방식이 그 이후 북·미관계의 기조가 되었는데......
평화재단 홈페이지에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it.ly/2EqEx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