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각시 이야기
공훈예술가 안명석
그 옛날 만폭동에는 열일곱 살 난 처녀 보덕이가 있었는데 그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늙은 아버지와 같이 부지런히 땅을 일구며 살아갔다. 그러나 아무리 땅을 일구어도 지주에게 다 빼앗기고 빈 자루만 털고 나앉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어느 해 가을 늙은 아버지가 앓아눕게 되었다. 보덕은 늙은 아버지에게 죽을 쑤어드리려고 했으나 항아리 속에는 몇 알 안 되는 보리가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할 수없이 그 아랫마을 아는 집에 가서 쌀을 좀 꾸어달라고 하였으나 그 집 역시 가난하여 쌀은 없고 콩을 두되 박 주는 것이었다.
보덕은 그것이나마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주림과 피곤에 지쳐서 그만 바위에 의지한 채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머리가 흰 노인이 와서 보덕을 깨우며 “애기야 일어나거라 콩을 가지고야 어떻게 앓는 아버지에게 죽을 쑤어드리겠니.”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노인은 “그래, 너도 배가 퍽 고프겠구나! 아이 가엾어. 그 못된 지주 놈이 쌀을 다 빼앗아갔구나.”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도 이 산속에서 산다. 그런데 얘야, 참 좋은 수가 있다. 이 콩을 가지고 초롱꽃이 핀 굴속에 가서 밥을 지으면 쌀밥이 되는 수도 있다.” 쌀밥이라는 말에 보덕이가 “네?”하고 눈을 떠보니 그것은 꿈이었다.
보덕은 얼른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그 꿈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아버지가 하는 말이 “옛날부터 이런 전설이 있으니 그 꽃은 마음이 착한 사람에게만 보인다.”고 하면서 네 행동이 역시 잘못한 일이 없는지 그것부터 따져보고 자신이 있으면 초롱꽃을 찾아보라고 하였다.
보덕은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오는 동안에 별로 잘못한 것은 없으나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마당을 깨끗이 쓸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그날 아침만은 잊은 것이 생각나서 속으로 몇 번이나 뉘우치면서 마당을 깨끗이 쓸고 뒷산으로 올라가 초롱꽃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초롱꽃은 바로 보덕이가 있는 집 뒤 굴 앞에 피어 있었다. 보덕은 얼른 콩을 갈아서 가마에 넣고 그 굴 앞에 가서 절을 세 번 하고 밥을 지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그것이 콩밥이 아니라 하얀 찹쌀밥으로 되었다. 그 밥을 먹은 그의 아버지는 병이 나았을 뿐 아니라 그 후부터는 그 굴속에서 음식을 지으면 나물죽도 밥으로 되는 것이었다.
이 신기한 소문을 들은 어떤 게으름뱅이 승려가 와서 시주 받은 쌀을 한 알 넣고 밥을 지었더니 가마 속에는 말똥이 하나 가득하게 차 있었다. 그날 밤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승려 앞에 “땀을 흘리지 않고 남의 것만 먹는 너 같은 놈에게 말똥도 과하다.”고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보덕굴”이라고 한 것은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한 보덕각시가 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곳이라는 데서 붙은 이름이라고 전한다.
공훈예술가 최진호 금강산